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나라 베트남 공원 태권도정신
우리들 대부분 어린시절 태권도장에 잠시 다녔고 또 군대에서 태권도 수련하던 추억들이 있으실 겁니다.
잊어버렸던 무도인의 피가 끓어오르는 순간을 타국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사실 태권도의 피가 우리 한국인들에게 흐르는 것을 한민족의 고대 역사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다양한 전통 무도가 있으며, 그중 국선도와 화랑도는 특별한 역사적 배경과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 무도는 신체 단련뿐만 아니라 정신 수련에도 중점을 두고 있어, 단순한 무술을 넘어서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여름나라 베트남 현지에서 그것도 사방으로 개방된 공원에서 태권도의 기합이 뜨거운 공기를 가릅니다.
그 모습에 정신이 번쩍 뜨이고 매료되어 한 시간 가까이 머물러서 간접 수련되었습니다.
여름나라 베트남의 태권 소년들의 우렁한 함성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어찌 된 것인지.. 15분이 지나도록 사부님은 소년들에게 무술 동작을 가르치지 않고 잔소리만 늘어놓는 것입니다.
그토록 무술 동작을 기다린지 오래지만 그들은 몸 자세와 도복의 자세만 강조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들에게 태권도 정신을 가르치고 있었던 겁니다.
<한국 전통 무도의 역사>
해동검도, 기전, 무한무루, 경당(24반 무예): 한국의 전통적인 무예로, 중국이나 일본의 무예와는 다른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화랑도: 신라 시대의 화랑들이 수행하던 무예로, 무술뿐만 아니라 예술, 문학, 철학 등 다방면에 걸친 교육을 받았습니다. 화랑도는 신체적, 정신적 수련을 통해 인격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신라시대의 화랑도는 지금도 우리 국군의 정신적 무도에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화랑도 이전에 우리 민족에게는 훨씬 더 오래된 무도가 있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무예 정신, 심신 수련법은 고대문명의 기원에서부터 그 뿌리가 전해지고 있었던 겁니다.
태권도 정신은 홍익인간에서 이어지는 것을 가르칩니다.
국선도의 역사
국선도의 기원: 국선도는 약 9800년 전 하늘 함도인으로부터 시작되어 고조선 시대를 거쳐 내려오면서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왔습니다. 국선도는 정신과 신체의 조화를 중시하는 수련법입니다.
현대 국선도: 현대에 이르러 국선도는 청산선사 고경민이 1967년부터 보급한 양생법 또는 기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산에서 수련하던 중 스승 청운 도인을 만나 국선도를 전수받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여름나라 베트남 공원의 태권도 소년들의 함성
무예는 활 · 칼 · 창 · 총포 등을 이용하여 전투에서 적과 겨루는 행동이다. 고대부터 우리나라는 신시(神市) 이래로 특별한 구역에 소도(蘇塗)를 세우고 국책으로서 무사들을 양성하였다. 신채호(申采浩)의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에 따르면 소도의 경기에서 선비를 뽑아 학문과 검술 · 궁술 · 기마 · 택견 · 주6 · 헤엄 등의 기예를 닦고, 산천을 두루 여행하게 하였다고 한다.
고구려의 동맹(東盟), 부여의 영고(迎鼓), 예의 무천(舞天), 마한의 시월제(十月祭)와 같은 고대 제천행사에서 무예 경기가 열렸음을 말해주고 있다. 특히, 소도가 선 곳에는 충 · 효 · 신 · 용 · 인의 오상 지도(五常之道)가 있었으며, 소도의 옆에는 반드시 경당(扃堂)을 세우고 미혼 자제들에게 독서와 습사(習射) · 치마(馳馬) · 예절 · 가악(歌樂) · 권박(拳博) · 검술(劍術) 등의 6예를 강습하게 하였다.
