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에게 영향을 준 책, <휘페리온> 휄덜린의 서사시

독일 낭만주의 문학의 숨겨진 최고봉.. 인류의 지성, 문학가들, 철학가들


18세기 독일 낭만주의 문학은 독일의 음악사와 함께 절정에 이른다. 그 시절 인류의 지성, 문학가들, 철학가들이 쏟아졌다. 빛나는 그 별들 중에 한 불행한 시인의 삶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프리드리히 횔덜린,


그의 유일한 소설은 <휘페리온>, 시같은 문장들이 모두 편지글의 형식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다.



그는 1784~1788 실러, 클롭슈토크, 슈바르트, 오시안, 영의 작품을 읽고 영향을 받으며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정신착란에도 불구하고 극복하면서 다수의 작품 남기게 된다. 마울브론 수도원 관리의 딸 나스트를 향한 사랑 움트진 실패함.... 실러, 괴테의 제자처럼 영향을 받았으나, 그의 문학세계가 도리어 가려짐. 독보적인 시인, 작가의 세계를 은둔자처럼 열어간다. 그는 끝내 정신병 진단을 받으면서도 고통을 이겨내고 고독한 창작을 이어간 그의 천재적인 삶이 한편의 고독한 시였다....





%ED%94%84%EB%A6%AC%EB%93%9C%EB%A6%AC%ED%9E%88_%ED%9A%94%EB%8D%9C%EB%A6%B0.jpg?type=w966




1770년 3월 20일 독일 서남부의 작은 마을 라우펜에서 태어난 횔덜린은 1788년 튀빙겐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신학보다는 그리스 고전문학과 철학 그리고 시작(詩作)에 심취했다. 교우 헤겔, 셸링과 교유하며 신학교를 졸업한 횔덜린은 모친의 간절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성직자가 아니라 시인의 길을 걸었다. 시쓰기등 창작에 열중하면서 생계를 위해 독일은 물론 스위스와 남부 프랑스 등 여러 곳에서 가정교사로 일했다. 횔덜린은 가정교사로 가 있던 프랑스 보로도에서 돌아온 1803년 여름, 정신착란의 징후를 보여 1806년 튀빙겐의 아우텐리트 병원에 강제로 입원 조치 되었고, 1807년 5월 3년의 시한부 여생을 선고받고 퇴원해 성구 제작자 치머의 보호에 맡겨졌다. 그 후 튀빙겐 네카 강변의 반구형 옥탑방(후일 일명 ‘횔덜린 투름’)에서 정신착란자로 36년을 살다가 1843년 6월 7일 7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횔덜린은 정상인으로서의 비교적 짧은 창작 기간에도 불구하고 「반평생」, 「빵과 포도주」, 「평화의 축제」등 많은 서정시와 소설 『휘페리온』, 비극 『엠페도클레스의 죽음』을 썼고,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과 『안티고네』, 핀다르의 송가등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그밖에 철학과 문학에 관한 여러 편의 에세이와 시인의 고뇌와 환희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300여통의 편지가 전해진다.


<프리드리히 횔덜린> 연보에서 인용....





%ED%9C%84%EB%8D%9C%EB%A6%B02.jpg?type=w966





독일의 18세기는 독일 고전문학의 절정을 이룬 시기였다. 바로 실러와 괴테와 같은 위대한 문학가들이 있었고, 그들에게 가려진 시인, 휄덜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휘페리온>은 가장 위대한 문학적 철학서인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영향을 준 책이라는 것을 동감한다. <휘페리온>의 문체와 문장들을 만나면, 그 웅장한 필체와 심금을 울리는 감성과 인간 정신을 읽게 된다.






