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새해의 희망을 담아 하늘에 외칩니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명장면 중에 늘 마음에 품고 잊지 않는 장면이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나요? 설명해 주시오."
조르바와 니코스 카잔차키스(소설의 화자)가 오르탕스 부인이 죽은 후에 해변에서 나누는 질문이고 답변이다. 그 때 그들은 별밤의 하늘을 보고 있었다.
"경외심... 시같은 것" 이렇게 명문 명답으로 화자, 작가는 답변한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하늘은 보통 사람들에게 말이 없다. 침묵하는 하늘은 그럼에도 늘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고 믿는다. 수천년 수만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에게 그렇게 하늘은 신이었다. 오늘날도 우리들에게 하늘의 변화는 궂은날, 맑은날의 기상 날씨 변화부터 우울한 날, 희망의 날까지 우리 마음의 날씨를 보여준다.
저 하늘은 커다란 나침반이다. 우리의 삶이 어디에서 흘러왔고 어디로 갈 것인지 알려주는 웅장한 네비게이션 좌표가 된다. 다만 그 좌표를 볼 수 있고 해석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특별한 하늘의 풍경에 우리는 감동하여야만 한다. 올해도 이 하늘을 1월1일부터 12월31일 오늘까지 우리 각자의 하늘로 함께 흘러왔다. 우리가 일터로 갈때 그 길을 밝혀주었고, 우리가 잠자리에 들때 편안하게 눈을 쉬게 따뜻한 어둠으로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 하늘과 함께 날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여기까지 걸어왔다.
올해도 올해의 하늘이 끝나간다. 시인은 하늘을 보고 시를 읊으게 된다. 수필가는 하늘에 관한 수필을 쓸 수 밖에 없는 올해의 마지막 날이다. 소설가는 소설의 스토리를 저 하늘에서 품게 된다. 작가가 아닌 사람들마저도 하늘에 대하여 글을 쓰고 싶어지는 올해 마지막 날이 밝았다. 올해 우리는 무엇을 하였고 무엇을 생각하였는지 하늘에다 묻게 된다. 그리고 하늘에 대하여 인간의 삶에 대하여 깊은 경외심을 느낀다.
그 신의 언어, 경외감은 인간의 언어로 희망이라고 고쳐본다.
고개만 들면 하늘은 우리와 마주친다. 하늘이 멀지 않다는 증명이다. 얼굴을 들고서 하늘에 파묻히고 싶다. 그 하늘은 조물주 창조주처럼 넉넉하게 우리를 품어줄 것 같다. 그 하늘은 측량할 수 없는 넓은 어깨를 가지고 자비로운 얼굴에 푸른색 미소를 담아서 하얀 수염을 휘날린다. 그 때, 우리는 신을 만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늘은 자비로운 신처럼 우리를 굽어보고 있는 것이다. 그곳을 향하여 기도해 본다.
하늘을 신으로, 다시 우주의 창공으로, 지구촌의 대기권 지붕으로 감사히 생각하게 되는 인류의 수 만년의 선사시대, 역사시대를 거쳐서 오늘 우리는 과학적으로 만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비롭고 희망을 주는 하늘의 메시지는 언제나 건강하게 살아있는 것이 감사하다, 그렇게 전해져 온다. 같은 하늘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지구촌에 살고 있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또 감사하게 된다.
올해도 감사히 잘 살았습니다.
신이시어! 하늘이여, 우주여!
건강하게 좋은 삶을 살게 해주어
이 땅에 고맙습니다.
2024년 아디오스!
안녕히! 올해의 시간,
내일의 태양, 내일의 하늘에 다시 만날 수 있는
나를, 우리 가족을, 주변의 친구들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
모두가 희망의 하늘을 품게 하소서.
때때로 하늘은 이렇게 대답하는 것 같다. 잘 들릴 수 있도록 귀기울인다. 신은 자애롭지만 한편 따끔하게 질문을 던지고 확인한다. 겸손하라! 공부하라! 귀기울이고 깨달아라! 그렇게 조언해 주고 나를 향해 묻는다. 올해가 가기 전에 대답을 해야만 한다.
내 마음 비추어 올해도 열심히 살았느냐?
내 마음이 곧 하늘이다.
하늘에 맹세하고 내 마음에 걸고
열심히 살았는지?
하늘이 넌지시 묻고 나는 엄숙하게 답한다.
열심히 살았습니다.
적어도 한 가지는 열심히
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잘 될 거야. 잘 될 거라고!"
그렇게 하늘에다
매일 외쳤으니까요..
2024년 마지막 하루의
하늘에다
또 외칩니다.
"모두가 잘 되기를
희망을 외칩니다."
내년에도 날마다
외치겠습니다.
2024년을 보내면서 정말 호프맨(hopeman)작가라는 나의 이름에 걸맞게 희망을 품고 살아온 것 그것만은 하늘에 제대로 고백할 수 있다. 그것도 희망의 철학이라고 부른다. 또한 희망의 인문학이라고 부른다. 올해도 희망의 글을 쓰려고 하였고 희망의 메신져 전도사가 되는 작가로 살고 싶었다. 결국 희망을 위해서 우리는 때때로 절망하였고, 희망을 갖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사람의 삶이 희망을 부여잡지 않으면 꿈을 꿀 수도 실현할 수도 없게 됨을 깨닫는다.
<올해의 다짐, 2025년도 작가정신의 꿈, 목표>
2024년, 3편 이상의 소설을 썼다. 2편의 단편과 중편사이의 소설은 퇴고를 하였고, 1편의 장편 소설은 아직도 집필 중이다. 365일 380편 이상의 글을 블로그와 브런치 등에 발행하였고, 대부분 인문학적, 문학적인 글들이다. 감성적인 인문학적 여행기들도 포함되어 있다. 작가로서 창작 활동을 하루도 멈추지 않았다. 그것으로 만족하면 된다. 하지만, 늘 욕심이 생기고 그것도 하늘이 품어주었으면 한다. 일생일대의 불멸의 작품을 쓰고 싶은 것이다. 그 작품이 내가 죽은 후에도 남기를 바라는 것이 허황된 꿈일까? 앞으로도 작가정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겠다. 2025년에도 한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작품을 위해서 한 걸음 다가가기 위해서 창작의 꿈을 포기하지 않겠다. 반절을 완성한 <인문학 교양서>의 집필도 내년에는 꼭 탈고하고 싶다. 그 모두가 희망의 꿈을 꾸는 일이다. 저 올해 마지막 하늘이 내년의 첫 하늘로 이어져 가기에 나의 꿈 우리의 꿈은 희망을 품게 될 것이리라. 희망은 결코 우리를 외면하거나 끊어지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