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한 나라의 주민A Jul 06. 2022

광인 찬가

22. 07. 06

  당신은 미쳤어요, 그건 광기라고요! 착한 사람들 앞에서 기사도를 외치다니 제정신으로 할만한 행동은 아니죠. 안 그래요, 돈키호테? 그래서 전 당신을 열렬히 사모합니다. 니체의 “사랑에는 늘 어느 정도의 광기가 있다”는 말에 따라 당신의 광기야말로 진정한 사랑이었음을 증언합니다. 사랑은 언제나 미친 짓. 세상 그 누가 맨 정신으로 사랑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미치지 않고서는 사랑할 수 없다면 차라리 사랑을 어떠한 종류의 광기라 부르겠어요. 광인을 조롱하는 착한 사람들에게 ‘사랑했기에 미칠 수밖에 없었노라’ 멋들어지게 말하며 돌격하기 위해. 그때가 오면 당신의 로시난테를 제게 우정의 증표로 보내주세요. 풍차에 부딪혀 장렬하게 부서진, 우습지만 강렬한 기사의 이야기를 당신에게 헌정할 테니. 


  돈키호테, 고백을 듣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광기를 가진 당신은 저의 눈에 어린아이처럼 보입니다. 믿음과 확신의 언어를 구사하는 순수의 정령과도 같은! 그는 진흙탕에서 뒹굴어도 부끄러움 없는 연꽃 미소를 피웁니다. 이상의 성을 꿈꾸면서도 처지를 비관하지 않습니다. 닿을 수 없다 해도 그의 확신에 찬 다리는 분명 그곳으로 가는 길을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착한 사람들은 불신과 회의에 문자를 사용합니다. 그들은 무언가 시작되려 할 때마다 불안에 허덕이며 ‘우리에게 믿기 위한 증거를 달라’ 아우성칩니다. 아우성은 무거운 추가 되어 애써 불신의 표면장력을 뚫고 나온 확신을 익사시켜 버립니다. 자비로운 편력 기사시여 부당한 원망에 미간이 찌푸려진다 해도 그들을 혐오하지는 말아주세요. 그들은 두려움이 자신을 위대하게 할 주석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무엇이라도 잡기 마련 아닌가요.

 

  착한 사람들은 너무나 모범적이라 법 없이는 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타율의 집에 있을 때야 비로써 안락함을 느낍니다. 집에는 관행의 나무로 만든 침대가 있고, 그 위에는 매너리즘의 두꺼운 매트가 깔려 있습니다. 매트에 몸을 푹 파묻은 채로 그들은 창밖을 보며 반짝이는 별을 동경합니다. 동시에 두려운 어둠이 가득 펼쳐진 밤하늘을 경멸합니다. 그들은 운명적인 확신으로 권태에서 깨기를 원하면서도 정작 자신에게는 잠재우는 불신을 처방합니다. 저는 그들의 모순된 욕구, 그 안타까운 간극에서 또 다른 광기를 목격했습니다. 당신의 광기가 소리칠 것을 요구한다면 그들의 것은 침묵을 강요합니다. 맹렬한 돌격이 그대를 광인이라 불리게 했다면 그들은 다리가 썩어감에도 주저앉기에 그렇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광기는 박제하는 침으로 영혼을 침묵, 침전, 침식시킵니다. 어쩌면 그들이 당신을 광인이라 부르는 건 자신들의 광기를 감추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군요.     


  내 사랑 돈키호테. 언젠가 그대가 위대한 원탁의 기사처럼 무적의 갑옷을 입고 돌아오리라 믿습니다. 저의 믿음이 깊은 밤의 수렁을 지나야 할지라도. 희망은 짧고 절망과 고독은 길다 해도. 기력이 쇠해 고꾸라진다 해도 머리는 솟아날 여명에 좀 더 가까워질 테니. 지평선을 뚫고 올 그대여, 쓰러져있을 저의 등에 앉아 고삐를 당겨주세요. 그리하면 마지막 기력 다해 풍차를 향해 질주하겠습니다. 완고한 그대의 팔과 창으로 이번에야말로 공고한 벽을 무너트려주세요. 풍차 안에 갇혀 타율의 곡식을 빻아 먹고 있는 뒤틀린 광기들의 해방을 위하여!

이전 20화 치즈 한 조각, 어른의 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