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니커즈 사피엔스 저자의 인문학 노트 중에서
"인류의 발은 엔지니어링과 예술작품의 걸작이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노트 중에서
글로벌 브랜드의 신발을 개발하고 제화하며 전 세계로 선적하는 현업의 업력이 해외살이 22년을 넘어서고 있다. 신발을 공부하면서 인류의 발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역사상 처음, 가장 치열하게 인간의 해부에서 예술적인 승화와 과학적인 해석을 동시에 도출해 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발에 대한 해부학적 스케치와 글에서 호흡이 멎었다. 그렇게 <스니커즈 사피엔스>의 책을 세상에 내어놓을 수 있는 이유들이 쌓여갔다. 오로지 인간만이 직립보행을 위한 두 발을 가지고 있다. 인간에 가장 근접한 유인원도 정확한 표현은 네 발 달린 동물이 아니고 네 손으로 걷고 뛰는 유인원이었던 것이다. 발가락의 모양부터 다른, 무언가 손처럼 쥐고 펴는 유인원의 네 손은 인간의 두 발과 생김과 기능에서 완전히 다르다. 그것을 레오나르도는 너무 잘 알고 있었고 그의 메시지에서 우리들의 두 발을 더욱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이 즐거움에서 시작하였지만, 거장들의 삶을 만나면 감동으로 파고들게 된다. 15세기 르네상스의 두 거장 중, 미켈란젤로는 예술가의 고뇌가 가득한 삶이었다. 다른 한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렇지 않았다. 레오나르도는 수많은 동료 학자들, 예술가, 시인, 기술자들과 어울리고 즐겁게 교류하였다. 예술가가 아닌 우리 보통사람들은 미켈란젤로처럼 깊은 고뇌 속에서 살 수는 없어도, 레오나르도처럼 수많은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만들면서 교류하는 것을 즐기고 있다.
레오나르도의 세상 모든 것에 대한 관찰력과 호기심이 그의 삶을 그렇게 만들었다. 그는 위대한 예술가였지만, 동시에 무대연출가, 과학자, 기술자, 해부학자였다. 그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그의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 - 관찰의 업적이었다. 그의 노트에 그가 고집스럽게 기록한 빼곡한 글들, 삽화 - 그림에서 관찰형 인간의 참모습을 보게 된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를 닮고 싶고 그의 제자가 되고 싶다.
이 위대한 조각품, 피에타 조각을 만들었을 때, 미켈란젤로는 겨우 20대 중반이었다. 이 조각품에서 처음으로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라고 새겨 넣었고 그것이 그의 작품에 남긴 마지막 그의 낙관이 되었다. 그는 세상을 놀라게 하였던 이 작품 하나로 첫 데뷔부터 천재적인 그의 재능을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그의 천재성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예수님과 사람들의 시선에서 보이는 성모마리아의 두 시선으로 작품의 구도를 이원적으로 완성한 것이다. 신의 시선과 사람의 시선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던 미켈란젤로의 창의성은 천재을 넘어선 감동의 경계에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위대한 조각가로서 살고 싶었다. 그럼에도 시스티나 천장 벽화를 완성한 화가로 누구도 범접할 수 없었던 예술가의 위대한 작품들 그 자체로 그의 삶은 이미 천재 예술가의 삶으로 모두 표현하기에 부족하다. 그 또한 위대한 창조의 고민을 거듭한 끝에 르네상스의 예술을 최고의 반열에 끌어올리게 되었다. 무려 4년 동안 그린 천지 창조의 천정 프레스코 벽화 그림에서 그는 신이 되었다. 무서운 하느님이 아닌 창조의 하느님과 아담과의 손을 겹치는 시선으로 묶어놓은 미켈란젤로의 예술작품은 수많은 후대의 사람들에게 위대한 영감을 선물하였다.
