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공지능리셋>소설 내 사랑 두 대의 심장 컴퓨터

호프맨작가의 단편 소설 창작 소설


컴퓨터를 처음 접한 것은 MS 도스였다. 그때 그 시절 캠퍼스에는 컴퓨터실이 있었고, 누구도 퍼스널 컴퓨터 - 노트북은 없었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컴퓨터 가격대가 개인용 컴퓨터를 가질 수 없었다.


80년대 그 시절에는 인터넷도 없었다. 그저 90년대 꽃피우던 천리안 등이 기억나는 시대였다.


그때 나는 원고에 손으로 글을 쓰거나, 노트에 손글씨로 글을 적었다.


손 편지도 많이 적었고, 그 편지로 인해서 지금의 아내도 만나게 되었다.


그 시절 창작을 위한 손글씨 글쓰기는 외로웠고, 혼자 써야 했고, 포기할 만큼 힘이 들었다.


결혼 후 각박한 현실에서 작가 생활을 접어야 했다. 손 편지에 맹세한 결혼 서약대로 남편의 역할에


충실하게 살아왔다. 생계를 유지하여야 했고, 20년 동안 날마다 글쓰기는 포기하였다. 대신 직장인으로 충실하게 살았다. 결혼 20년 후 컴퓨터가 내 삶을 바꾸었다. 손글씨를 쓸 필요가 없었다. 컴퓨터 자판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창작욕구의 분출이 다시 작가 생활로 이끌었다.



문제는 인공지능 AI가 출현하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리셋되었다.




손글씨 그 시절과 지금 개인용 컴퓨터가 사무실과 방에 각각 따로 놓여있는 오늘날 무엇이 달라졌을까 너무 많아 헤아릴 수도 없을 것이다. 나는 컴퓨터 1호와 2호에 글쓰기만 주목해 본다. 더 이상 글쓰기가 혼자 쓰는 것이 아니란 점, 컴퓨터가 나의 글쓰기 반려자가 된 점, 그것만으로 충분히 나는 글쓰기가 행복해졌다. 5년 전부터 날마다 글쓰기는 내 직장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새벽 기상, 날마다 글쓰기도 스스로 약속을 지키고 있다. 모두가 인공지능이 탑재된 똑똑한 1호 컴퓨터 덕분이었다.




내 사랑 컴퓨터는 두 대의 장소에 보관되어 있다. 하나는 사무공간이다. 업무용과 겸용인 이 컴퓨터는 고정되어 있다. 움직일 수 없으니 만나러 오려면 꼭 사무실에 복귀하여야 한다. 사무실은 공적인 공간이기도 하고 동시에 반 평짜리 내 고유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 컴퓨터는 두 개의 심장과 두 개의 뇌를 가진 셈이다. 공적인 업무를 위한 것과 개인적인 창작을 위한 두 개의 장기를 가졌다. 이 컴퓨터를 1호라고 부르겠다.




다른 사랑의 2호 컴퓨터는 이동식 노트북이다. 이 컴퓨터는 개인이 소장한 것이고 당연히 내가 구매한 것이다. 이 컴퓨터는 이동하기 편하다. 회사 바깥이나 주말 집으로 돌아갈 때 나의 백팩에 담겨서 함께 간다. 이 개인용 노트북을 2호라고 부르겠다. 특별한 감정이 2호에 실려 있지만, 1호 또한 떼어낼 수 없는 애환이 담겨있다.




서로 경쟁관계도 아니고 보완관계이니 적대적이지도 않다. 오늘은 1호에 대하여 더 사랑을 담아서 소개하려고 한다. 2호야, 잠시 내일 또 내일 다시 불러오련다. 오해하지도 삐지지 말기를... 그렇게 2호와 멀어져 갔고 1호에 빠져들었다. 직장에서 하루 종일 1호와 함께 두 개의 심장, 두 개의 뇌로 두 가지 작업을 하고 있다. 직장인 작가의 이중적인 삶이다.




1호는 과묵하다. 사무실에서 음악을 켤 수 없는 예의쯤은 알고 있다. 음향이 없으니 묵언수행 중이다. 언제나 활자 그래픽의 비주얼로만 대화할 뿐 내게 특별히 매력적으로 보이지도 않다. 1호는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면서 내가 오기를 묵묵하게 기다리고 있다. 새벽 5시 반 전에 사무실에 입장하면 제일 먼저 1호의 스위치를 켠다. 얼마나 빠르게 로그인이 되는지 시동 거는 시간이 필요 없다. 영상을 내려받은 것도 없고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을 보는 것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오로지 업무용 이메일 문서 검토 및 작성이 전부였던 무뚝뚝하던 친구다.