SE-3fc57485-4e18-4341-90d3-117608a07b23.jpg?type=w966




"고유한 삶, 나는 외쳤습니다, 새로운 삶, 성실한 삶. 도대체 우리는 마치 도깨비불처럼 늪에서 태어났는가, 아니면 살라미스의 승리자들의 후예인가? 지금은 도대체 어떤가? 그리스의 자유로운 천성이여, 그대는 도대체 하녀가 되고 만 것인가? 어찌하여 주피터의 신상과 아폴론의 신상도 한때 그대의 복사판에 지나지 않았던 종가(宗家)인 그대가 그렇게 타락해 버렸단 말인가? - 그러나 이오니아의 하늘이여, 나에게 귀 기울여 달라, 들어 보아라, 조국의 대지여, 그대는 반라가 되어 걸인처럼 옛 영광의 누더기 조각을 감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더 이상 참지 않겠다. "


- <휘페리온>, 프리드리히 횔덜린 지음



휘페리온은 편지 형식으로 사랑하는 디오티마와 알라반다에게 쓰는 독백록이다. 서간체 소설의 특징들은 고백의 내용들이 많다는 지점들이다. 특히 디오티마와 휘페리온 사이에 오고가는 편지들은 자칫 연애소설의 편지로 이해하기에 너무도 웅변적이어서 더 깊이 빠져들게 한다. 그 비극의 엔딩이 더 처절하게 독자의 숨을 막히게 한다. 왜냐하면 디오티마는 끝내 죽고 만다. 그녀의 죽음에 이르지만 살아남은 연인은 인류에게 그 비극을 전승한다. 마치, 트로이의 전쟁처럼 그리스와 터키의 전쟁에서 살아돌아온 휘페리온의 서사시가 극적인 막을 내리기 때문이다. 낭만주의적인 극적인 형식과 감미로운 시적인 표현에도 불구하고 깊은 인문학의 철학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고전의 필독서 중에 하나라고 믿는다.







언젠가 한번 나는 멀리 들판에 나가 우물곁에 덩굴이 초록으로 덮고 있는 바위와 드리워진 꽃이 만개한 풀숲의 그늘 아래 앉았다. 때는 내가 알고 있는 한 가장 아름다운 한낮이었다.* 감미로운 바람이 불었고, 아침과 같은 신선함 가운데 대지는 빛나고 있었으며, 빛은 그 고향 같은 천공 속에서 조용히 미소 짓고 있었다. 사람들은 집의 식탁에서 휴식을 취하고자 모두 일터에서 떠나 버렸다. 나의 사랑이 봄과 함께 홀로 남았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동경이 내 마음 안에 자리했다. 디오티마여, 나는 외쳤다. 그대 어디에 있는가, 오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마치 디오티마의 목소리를 듣기라도 하는 듯했다. 한때 기쁨의 나날에 나를 쾌활하게 해 주었던 그 목소리를.。。。。


- - <휘페리온>, 프리드리히 횔덜린 지음






휘페리온의 서사는 인문학의 역사를 망라하고 흐른다.


고대 그리스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철학자 헤파이토클레스부터 솔론에 이르기까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고대 그리스의 신들의 이야기까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딧세이아를 포함하고 있다. 더불어 예수님의 산상수훈부터 근대 철학가들- 스피노자까지 특히 루소의 자연철학과 <에밀>에서 보여지는 교육사상을 담고 있는 웅장한 퍼레이드를 그의 <휘페리온>의 서간집의 서사에 품고 있다.




<휘페리온>은 실러와 괴테의 시와 같은 감성의 비가와 같은 느낌도 있고 철학가들의 중용과 이성의 조화도 품고 있다. 자연의 범신론과 같은 스피노자의 철학을 보는 느낌도 있고, 동시에 신과 같은 경지의 인간성을 만나기도 하는 필체로 가득한 문장들이 떠오르게 하는 책이 있다. 바로 1세기 뒤에 세상을 바꾼 철학서,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화자를 떠올린다.




횔덜린과 니체의 공통점이 있다. 휠덜린도 니체도 인류의 시원과 인간 정신을 탐구하는 고독한 은자로 살면서 정신적인 착란의 고통에 시달렸다는 지점이다. 또 하나는 두 위인 모두 고대 및 근대까지의 인문학을 두루 섭렵한 지식과 지혜들로 작품을 완성하였던 점이다. 그러한 지식들과 지혜들이 신의 경지에 이르는 예술의 중요성과 문학과 철학의 문체로 설법하는 고전의 탄생시킨 것이다.








