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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한 나라의 주민A Jul 09. 2022

입술과 입술이 할 일에 관한 짧은 이야기

22. 07. 09

  그대의 치아, 흰 성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혀, 붉은 병정이 돌격해옵니다.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아요. 굳게 성문을 닫고 벽 위에 받아칠 활잡이들을 세울 거예요. 성문을 열고 나의 붉은 장수로 일기토를 벌일 수도 있겠죠. 그래 봤자 언어의 지루한 농성전, 혀들의 질척이는 씨름에 불과하다는 걸 사실 그대와 나 모두가 알고 있어요. 우리의 폐허가 된 가슴에는 익숙한 후회만이 남겨지겠죠. 의미 없는 승리를 거머쥐었다 한들 중상을 입고 피 흘리는 그대의 영혼도 열 발자국을 못 가 까무러칠 게 뻔해요. 그대가 내 수급을 잘라 흔들어 보인다고 합시다. 하지만 그것은 고작 아홉 머리 뱀 중 하나. 그대는 머리 하나를 얻는 대가로 다른 여덟을 적으로 돌리겠죠. 결국 언어의 분쟁이란 누가 더 많은 것을 잃었나 겨루는 패자들의 곡소리.     


  그대의 치아, 흰 성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혀, 붉은 법관이 돌격해옵니다.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아요. 내 입안의 짧은 법전을 세워 거기 새겨진 것을 줄줄이 읊어줄 거예요. 법전으로 그대의 머리를 후려칠 수도 있겠죠.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요? 고작 반 토막 혀 위에 모든 법이 적혀 있다 생각하는 것이. 취기에 꼬부라지고, 잠에 어눌해지는 반 토막 법전을 들고 벌이는 우리의 싸움은 삼류 촌극만도 못해요. 우리 차라리 입술을 닫고 저기 연인을 바라봅시다. 입술과 입술이 할 일이란 포개고, 겹쳐지며 열렬히 서로를 사모하는 일. 말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강력한 언어를 태어나게 하는 순간을 목도합시다. 우리 입술과 입술 사이에 놓인 언어의 진공이 부끄러워질 때까지.      


  그대, 내게 파발을 보내고자 할 때는 그에게 유머의 술병을 쥐어 주세요. ‘신을 믿으라. 그러나 복권은 사지 말라’ 이 한 잔에 나의 병사들은 웃음에 취하여 당신이 죽음을 명해도 갈지자로 춤추며 그리할 것입니다. 그대, 언어의 씨를 내게 뿌리고자 한다면 먼저 나의 슬픔과 환희, 고통과 행복의 양분을 힘껏 빨아들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잎이 넓고 뿌리가 깊은 이해의 꽃을 피워주세요. 꿀냄새를 맡은 나의 벌이 수분을 잔뜩 묻히고 돌아가면 내 가슴에도 그대의 꽃 만개할 테니. 아무리 나의 성벽이 높다 한들 날개 달린 것을 무슨 수로 막을 수 있을까요. 어쩌다 내 손에 활이 쥐어져 있다 해도 걱정 마세요. 행복한 벌을 맞춰 떨어트릴 만큼 인간은 잔인하지 않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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