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생각

늘 고맙고 사랑합니다.

by letitbe

앞집에는 6살이 된 깜찍한 여자 아이와 젊은 부부가 산다. 이사를 와서 얼마 되지 않아서 나와 남편을 보고 '언니' 그리고 '형부'하면서 친근한 호칭을 썼다. 처음엔 서슴없는 칭호에 조금 놀라기도 했지만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하니 사람을 좋아하는 나도 '어' 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반갑게 맞았다. 우리는 둘 다 낯을 가리지 않는 편이라 알고 지낸 시간에 비해서 그냥 언니 동생처럼 자연스럽게 지내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요즘 보면 앞집이랑 알지도 못하며 지낸다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그래도 운이 좋다. 감사한 일이다.


어제는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오는 저녁에 저녁을 먹고 들어오는 그 앞집 부부를 우연히 만났다. 밝게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앞집 동생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밝아졌다. 항상 보면 밝다. 그 밝음이 그날따라 유난히 젊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젊어서 좋겠다.' 하는 한 문장이 머릿속을 스쳤다. 저 시절이 있어야 지금 내 시절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마치 그 시절을 살아보지 못한 것 마냥 문득 그 시절을 떠올리니 애틋해졌다.

그렇게 내 나이가 대단히 많은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곧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코 앞으로 다가오고 있으니 그렇게 또 적은 나이도 아니다. 그렇게 나이 탓을 하다가 올해 팔십 인 엄마가 생각이 났다.

연세가 많으신 우리 엄마는 어떠시려나.

나처럼 한 살이라도 젊은 젊음이 그리우려나.

당연히 젊음이 부러우시겠지만 그런 질문을 하기도 전에 고생을 하도 많이 하셔서 젊음도 그립지 않을 수 있겠다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엄마 생각이 난 김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뭐 하세요? 엄마 궁금한 게 있는데 엄마는 젊은 시절이 좋기는 해도 고생을 많이 하셔서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진 않으시죠?"

엄마의 고생하신 것을 이해한다는 뜻의 내 의견이 담긴 뜬금없는 질문에 엄마는 대답을 대신해서 피식하고 웃으셨다. 대답보다 먼저 나온 웃음이 대답에 대한 답을 말해주는 거나 다름없게 느껴졌다. 피식 웃으시고 난 후, 말씀하셨다.

"젊어서 고생해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 그렇다고 지금은 또 나이가 들어서 힘들어서 지금도 뭐 그냥 그렇고... 젊어서는 그렇게 일요일 쉬는 사람이 부럽더라."

엄마가 내 질문에 대답보다 직장생활을 하실 때 남들 다 쉬는 일요일에 쉬지 못하고 일하신 것의 속상함을 가끔 습관처럼

이야기하듯이 또 그 말씀을 꺼내셨다. 늘 말씀하시는 이야기 중 하나라서 이미 지난 시절이라 생각하고 푸념처럼 대충 큰 의미 없이 흘려듣기만 했는데 가만 생각하니 제대로 된 맞장구 한 번을 쳐드린 적이 없다. 이번에도 그 말에 대한 공감보다는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전화를 끊은 것 같다. 다음에는 이제서라도 먼저 그때의 아쉽고 속상했던 마음을 공감하며 헤아려드려야겠다.

'일요일도 없이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냐고.'


누군가 내 감정에 공감을 해준다는 것이 치유와 같은 위안을 받을 때가 있듯이 엄마에게 많이 늦었지만 시원하게 맞장구 한 번 쳐드려야겠다. 이제는 엄마를 충분히 더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자식을 키울수록 부모 마음이 조금씩 더 헤아려진다. 지금 당장 고생이라도 자식이 그 고생을 알아주고 공감해 주는 느낌을 받는다면 힘든 것보다 뿌듯하고 큰 힘이 될 것 같다. 지금이라도 뒤늦게 깨닫고 있으니 엄마의 고생을 알아드리는 그런 자식이어야겠다.

정말 자식을 낳아봐야 철이 든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가끔씩 내 상황을 통해서 이렇듯 엄마의 지난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마음이 생기니 말이다. 그러면서 그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도 조금은 이해로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어려서 혼났던 일도 그 시절에 꽤나 속상해서 어른이 되어서도 한동안 때때로 억울하게 생각나던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괜찮아졌다. 그때 엄마도 힘드셔서 그랬나 보다 싶다. 요즘은 빠른 세월만큼 함께 보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만 자꾸 마음에 와닿는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어느덧 7년째다. 아빠가 살아계셨어도 아프셔서 고생만 더 하셨을 거라고 하시지만 요즘 들어서 아빠가 조금 더 팔십까지라도 채우시고 돌아가셨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운 생각이 자주 든다. 아빠가 계실 적에는 말수가 없는 아빠가 마음에 안 들고 웃음도 그다지 없으셔서 마음에 안 드는 생각만 떠올라서 살갑게 말도 시켜드리지 못했다. 그런데 괜한 일이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닌데 그때는 잘 몰랐다.

벌써 5월이다.

카네이션을 사들고 엄마를 찾아뵈야겠다. 엄마를 모시고 엄마가 좋아하는 막국수와 메밀 전을 함께 해야겠다. 그리고 엄마의 이야기를 좀 들어들이고 고생하셨다고 감사하다고 전해야겠다. 입 밖으로 꺼내서 감사를 제대로 말씀드린 적이 없다. 자식을 키우다 보니 엄마에게 어떤 말을 해드리면 좋을지 점점 알게 된다. 나도 진정한 부모가 되어가는 것 같다. 내가 자식으로부터 듣고 싶은 말을 해드리면 된다.

이번에는 쑥스러워서 익숙하지 못해서 하지 못한 말을 입 밖으로 용기 내서 꺼내야겠다.

"엄마 늘 고맙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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