『휘페리온』은 그리스 청년 휘페리온이 독일인 친구 벨라르민과 연인 디오티마와 주고받은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편지에서 휘페리온은 황금시대인 유년기, 스승 아다마스와의 만남, 행동주의자 알라반다와 함께한 그리스 해방 전투, 이상적 세계의 상징인 디오티마와의 사랑과 이별, 알라반다와 디오티마의 죽음 등을 겪은 뒤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며 현재의 심경을 술회한다. 이 작품은 특별한 사건보다는 인간과 자연이 총체적으로 조화를 이룬 전일한 세계에 대한 사무치는 동경, 휘페리온 안에 있는 불협화의 해소를 종착점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독일 교양 소설의 새로운 유형을 보여 준다. 18세기 후반 그리스. 고향인 티나 섬에서 평온하고 침해받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낸 뒤 서서히 세계의 본성에 대해 묻기 시작한 청년 휘페리온은 아다마스와 만난다. 아다마스는 휘페리온에게 신화, 역사, 수학, 자연, 천문학을 가르치며 고대 그리스의 세계를 이상으로 제시한다. 당대의 철학자 피히테를 연상시키는 아다마스는 모든 개인은 신성(神性)을 가지고 있으며, 높은 상태로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휘페리온은 그런 아다마스를 통해 ‘우리 안에 들어 있는 신’이라는 공식을 배우며, 보다 아름답고 전일(全一)한 세계를 예감한다. 그러나 아다마스는 휘페리온에게 혼자 나아갈 길을 찾도록 하고 아시아로 떠난다. 스승과 작별한 휘페리온은 더 큰 세계인 스미나르로 나온다. 그는 이곳에서 알라반다를 만난다. 알라반다는 피히테의 영웅적인 주관주의 철학 정신을 지닌 인물로, 혁명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 했다. 스승 아다마스가 성찰적 측면에 서 있는 인물이라면, 알라반다는 행동의 측면에 서 있는 인물이다. 휘페리온은 알라반다의 그런 행동욕에 감동을 받고, 알라반다가 속해 있는 네메시스 동맹(Bund der Nemesis)과 함께한다. 둘은 에로틱한 동성 관계로 우정을 나눈다. 하지만 네메시스 동맹 때문에 둘 사이에는 불화가 생긴다. 휘페리온은 행동하는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윤리 의식의 결여를 회의적으로 바라보고, 알라반다는 휘페리온의 이상주의를 몽상이라고 조롱한다. 이 무렵 휘페리온은 칼라우레아 섬에서 디오티마라는 여인을 알게 된다. 아다마스와 알라반다가 인간의 지평에서 자유를 지향하는 인물상이라면, 디오티마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 안에서 막힘없는 자유를 구가하는 이상적 인물상이다. 디오티마는 횔덜린이 동경한 그리스 정신의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횔덜린에게 그리스 정신이란 모든 대립물을 하나로 조화시키고 이해시키는 능력과도 같다. 휘페리온은 생각 속에만 있다고 여긴 완전함의 실체를 디오티마를 통해 경험하고는 그런 디오티마를 ‘미’라 부른다. 이러한 때 휘페리온은 알라반다에게서 그리스 해방 전투에 참여해 달라는 편지를 받는다. 휘페리온은 자신의 이상을 빨리 실현하기 위해 디오티마와 헤어진 뒤 전쟁에 참여한다. 그러나 전쟁은 참담한 패배로 돌아가고, 동료들의 혁명 의지는 변질하여 제 백성까지 죽이는 지경에 이른다. 전쟁의 참사를 겪으면서 휘페리온은 직접적인 힘으로는 이상을 실현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한편 휘페리온에게 자신이 모든 것일 수 없다는 것을 경험한 디오티마는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고, 이 소식은 그녀의 친구 노트라를 통해 휘페리온에게 전해진다. 해방 전투에서 좌절을 겪고 알라반다와 디오티마도 세상을 떠난 뒤 휘페리온은 독일에 머물면서 자연과의 내면적 대화로 돌아간다.


<을유문화사의 줄거리 인용>






%ED%9C%84%EB%8D%9C%EB%A6%B0.jpg?type=w966







매거진의 이전글좋은 생각 좋은 글쓰기 <에너지 배터리 충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