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에 묻은 추억 아날로그 향기
연필로 원고지의 사각형 안에 글을 쓰고 다시 그 글을 지워서 문장을 새롭게 만든 경험 있지요?
그때 연필은 어떠한 팬보다 유용하게 고쳐 쓸 수 있는 신비로운 존재였다.
사각사각 소리나는 글쓰기를 위한 연필은 마법같은 지우개가 있다.
쓴 문장을 고쳐 쓸 수도 있고 지우고 다시 쓸 수도 있었다.
연필은 나무로 감싸있지만 그 안에 연필심에서 글을 쓸 수 있기에 몽당연필이 될 때까지 깎아서 써야 한다.
연필을 깎을 때 나는 향내는 그대로 우리의 아날로그 시대 추억 같은 낭만이었다.
연필은 향내 나는 나무 생명체가 만들어낸 존재이기에 우리의 마음에 더욱 특별하게 각인되었다.
디지털 시대에 연필로 글을 쓰는 시대는 제한되었다.
그럼에도 연필은 아직도 자주 고치게 되는 다이어리, 달력 기록에 적합하다.
여전히 유년 시절 어린이들이 글자를 배우고 익히는데 연습에도 유용하다.
지울 수 있고 고칠 수 있기에 또 연필은 글자를 손으로 만져서 그 자모의 조합을 쓰게 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연필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 곁에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필기구로 남아 있다.
오늘날 컴퓨터 자판부터 휴대폰 터치스크린까지 디지털 자판기의 세상이다.
아날로그 연필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다.
오늘날 대량 생산 매체에 대량 생산 콘텐츠에 연필은 필요 없다. 오로지 컴퓨터의 하얀 여백에 자판기로
자모를 타이핑하는 것으로 문장을 완성하는 것이 우리의 생활 습관이 되었다.
오늘날 컴퓨터는 연필을 완벽하게 대체하는 필기구요 원고지가 된 것이다.
그러한 시대의 변화를 막을 수는 없다. 컴퓨터를 적극 활용하지 않으면 블로그 브런치 시대에 글쓰기는
성공할 수가 없다. 컴퓨터 자판기는 이제 피아노 건반을 연주하는 악기처럼 글쓰기의 기록실 연주 공간이 된다. 그 화려한 터치에서 울려 퍼지는 글쓰기는 장문의 책 한 권, 교향곡의 4악장까지도 웅장하게 완성되는 작품이 된다. 모두에게 대중화된 그 악기를 다룰 수 없는 사람은 크리에이터 현대인이 아닐 정도의 가늠자가 되었다. 컴퓨터 자판기의 가르침은 이제 인류의 모두에게 공평하고 동등하게 제공되는 크리에이터 SNS 세상이다.
그런데도 연필이 향수를 일으키는 것은 우리가 처음 글자를 배웠던 연필의 가르침 때문이다.
연필로 배운 소묘, 데상, 드로잉의 흑백의 그림들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동심의 상상력, 자연의 풍경을 담은 그림도 연필을 통해서 처음 그리게 된 것을 우리의 손은 기억하고 있다.
연필이 없었다면 글자도 문자도 그림도 배우기 어려웠던 그 시대가 소환된다. 유치원 초등학교 시절, 연필의 흑연심에 손때가 묻으면서 글자를 배웠던 그 시절이 있었기에 우리는 문명인이 된 것이다.
원고지에 연필로 글을 집필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때 원고지 종이도 아까워 늘 연필로 네모칸에 글자를 채워갔다. 잘못된 글을 지울 수 있었던 그 원고지와 연필은 떼어낼 수 없었던 한짝이었다. 그 연필이 몽당연필이 되어갈 때까지 원고지를 채워갔고 또 지워서 고쳐쓴 기억이 아련하다.
그 때 글자 하나하나를 손글씨로 써갔던 연필 흑연에 손가락이 거무스레하게 된 것이 결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연필에 손때가 묻은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문장을 배웠던 젊은 시절이 자랑스럽다. 그 시절 연필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작가정신으로 문장을 채워갈 용기를 갖지 못하였을 거다.
오늘도 연필을 곁에 두고 있다. 흑연심에서 나오는 다정한 검은 색깔의 손글씨에 정이 담겨있다.
< 연필 역사: 자기표현의 가장 초기 형태>
현대 연필이 스타일러스라는 고대 로마 필기도구에 빚졌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서기관들은 이 얇은 금속 막대를 사용하여 파피루스(초기 종이 형태)에 가볍지만 읽을 수 있는 표시를 남겼습니다. 다른 초기 스타일러스는 납으로 만들어졌는데, 실제로는 무독성 흑연으로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연필 심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연필의 역사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흑연은 1564년 영국 보로데일에서 대규모 흑연 매장지를 발견한 후 널리 쓰이게 되었습니다. 납보다 어두운 자국을 남긴다는 이유로 평가받았지만, 이 광물은 너무 부드럽고 부서지기 쉬워서 홀더가 필요했습니다. 원래 흑연 막대는 끈으로 감았습니다. 나중에 흑연을 속이 비어 있는 나무 막대에 넣었고, 그래서 나무 케이스 연필이 탄생했습니다!
독일 뉘른베르크는 1662년 최초로 대량 생산된 연필의 발상지였습니다. Faber-Castell(1761년 설립), Lyra, Steadtler 및 기타 회사의 자극을 받아 19세기 산업 혁명 내내 활발한 연필 산업이 발전했습니다.
미국의 초기 정착민들은 영국과의 전쟁으로 수입이 중단될 때까지 해외에서 수입한 연필에 의존했습니다.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의 캐비닛 제작자 윌리엄 먼로는 1812년 미국 최초의 나무 연필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콩코드 출신의 또 다른 유명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연필 제작 기술로 유명했습니다.
미국의 연필 산업은 조셉 딕슨 크루서블 회사(지금은 딕슨 티콘 데로 가)와 다른 연필 제조업체가 사업에 참여하면서 시작되었으며, 19세기 말에 뉴욕과 뉴저지에는 파버카스텔, 에버하르트 파버, 이글 연필 회사(나중에 바롤로 명칭 변경), 제너럴 연필 회사 등 유명 독일 연필 제조업체 가 설립한 여러 공장이 들어섰습니다.
최초로 대량 생산된 연필은 고품질의 나무 케이스[연필 바깥 나무 모양]를 과시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색칠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890년대에 많은 연필 제조업체가 연필에 칠하고 브랜드 이름을 각인하기 시작했습니다. 친숙한 노란색 연필이 생겨난 데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동아연필은 국내에서 연필을 최초로 만든 기업입니다. 1946년 교육사업 목적으로 동아연필을 설립했던 김노원 초대회장은 연필 사업 시작 10년 후 학교 재단인 동아학원을 설립해 애초 목표한 교육 사업도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출처 : 중소기업뉴스(http://www.kbiznews.co.kr)와 미국의 백과사전 인용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