미켈란젤로는 위대한 로렌조 디 메디치의 양자였다. 그는 당대 유명한 학자들에게서 르네상스의 정신과 인문학을 정식으로 배웠다. 피렌체에서 르네상스의 꽃을 피우게 만든 위대한 후원자, 메디치 가문의 교황들이 교황이 되기 전부터 그들과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레오나르도는 정식 교육이라고 하면 상업학교에서 기본 수학을 배운 것이 전부였다. 그는 라틴어를 몰랐고 이태리어로 7500 페이지의 노트를 남겼다. 레오나르도는 예술가였지만 탁월한 집념의 과학자였다. 18세기 약 200년 뒤 뉴턴이 현대 과학을 연 천재로서 세상의 위업을 남긴 것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뉴턴과 유사한 과학적 법칙을 레오나르도는 이미 15세기에 이론적인 성과를 그의 노트에 기록하였다. 그의 천재적인 관찰의 성과는 그의 노트에서 빛나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들은 레오나르도의 노트에서 기록을 통한 창조라는 위대한 영감을 배우게 된다.
레오나르도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을 회화에 비하여 보잘것없다고 평가절하하였다. 그 두 거장은 실제로 경쟁관계였던 시기가 있었다. 또한 선을 강조한 복고풍의 미술품을 고집한 미켈란젤로에 비하여, 20여 살 연장인 레오나르도는 훨씬 혁신적인 미술 화법을 개척하였다. 즉, 관찰을 통하여 그림자, 원근법, 흐릿한 경계를 연구한 레오나르도의 연구정신이 그의 그림을 새로운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라파엘로가 그런 레오나르도를 추종하고 존경한 것이 이해될 만하다.
나는 예술가로서, 예술가의 삶 자체로 천재 거장인 미켈란젤로를 깊이 존경한다. 하지만, 솔직하게 고백하면, 양면성을 갖는 인간적인 레오나르도를 더 좋아하고 레오나르도에게 더 많은 영감을 받는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도 같은 평가일 것이다. 그 이유는 레오나르도는 진정한 르네상스 인간형 노력형 천재였기 때문이다. 그는 너무도 호기심 많은 인간적이었고 편협하게 치우치지 않았다. 또 자신의 보잘것없는 정규교육을 극복한 - 아니 오히려 교육에 갇혀있지 않고 개방적으로 지식을 스스로 넓혀갔던 노력형의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의 노트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는 수 세기 이후 천재라고 불리는 인류의 위대한 위인들 - 과학자들, 예술가들 이전에 가장 빛을 발하는 노력형 천재였다.
IT로 세상을 바꾼 21세기 레오나르도들이 있다. 스티브 잡스도 레오나르도를 사랑하였다. 스티브 잡스는 어쩌면 훌륭한 성품으로 사람들을 포옹하지는 못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 또한 천재적인 집념으로 그가 믿는 것을 완성하였다. 그가 아이폰을 르네상스적인 상상력의 극대화로 만지고 싶게 만든 것은 레오나르도에게 배운 인문학적인 탐미와 탐구였다. 빌 게이츠는 360억을 투자하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노트 - 코덱스 레스터를 가지고 있고 이를 세상에 공개하기도 한다. 그들 모두 다빈치를 닮고 싶었고 그에게서 영감을 받은 제자들이다.
<모나리자>과 <최후의 만찬>이 레오나르도의 최고의 걸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흐릿한 경계를 연구한 그림의 결정판과 감상자의 시선에서 보는 그림의 구도를 깊게 연구한 걸작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수많은 호기심으로 예술작품을 완성한 것은 불과 15점 정도의 미술품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의 남겨진 작품들은 그가 얼마나 투철한 과학적 탐구정신으로 예술 - 미술 회화 작품을 창조하였는지 보여준다.
미켈란젤로의 엄숙한 깊이의 예술과 레오나르도의 과학적 관찰과 연구의 예술은 모두 인류의 유산이다. 그들이 존재하였던 르네상스의 거장들의 시대를 감탄하면서 공부할 수밖에 없다. 위기의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 많은 역할을 짊어지게 된다. 한 가지에 모든 것을 거는 삶은 너무 큰 위험이 될 수 있다. 오늘날 한국의 시민들도 진정한 르네상스적 인문학적 인간이 되기 위해서 한평생 노력하면서 살아가야 할 운명을 지닌 것이 아닐까!
그림들은 모두 무료 그림 제공 사이트에서 찾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