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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주민A
May 29. 2022
일상의 중력으로 스윙바이!
2022. 05. 26
아침 7시 30분 기상, 식사는 토스트 반쪽. 11시까지 공부. 11시 30분까지는 점심. 1시, 휴식 및 운동 완료. 5시간 공부, 1시간 저녁, 다시 공부, 취침, 그러다 아침. 아, 죽겠다.
반복되는 일상, 다를 거 없는 하루, 조그만 나의 세상. 일상의 중력은 끊어진 타이어처럼 질기고, 끈질깁니다.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반항심이 불쑥 머리를 들 때 대담한 탈출을 시도합니다. 비행기에 올라 활주로를 딛고 자유도약! ···하지만 그래 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 성층권만 살짝 핥고 일상을 향해 자유낙하합니다. 그러다가 ‘쿵’하고 떨어지면 ‘찍-’하는 하품으로 비명을 지릅니다. 우주선이 중력을 끊고 우주로 나가려면 1초당 1톤의 연료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죄송, 차에 넣을 기름도 제게는 버겁습니다.
아침 7시 30분 기상, 식사는 토스트 반쪽. 11시까지 공부. 11시 30분까지는 점심. 1시, 휴식 및 운동 완료. 5시간 공부, 1시간 저녁, 다시 공부, 취침, 그러다 아침. 아, 죽겠다.
오오, 신이시여 정녕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게 인생이란 말입니까? 그렇다면 저는 장작 대신 책을 태워 불을 올리고, 그 위에 순결한 어린양 대신 술에 잔뜩 쩔은 저, 어른양을 번제물로 올려버리고 말겠습니다. 분명 당신이 드시기에 퍽이나 즐거운 요리가 되겠지요! 그랬더니 삿대질한 손가락을 타고 머리에 불빛이 번쩍!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우울한 여러분들 위한 희소식이 있습니다. 신은 생각보다 인생을 빡빡하게 설계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중력도움, 일명 ‘스윙바이’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그것은 우주선이 먼 거리를 날아갈 때 쓰는 방법으로, 행성의 중력을 역으로 이용해 기각 막히게도 연료 없이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방법으로 목성 탐사선 주노가 초속 40km로 날고 있다나 뭐라나요. 뭐든지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는 성격입니다. 그래서 시도해봤습니다. 일상의 스윙바이를!
익숙한 마을 풍경의 관성을 타고 옆 마을 공원으로 날아갔습니다. 공원에는 꽃들이 한창입니다. 숙근사루비아, 쟈르딘스드프랑스, 화이트크리스마스. 외국에서 온 분들이라 그런지 이름이 깁니다. 꽃님들의 이름 앞에 저의 성을 살짝 붙여 봤습니다. 우숙근, 우쟈르딘··· 점점 괴상 해지는 것 같아 그만뒀습니다. 그래도 헛웃음은 쿡쿡, 왠지 즐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으로는 가까운데도 가본 적 없던 한 마을 안으로 과감한 진입을 시도했습니다. 보이는 건 논 뿐이고 길은 계속 오르막이지만 괜찮습니다. 요즘 서울에서 논 구경하기가 어디 쉬운 일이던가요. 어렸을 적 옆 마을 논에 살던 올챙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마을의 꼭대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산에 둘러싸인 조그만 저수지가 있네요. 뜻밖의 만남에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낚시꾼 옆에 앉아 꺾어온 긴 풀대를 물속에 드리워 봤습니다. 어디 세월을 낚아 볼까요.
집에 돌아오니 해는 뉘엿뉘엿, 등은 땀으로 범벅입니다. 하루가 다 갔으니 오늘은 공부를 공쳤네요. 그래도 뭐 어떤가요. 몸은 날아갈 듯이 가벼운걸요. 짓눌려 삐걱이던 관절도, 늘어진 한숨도 오늘만큼은 안녕입니다. 이제 저는 꿈속으로 새로운 스윙바이를 해야겠어요. 당신도 하루쯤은 어떤가요? 일상의 중력을 타고 있는 힘껏 스윙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