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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주민A
Jul 11. 2022
사랑해야 할 101가지 이유
22. 07. 11
늦은 밤 제 방에 도둑이 들었어요. 그것은 출렁거리며 선풍기와 씨름을 하더군요. 그것은 괴성을 지르며 평온한 제게서 잠을 빼앗아 갔어요. 그리곤 저의 꿈을 자신의 머리맡에 두고 기절해버렸죠. 스탠드의 스위치를 틱,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깨워줄 키스를 기다리는 왕자님 같은 게 아니었어요. 그보단 잔뜩 취한 채 오디세우스의 처단을 기다리는 싸이클롭스에 가까웠죠. 저는 그것을 생물학적 동생이라 정의했고 부를 땐 웬수라 말해요. 이럴 때 저의 인류애는 그 부피가 감소합니다.
한숨을 쉬려다 도로 들이마셨어요. 하긴 술떡이 돼서 오랑우탄처럼 울었던 내가 할 말은 아니죠. 그래서 동생에게 살포시 이불을 덮어줬어요. 사랑스럽게 따귀 한 대를 때리는 것도 잊지 않았죠. 이럴 때 저의 인류애는 다시 그 부피가 증가합니다. 서로 비슷한 인간끼리 사랑하지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아서요. 막상 없으면 심심할 것 같기도 하고요.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서의 가르침을 따라 오늘도 동생을 사랑합니다, 아마도요.
카페 근무 날 그분이 찾아왔어요. 현대 문학은 이전 시대의 문학과 비교했을 때 단문을 사용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문장을 이해하기 쉽게 가독성을 주기 위해서죠. 그래서 그분도 단답을 사용하십니다. 주문은 뭘로 하시겠어요? ‘커피’, 포인트 적립하시나요? ‘됐어’, 영수증 버려드리겠습니다 ‘어’. 역시 단답은 귀에 쏙쏙 꽂히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럴 때 저의 인류애는 그 부피가 감소합니다.
‘빙수 돼?’라는 그분의 말에 ‘응!’이라고 답하려다 참았습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하더군요. 제가 카운터에서 뛰쳐나가 미친 척 매장 바닥을 기어 다니지 않는 이상 그분은 앞으로도 오실 겁니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적어도 욕은 안 하시잖아’라 생각하니 그분이 갑자기 선녀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은 할 말이 없으면 욕을 한다는데, 그러시지 않는 걸 보니 우리 사이에 말이 통하기는 하나 봅니다. 이럴 때 저의 인류애는 다시 그 부피가 증가합니다.
세상에 미워할 이유가 있어도 사랑하지 못할 이유는 없는 것 같아요. 미워하는 건 힘든 일이에요. 유지하려면 노력을 해야 하죠. 사랑도 힘든 일이에요. 계속하려면 각오가 필요해요. 미움과 사랑, 어차피 둘 다 힘든 거라면 차라리 사랑하길 택할래요. 사랑은 애증의 관계라고 하잖아요. 사랑하면 가끔 미워해도 티가 안 나요. 사랑하면 예뻐진다고 하던데요. 찡그린 얼굴보다는 웃는 얼굴이 나아요. 미워하는 것도 사랑해야 할 수 있다잖아요. 그러니까 미워하려거든 먼저 사랑부터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