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의 법칙, 게임의 법칙
게임의 법칙은 지켜져야 하는가? 지키는 사람은 순수한 희생자인가?
법칙은 반드시 준수되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는다.
게임의 법칙은 악법이라도 지켜져야 하는가? 그렇게 강요되는 것이 아닌 것보다 순리적이어야 한다.
오징어 게임은 이러한 논리가 거대한 한 축을 이룬다.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 법칙 - 다수의 의결에 희생당하였다.
잘못된 법칙은 바뀌어야 한다. 개헌이 합의되어 악법을 개선해야 한다.
그것이 시대의 법칙이고 에밀 졸라가 고발하였던 가치다!
플라톤의 소수 현자들의 정치는 정말 요원한 것일까?
현자들이 누군지 모르기에 국민들은 우롱당하고 만다.
셰익스피어는 기만당한 리어 왕과 햄릿의 고독한 고민에서 방황하였다.
부패된 왕정의 권력, 우중 정치의 다수결은 게임의 법칙을 위반한 것이다.
왕좌의 게임은 냉혹한 권련 판타지 소설일 뿐이다.
우리는 현실판 공정한 게임의 법칙을 판단하고 싶다.
오징어 게임의 법칙은 설계자에 의해 만들어졌다.
설계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심지어 자신들의 유희로 게임의 법칙을 설계하였다.
그 법칙에 따라 운영되는 것이 과연 설계자들을 위한 것인가?
시스템 안에서 작동하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마땅히 선량한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만 한다.
오징어 게임의 다른 한 축은 계속하여 묻는다. 고발한다. 부딪힌다. 요구한다.
게임 참가자들은 모두 희생자들인가? 틀렸다. 오류다. 설계자는 강변한다.
게임 참가자들은 승리를 거머쥐려고 한다. 공정하고 정당한 법칙 룰의 게임을 원한다.
올림픽 경기가 대표적인 선의의 게임 경쟁이 아닌가?
반드시 모두 희생자들은 아니다. 정당한 법칙이라면 경쟁이 사회를 역동적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잘못된 게임의 법칙이 문제다.
모두가 인정하는 월계관이어야 한다.
게임은 정당한가? 아니면 조작인가?
게임이 정당하지 않고 조작되기에 언제나 그곳에 병폐가 만연한다.
모든 게임이 조작된다면 그 시스템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
인류사 시민혁명이 그렇게 봉건체제를 무너뜨렸다.
20세기 약소국들의 독립혁명이 강대국 지배체제를 무너뜨렸다.
시민들의 희생이 민중운동으로 민주화를 바로 세우게 되었다.
게임의 승리 확률은 스스로 만들 수 있다.
국가적인 게임 시스템에서 승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공모전, 고시, 임용시험, 채용면접, 수능시험 등등 일종의 게임들이다.
그곳에서 면허증을 획득하는 사람들은 게임의 승자들이다.
반면에 그곳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스스로 게임을 만들기도 한다.
자신이 만든 게임에서 스스로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늘날 이 시대의 온라인 크리에이터들이 대표적이다.
오징어 게임 시리즈 2에서 주인공은 게임의 설계자들에게 정면으로 맞서기 위해서 다시 그 게임에 참가한다. 과연 한 개인이 거대한 게임의 설계자들, 그들이 만든 법칙에서 그들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관객들은 정당하지 않은 게임을 무너뜨리고 싶어 한다. 이는 혁명의 법칙이다.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개인들이 거대한 불온 조직, 범죄조직에 맞서는 일은 희생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극단의 삶과 죽음의 대결에서 관객들은 짜릿한 게임 참가자가 되어 버린다. 오징어 게임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통틀어 게임의 법칙 게임의 룰을 정당하게 평가하는 질문을 던진다.
<오징어 게임>을 평가하는 지고지순의 열혈 감상자로서 이 글을 적었을 뿐이다.
어떠한 극단의 정치적 논객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중도 시민 감상자가 쓴 글임을 밝히는 바이다.
정당한 공정 공평, 정의, 중도의 의미는 노자에게도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에게도 찾아볼 수 있다.
조선에 그나마 류성룡 영의정이 있어 왜란의 국난을 극복할 수 있었다.
국난을 극복하는데 상식적인 게임의 법칙 잣대가 공정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시대이다.
희망찬 새해, 국난 극복으로 평화와 안정, 위로와 치유가 가득한 세상을 간절하게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