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는 대장암으로 고통을 받다가 죽었다. 파리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조국을 위한 찬가를 작곡하다가 미완성으로 죽고 말았다. 그의 시신은 전쟁 중에 포화를 피해서 겨우 몇 명만 참여하는 소박한 장례식을 치렀다. 하지만 그는 19세기 20세기를 가르고 현대음악을 개창한 위대한 음악가로 재평가되고 있다.
그의 가장 유명한 곡 <달빛>은 수많은 영화의 배경 음악으로 우리의 귀에 친숙한 꿈결을 전해준다.
파리 음악원에서 그와 동문수학한 라벨은 사진과 같은 음악가였다면 드뷔시는 색채와 그림과 같은 음악가였다. 그는 그의 작품에 제목을 붙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바다> <아라베스크> <달빛>... 그 제목들이 모두 시적이다. 그가 시인들, 문학작품들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특히 인상주의 미술가들과 많은 교류가 있었다. 빛의 음악가가 드뷔시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음악에 색채가 보이고 그것도 몽환적인 신비가 입혀지는 음악을 창작한 그의 예술 세계는 고전주의 낭만주의 음악과 다른 세계였다.
그렇게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의 독보적인 판타지적 음악 색깔 덕분이었다. 그의 음악은 때때로 강렬하지 않았지만 몽롱한 화음이 꿈결 같았다. 젊은 시절은 극한의 강렬함이 중년에는 감미로운 호소력이 더 매력적이었다.
드뷔시의 대표작은 <목신의 오후> 오케스트라의 작품이다.
<스테판 말라르메의 목신의 오후>에 시들은 모두 상징적이다. 님프가 나오는 사랑 이야기는 몽롱한 비현실적인 신화의 스토리가 되어 그의 목신의 피리에 실린다. 목신의 피리조차도 님프가 변한 갈대로 만들었지 않은가!
그의 음악은 발레 공연의 음악으로도 이어졌다. 발레리나의 발끝에서 들어 올리는 그런 예술이 <목신의 오후 전주곡>에서 피리 소리에 실려있다. 그의 목신 신화의 문학적 음악이 만난 감정들이 잔잔하고 애처롭게 솟구치고 굽이친다.
드뷔시의 음악은 기존 음악에 대한 반란이지만 아무도 느끼지 못하는 고요함, 판타지적인 함성이다.
하나, 고요한 음악의 반란
이 고요한 음악이 주는 반란과 같은 호소력은 감상자를 꿈꾸게 한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 고요한 음악으로 어떻게 이런 반향을 일으키는지 스스로 심취하게 된다.
포르테를 적게 사용하면서 더 고요하게 피아노시모에서 울리는 감동을 배우게 된다.
둘, 판타지 음악의 반란
판타지 음악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하지만 드뷔시가 이 명곡들을 최초로 세상에 공개하였을 때,
이 장르는 낭만주의가 아니었다. 인상주의, 표현주의 또는 상징주의의 음악이었다. 현실이 아닌 판타지를 노래하는 음악들이 낭만주의적 음악의 극단과는 달랐다.
그의 음악은 말레르메, 보들레르의 시들이 연상되고, 기독교 성당의 분위기보다는 모스크의 문양들이 환상적으로 오버랩되는 느낌이다. 음악이 그러한 판타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 드뷔시에 사로잡히게 된다.
셋, 문학적 표현의 반란
드뷔시는 음악에 상징성을 입혔다. 즉 문학적인 색채로 음악을 창작하였다. 이것은 베토벤의 9번 교향곡처럼 실러의 시들이 합창의 노래 가사로 된 것과는 다른 것이다. 드뷔시의 큰 반란은 가사가 없다는 점이다.
드뷔시의 음악은 상징적으로 모호할 수 있다. 강렬함보다 애처로움이 더 호소 짙게 다가온다. 소설보다는 시적이고, 종합 예술, 악극적 심지어 과학적인 독일의 바그너 음악보다 문학적이고 상징성이 몽환적으로 다가오는, 회화적인 프랑스적인 드뷔시 음악이 된다.
넷, 바그너 음악에 대한 반란
악극 종합예술의 창시자인 바그너에 대한 도전이었다.
바그너의 음악을 배우려고 그의 도시로 찾아갔으나, 실망하고 반바그너 음악을 표방한다.
대악극의 종합예술보다 피아노 단독 독주와 같은 음악 세계에서 음악을 위한 음악을 창조하였다.
다섯, 피아노 음악의 재발견
성숙해지는 내 중년의 피아노 음악은 드뷔시 음악을 접하게 된 통로였다.
일요일 휴일이면 나는 그의 작품들을 연주하는 것이 삶의 큰 기쁨이다.
나는 드뷔시의 <달빛>과 <아라베스크>를 연습한다. 한 달 뒤 10월 가을에 나의 신간 <나는 누구인가>
북토크에서 피아노 연주도 함께 한다. 드뷔시의 피아노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으로 행복하다. 그의 피아노 음악을 발견하게 되어 더 행복하다. 피아노가 주는 많은 감동 중에서 그의 음악에 끌리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시적이기 때문이다.
쇼팽의 피아노 작품들은 명상과 같은 낭만주의 시이고, 드뷔시의 피아노 작품은 색채와 빛이 드러나는 그림 같은 몽환적인 시들이다.
피아노를 사랑하는 나는 드뷔시를 무척 사랑한다. 보들레르와 말라르메의 상징시들, 인상주의 화가들이 살아 숨 쉬는 그의 음악을 사랑한다. 문학과 예술이 음악으로 승화된 드뷔시를 사랑한다.
https://youtu.be/97_VJve7UVC? si=7Tl35C-dVs6pLMkk
드뷔시의 곡을 10월25일 호프맨작가의 연주로 시낭독과 함께 만나실 수 있습니다.
지금 교보문고, 예스24시 온라인에서도,
다음주는 호프맨작가의 시세이집, 종이책 <나는 누구인가>를 교보문고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10월 25일 호프맨작가의 <피아노 연주 + 북토크> 참가 신청서 작성해 주세요.
선착순 좌석이 마감될 수도 있사오니 하단 네이버폼에 신청하여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