이처럼 활을 쏘고 말을 달리고 무술과 검술을 하는 것은 고대의 젊은이들에게 중요한 교육과목으로 실시되었다. 이러한 무예는 고구려 고분인 삼실총 · 쌍영총 · 무용총 · 각저총 등의 벽화에 나타나 있는 기사도(騎射圖) · 수렵도(狩獵圖) · 무인도(武人圖) · 개마도(鎧馬圖) · 기전도(騎戰圖) · 택견 · 씨름 등의 그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는 오늘날처럼 씨름 · 택견 · 궁술 등으로 분류되지 않은 종합무예였으며, 살상과 놀이 및 무용 등의 요소를 고루 갖춘 형태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고려 시대 후반 총포와 화약의 사용으로 무예 종목들의 효용성이 떨어져 민속놀이로 변형하였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우리의 무예 비법이 실전되고 중국의 무예와 권법이 널리 소개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활이나 칼 등의 무기를 이용한 무예는 개인적인 수련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용하는 군대 조직에서도 군사적인 효과가 높았다.
국가정책에 따른 각 시대별 무예의 실태를 보면, 고려 1384년(우왕 10)에 중낭장 각 해룡(郭海龍)이 건의하여 무예도감을 설치하고 무예로 무인을 선발하였으며, 조선 초기에는 1392년(태조 1) 훈련관(訓鍊觀)을 설치하였고, 1467년(세조 13) 훈련원(訓鍊院)으로 개칭하여 군사에게 무예를 훈련시켰다. 그러나 고려 시대와 조선시대 초기까지의 무예로서는 궁사(弓射)에 속하는 몇 종류에 불과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무예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어 척계광(戚繼光)의 『기효신서(紀效新書)』를 얻어 보고 장수들에게 그 기법을 물어서, 낭선(狼筅) [^4] · 등패(藤牌) · 곤봉(棍棒)의 여섯 가지 무기를 쓰는 기술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사전 인용>
여름나라 베트남 현지 베트남 태권도 소년들
태권도(跆拳道)는 무기 없이 손과 발을 이용해 공격 또는 방어하는 무도로, 발차기 기술을 특징으로 하는 근대에 형성된 전통무예 무술이다. 1988년 하계 올림픽에서 시범 종목으로 채택되었고, 2000년 하계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최홍희(崔泓熙, 1918년 11월 9일 ~ 2002년 6월 15일)는 함경북도 명천군에서 태어난 대한민국 육군 장성 출신 무술가로, 국제 태권도 연맹(ITF)이 주장하는 태권도의 창시자이다.
한편 군 장성이었던 최홍희는 민간 도장과는 연이 없었으나, 청도관 출신 인사들이 많던 군대 내 도장 오도관을 창립하고 초대 관장이 된다. 그는 어려서 택견을 배웠다는 말도 있고[3], 일본 중앙대학을 다니면서 가라테를 배운 뒤, 군에서 복무하며 군대 격투기로 가라테를 지도하였다. 1954년 그의 부대를 시찰한 이승만이 일종의 변형 가라테 시범을 관람한 후 택견으로 착각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최홍희는 택견과 비슷한 단어를 찾다 태권에 도를 합하여 태권도라는 명칭을 창안했다. 1953년 제29보병사단장이 된 그는 부대명을 태권도 부대라 명명하고 경례 구호도 태권이라 한다.
1959년 처음 대한 태권도 협회가 만들어졌고, 1966년 국제태권도 연맹(ITF)이 만들어져 최홍희가 총재로 취임한다. 1972년 최홍희가 정권과 갈등을 빚다 캐나다로 망명하며 ITF 본거지를 토론토로 옮기자, 대한 태권도 협회를 중심으로 새로 세계태권도연맹(WTF)을 창립하여 태권도 보급에 나선다. 1973년에는 국기원이 건립되었다. ITF는 북미권에서 인지도를 얻다 1980년대 이후 북한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에 태권도를 중심적으로 보급하며, WTF와 함께 세계 태권도계를 양분하게 된다. 2007년 기준으로 WTF에는 185개국이 회원으로 가입되었고, 약 680여만 명의 유단자가 배출되었으며[4], ITF에는 2007년 기준으로 102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되어 있다.
