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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수필>껍질이 벗겨지는 고향의 플라타너스

버짐나무 플라타너스야!


플라타너스야,


하얀 눈이 세상을 덮었을 때, 너의 껍질, 너의 영혼, 너의 가슴, 너의 눈동자,


너의 살결이 하얗게 물들었구나. 겨우내 추위에 떨어서 그리된 줄 알았는데 나의 오해였다.


혹여 껍질이 벗겨진 줄 알고 슬퍼하였는데 나의 착각이었다.


사람의 머릿결이 하얗게 세월을 이고 가는 것처럼,


한 해의 무게를 지고 겨울 끝에 하얀 속살은 백발이 되었다.




플라타너스야,


어려서 가을을 이해하지 못하였을 때,


너의 그 푸르던 잎새들이 갈색으로 메말라 가는 것에 울었다.


젊어서 늦가을을 몰랐을 때,


빛을 잃은 잎새들이 낙엽이 되어 땅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또 울었다.




플라타너스야,


수십 년이 흐른 고향땅에 돌아왔을 때,


하얗게 백발이 된 내 몸에 손을 얹어 온도를 나누었다.


내 손은 이렇게 따뜻한데, 너의 몸은 차갑게 식어있었다.


늙어버린 나를 못 알아보고 사람들이 무시한 채로 그 길거리를 지켜내었던


플라타너스 너는 겨울을 머금고 견디고 있었는데..


나는 네 마음의 온도를 읽지 못하고 말았다.


네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에 섭섭하였다.


네가 벗겨버린 껍질로 못 알아볼성 싶었느냐?


아니다! 아니야!


세월이 우리를 잠시 낯설게 만들었지만, 너를 안고 펑펑 울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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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한때, 무성하던 너의 잎새들은 푸르던 젊은 시절의 초록보다 눈부시게 윤기났었다.


세상이 온통 희망으로 가득 차던 그때, 봄부터 너의 잎새가 무르익기를 기다렸다.


나의 사랑이 차오를 때, 네 곁을 걸으면서 고백하지 않았더냐!


나의 꿈이 이루어져 갈 때, 네 곁에서 꿈의 지도를 자랑스럽게 그려보았지 않느냐!


내 손보다 내 얼굴만큼 커다란 잎새를 푸른 바람에 펄럭일 때,


우리는 함께 인생의 달콤함을 나누고 기뻐하지 않았더냐!


그때, 결혼하고서 너와 헤어졌다. 나의 갈 길은 고향을 떠나게 하였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른 채 너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새벽에 멀리 돌아서 떠났다.


그때, 떠오르는 해돋이에 보이는 너는 나를 응원한 것을 알았단다.


바람을 타고 전해오는 너의 푸른 웃음을 안고 내 꿈을 찾아 너를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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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건너 돌아온 나의 귀향길, 설명절 눈이 소복하게 쌓인 길,


이룬 것도 많았지만, 깨달은 것이 더 많았던 나의 인생길,


여기 네 곁에 돌아와 고백한다.


플라타너스, 버짐 나무는 고대로부터 현자이기에


나의 인생 이야기 문제점들을 모두 들어주고 슬기롭게 답을 줄 것 같았다.




플라타너스야, 오늘 백발의 머리칼을 네 곁에 날리면서


너는 언제나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구나.


세상을 원하는 만큼 돌아보니 내 인생도 그럭저럭 괜찮았구나.


사랑하고 헤어지고 다시 사랑을 지켜가면서 살아내었다.


봄이 시작되던 때, 여름의 꿈을 꾸었단다.


가을에 수확도 하였지만, 늦가을에 헐벗은 겨울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렇게 겨울에 고향으로 돌아와보니


모두 떠나간 고향 그 자리에 플라타너스 나의 친구 혼자서


기다리고 있었구나. 이제 그만 너의 넓은 어깨에 안기고 싶다.



< 한 걸음 더..플라타너스 나무의 우리말 버즘나무>



고대 그리스의 철학가이자 문장가인 플라톤은 어깨가 넓은 사람이라는 어원도 있다. 플라타너스 어원도 “넓다”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의 “플라니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플라타너스가 아마 잎이 넓고 무성하여 불린 것으로 생각되며, 일본에서는 “스즈카케노끼”라고 부르는데, “스즈카케”에 붙어 있는 수도승의 마로 만든 가사에 방울 모양의 방울이 플라타너스의 열매와 비슷하여 부르게 된 이름이라고 한다.


플라타너스의 나무 말은 “하늘로부터 받은 은혜=천재”라는 것이 있으며, 꽃말은 “용서와 휴식” 을 담고 있다. 플라타너스의 넓은 잎새들 아래 그늘에서 쉴 수 있기에 그 안에서 용서와 휴식을 모두 품을 수 있다.




플라타너스 나무 이름이 수많은 시인들 수필가들에게 의해 수천 번 글에서 불러졌다. 사실 우리말로는 “버즘나무”이다. 버짐이라는 특별한 어원에서 나온 말이다.


얼굴에 피는 버짐이 벗겨지는 것을 연상할 수 있다. 플라타너스의 수피를 보면 얼룩얼룩 벗겨진 껍질이 떨어진 자국이 마치 버짐이 핀 것 같아서 버즘나무라고 부르고 있으며, 일부 지방에서는 버짐나무라고도 부른다.



넓은 잎새로 뜨거운 여름에 크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플라타너스를 북한에서는 “방울 나무”라고 부르고 있다. 플라타너스 곁에 서면 방울 소리가 들려올 것 같다. 단순히 눈으로 보는 시선에 따라서 부른다면 우리말로 버즘나무가 더 다정하게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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