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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지상으로> 비행기 안심 착륙 항공기 글쓰기

천공의 라퓨타처럼 글쓰기


나는 확실하게 <천공의 성 라퓨타>의 여주인공, 시타와 같은 하늘에서 부드럽게 뜨는 능력이 없다.


유아시절, 아주 어려서 하늘에서 지상으로 떨어지는 무서운 꿈을 자주 꾸었다.


그런 두려움을 떨쳐내는데 할머니의 사랑 할머니의 따뜻한 품 덕분에 가능하였다.


두려움이 사라지면서 청소년으로 성장하였다.


아니 오히려, 하늘을 동경하고 비행기 탑승을 꿈꾸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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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째 직장 생활, 직업상 비행기 출장 여행이 많다. 비행기를 타고 여러 도시를 방문하는 것이


꼭 하늘에서 지상으로 떨어지는 꿈과 같았다. 지상으로 복귀하는 기분은 이륙하는 것보다 좋았다.


우리 인생에서 이륙, 착륙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꿈이라고 여겨야 했다.




지상으로 떨어질 때, 고도가 귀를 먹어버렸다.


귀속에 대기층이 들어가 버렸다


침을 꿀꺽 삼켜보다


간지러워 귀안을 후벼판다


지상으로 향하는 낙하하는 체험은


귀가 정상화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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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에서 귀의 기능이 차단되는 것도


수압뿐만 아니다.


지상의 세상과 다른 차원의 세상이기에 적응되는 과정이다.


하늘을 날고 있는 차원은 보통 사람이 경험하는 최고의 환상이다.



탑승객은 구름이 되고, 별이 되는 환상 속에 주인공의 무대가 펼쳐진다.


태양을 향해 가거나 어깨에 두고 가거나 모두 강렬한 빛줄기에 쌓인다.


어두운 하늘에도 천둥과 번개를 제우스처럼 가까이할 수 있는 경험이다.


구름보다 높게 나를 수 있으니 손오공보다 더 높은 공력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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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성층권 대기권으로 구분되는 것처럼


우리의 몸도 육지에 다다를 때까지


하늘의 물고기가 하늘 심연에서


지상으로 가라앉는 과정이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숨을 쉬는 것처럼


사람은 지상의 공기에서 호흡할 수 있다.




귀가 열리고 눈이 바람을 가르기까지


항공기는 낙하단다.


착륙을 위한 낙하는 구름을 뚫고


고요한 기상 변화에 부딪힌다.


사람은 하늘에서 살 수 없다. 하늘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하늘을 이동하는 항공기에 탑승하는 것이다.


잠수정에 몸을 싣고 바다의 심연을 여행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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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니체의 책에서 그는 "인간은 날 수 없으니 새를 동경하는" 문장이 기억난다.


15세기~16세기초의 인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평생의 꿈은 인간이 비행하는 것이었다.


니체도 다빈치도 인간이 하늘과 우주를 비행하는 세상을 볼 수 없었지만,


이 땅 이 생애의 초인을 철학적으로 또 과학적으로 설파하였던 선각자들이었다.


우리들은 그들의 후예로 하늘과 가까운 행운의 시대에 살고 있다.


비록 <천공의 성 라퓨타> 사람들은 아니지만 하늘을 정복한지 오래된 인류다.



21세기 사람들은 지구촌 바깥 하늘을 유영하는 세상을 만들었다.


우리는 하늘과 점점 더 친해지고 하늘의 숨겨진 비밀을 캐내고 있다.



항공기 좁은 창문으로


논과 밭이 강물에 구비치는 모습이 보인다


구릉과 언덕이 손에 잡힐듯하다.


도로에 차량들이 레고처럼 이동한다.


그 위에 활주로를 안착하는 비행기는 사뿐한 것이 좋다. 비행기 착륙에 동원되는


마지막 클라이맥스는 바퀴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도 지상에서 바퀴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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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벨트 착용을 풀어서 비행기가 멈추면


두 발이 자유로워지는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하늘에서 지상으로 차원 이동되는 체험, 자유로워지는 순간이다.




우리가 살아야 하는 지상의 땅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가는 것이 이토록 소중하다.


사랑은 하늘에서 살지는 못하는 존재다.


다만, 하늘을 동경하면서 하늘만큼 꿈을 키워왔기에


사람의 문명이 진화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지구촌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와야 하는 것은


바로 현재에 이 생애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두 발을 서게 하는 이 흙에서 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하늘天, 땅地 사이에 사람人이 두발로 서있으니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고


그렇게 우리는 하늘과 지상을 잇는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


다시 하늘에 오를 때까지 지상의 존재로 하늘을 동경할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축복같은 한 삶을 성실하게 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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