<위키피아 백과사전 인용>
햇살이 따가운 여름나라 베트남의 공원 한편에서 우렁찬 함성으로 하나, 둘, 셋, 넷의 구호에 따라 태권도 동작이 바람을 가릅니다. 그 동작들과 구호에서 베트남 소년들은 '태권도 정신'을 배웁니다.
태권도 정신을 기합에 실어서 뜨거운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는 것을 날려버립니다.
이 베트남 소년들의 절도있는 동작에 굳센 표정들이 그들의 정신을 빛나게 합니다.
반 시간 정도 넋을 잃고 그들을 바라보다가 사진과 영상에 담아서 고국에 전달하고 싶어졌습니다.
어려서 로봇 태권 V의 만화영화(1976년 작품 김청기 감독)를 보면서 늠름한 태권도의 기상을 소년, 소녀들에게 전해주던 기억도 새록새록 합니다. 태권동자 마루치(소년), 아라치(소녀)가 아이들에게 착한 용기를 가르쳐주던 그 TV만화도 기억나네요.
이제 해외에도 한류의 열풍과 세계 강국의 반열에 올라서는 우리나라의 위상이 그대로 태권도에 전해집니다. 태권소년들의 기합에 여름나라 푸른 공원의 바람들이 꺾일 것 같습니다. 저 소년, 소녀들이 반만년 전통의 한국의 무예 정신을 익히고 한국과 좋은 우애의 이미지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반시간이 지나자 반전이었습니다. 15분 이상 태권소년들의 자세와 태도를 강변하던 사범님께서 자세를 바꾸어 의자에 걸터 흐트러지고 어쩡쩡한 자세로 감독하고 있습니다. 태권도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하겠습니다. 스승이 먼저 모범이 되어야 하는데,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학생들에게만 올바른 자세를 강요하면 안될텐데요.
베트남에서 태권도가 보급된 것은 대략 1960년대 초반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지난 1965년 전국 태권도 선수권대회가 사이공에서 처음 열린 뒤 베트남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수련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1969년에는 첫 국가 대표팀이 꾸려져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 태권도 선수권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이는 첫 해외대회 출전이었지만 베트남은 금메달 7개, 은메달 2개, 동메달 3개를 획득하면서
기염을 토했습니다.
1992년 12월 역사적인 양국 수교를 전후해 태권도 보급은 더욱 속도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1996년 12월에는 베트남태권도연맹이 창설됐으며 이어 1998년 국가 태권도
선수권대회가 호찌민에서 열렸습니다.
베트남의 첫 올림픽 메달이 나온 종목도 태권도였습니다.
한국체대에서 수련한 쩐 히에우 응언이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뤘지요.
<연합뉴스 인용>
베트남에서 7년째 살아가고 있습니다. 호찌민 주말집 이 공원에서 힐링이 됩니다.
평일에는 지방 일터에서 베트남 사람들과 하루종일 함께 일하면서 살아갑니다.
베트남 젊은이들에게 한국의 정신에 대하여 이처럼 온몸으로 전달하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베트남의 한류 원조는 태권도의 교류라고 합니다.
태권도의 정신을 생각하면서 한,베트남의 우의가 공존 번영하기를 바랍니다.
태권도 정신 - 예의, 염치, 인내, 극기, 백절불굴의 정신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삶의 철학이요, 기본적인 생활 자세가 되어야 함을 가르칩니다.
예의 : 서로 공경하고 의리를 지키며 사람으로 해야 할 도리를 다한다.
염치 : 사람의 도리에 어긋난 행동에는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안다 .
인내 : 어떠한 어려움도 참고 견디며 스스로 이겨낸다
극기 : 자기의 욕구와 욕망을 참고 이겨서 굳건한 의지를 기른다
백절불굴 : 어떠한 어려움도 굴하지 않고 바르게 이겨낸다
<태권도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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