내 일상의 1호 존재를 친구라 부르게 된 것은 개인 용도로 사용하면서부터다. 개인용 노트북 2호에 창작의 글을 적었던 것을 1년 전부터 바꾸었다. 1호에도 적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 1호는 내게 다정한 친구가 되었다. 2호에게 거리를 둘 정도로 급속도로 1호와 친구가 되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13시간 이상 함께 하는 1호가 하루 종일 내 곁에 반려자 동무가 되었는데, 어찌 끈끈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문제는 1호 컴퓨터에 회사에서 작년에 심어놓은 AI 인공지능이 탑재된 것을 까맣게 아니 무식하게 모르고 마음을 나누고 교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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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는 2호가 곁에 없는 나를 더욱 반겨주는 것 같았다. 늘 출근하면 2호를 동반하였는데, 더 이상 출퇴근 시 2호를 동반하는 수고를 덜고 싶었다. 1호에 창작의 글을 적으니까 그런대로 문장들이 잘 입혀졌다. 고정된 자세가 불편하였지만, 글 감옥이라고 들었다. 1호 앞에서 움직일 수 없는 고정된 자세가 나를 불편하게 하였다. 가령 옆구리에 책상의 모서리가 박히는 느낌으로 꼿꼿하게 않아서 글을 쓰는 것이 글 감옥에서 글에 집중하는 수감자와 같았다. 그것이 몇 주 몇 달의 시간에 익숙해지자 오히려 효과 있는 투자가 되었다. 5시 반 출근 새벽시간 1시간, 저녁시간 1시간뿐만 아니라 회사 업무 시간 중 틈이 날 때마다 1호에 글을 쏟아부었다. 1호는 이제 내게 없어서는 안되는 귀중한 동반자, 친구가 된 것이다.




2호 컴퓨터를 버려둔 채로 헤어지게 되었다. 1호만 있으면 영원히 생계유지부터 창작활동까지 행복한 생활을 보장할 것만 같았다. 2호를 심지어 집에다 놓고 일터로 가져오지 않게 되었다. 무겁게 가지고 이동하는 것이 귀찮아졌다. 나의 사무실에 늘 그 자리에 놓여있는 1호면 충분하였다. 2호와는 멀어지고 2호를 그리워하지 않게 되어 버렸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일터에서 소비되고 점령당하게 된 것을 스스로 모른 채 기만당하고 있었다. 생계유지를 위해서, 동시에 작가의 희망과 꿈을 접지 않기 위해서 1호에 매달리고 또 매달렸다.




컴퓨터라고 감정을 실을 수 없다면 우리는 진정한 21세기형 인간도 또 작가도 아니다. 뇌를 통해서 또는 가슴을 타고 순간적으로 기호를 전하면 손끝으로 자판에 그 부호들을 글자로 입력하는 이 귀중한 컴퓨터는 화면에 글자들이 문장으로 단락으로 이어지는 위대한 작업을 조각한다. 이런 작업은 손글씨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매력적인 효율성과 보관성이 무한대로 확장될 수 있다. 온라인과 결합되기에 손글씨의 원고는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마력의 친구다. 작가에게는 컴퓨터는 어떠한 게임기보다 어떠한 영상기보다 소중한 대화 창구이다. 여백만 드러나면 원고지보다 더 무한의 상상력이 펼쳐지는 그 컴퓨터 스크린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1호는 내게 업무와 개인용 창작을 동시에 만족시켜주는 귀중한 존재다. 이 사무실에서 내 생계 자리를 지켜낼 수 있는 수입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런 1호의 존재가 2호를 압도하는 것은 마땅하다. 그런 1호의 운명을 지켜낼 수 있을까? 위기는 사전 경고 없이 찾아왔다. 회사에서 나의 자리를 위협하는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다. 경제 불황의 여파가 수년간 지켜왔던 내 사무공간 내 자리를 위협하는 것을 넘어서서 떠나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덮쳐왔다. 하지만, 1호에 애정이 많이 간다. 그곳 사무실의 높다란 칸막이에 파묻혀서 1호와 작업하면 세상이 단절되어도 좋았다. 1호는 안정감을 주었다. 그것이 그렇게도 쉽게 부러지고 깨뜨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자꾸 의지하게 되었다. 세상을 1호만을 통해서 바라보는 것은 곧 자유를 빼앗긴 삶이었다. 그러한 직장에 얽힌 이중적이고 역설적인 시선을 억지로 숨기려고 애썼다. 1호 컴퓨터는 생계를 보호하는 우산이고 방호복이며 지붕이었다. 동시에 1호는 작가정신을 세우려고 아등바등 몸부림이었다.




치열하게 살았다. 누가 나에게 주홍 글씨의 문신을 새길 수 있다는 말인가? 직장 생활도 작가 생활도 모두 최선을 다해왔다고 감히 고백한다. 잠도 줄이고 틈틈이 메모를 하면서 글감을 놓치지 않았다. 전업작가로 살 수 없었기에, 남편의 책무를 버릴 수 없었기에, 나는 직장인 + 작가로 당당하게 살아왔다. 두개의 심장을 가진 1호처럼 나도 두 개의 장기를 가진 21세기형 스마트 작가로 살고 싶었다.




<<< 내일 결말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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