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핀 봄꽃처럼 싱그러운,
알콩달콩 예쁜 사랑이 싹트는 나이,
스무살 재윤이도 드라마처럼 달달한 사랑을 꿈꾸었답니다.
불편하고 보기 흉한 제 손과 발을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던 재윤이는 다른 사람도 꼭 자기처럼 따뜻하게 포용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사랑할 줄 아는 넉넉한 품성을 지녔었지요..
햇살 같은 미소로 가만히 상대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상대를 배려하는 은근한 목소리로 어려움을 살피는 태도는 오히려 나이 많은 이 엄마가 배워야 할 덕목이었습니다.
외모 지상주의 세상에서는 도무지 어필하기 어려운 사랑의 악조건 속에서 외사랑, 짝사랑이 자라는 건 당연한 것이었겠지요.
여러 모양의 사회적 냉대와 홀대, 무시와 놀림을 나름의 방식으로 이겨내며 자기만의 꿈과 색깔을 찾아가던
재윤이가 어려서부터 특히 좋아했던 건 신나는 음악이었습니다.
그런데 스무살 무렵 언제부턴가 의미 있는 표정으로 이은미의 발라드 “애인 있어요”를 따라 부르더군요.
옆에서 가만히 가사를 음미 해 보니 짝사랑하는 상대가 자기 마음도 모르고 애인이 없는 것을 걱정해 주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너라는 걸 왜 모르냐는 탄식 섞인 독백이었습니다.
노래의 주인공은 바로 재윤이라는 걸 금방 눈치 챘지만 그렇다고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학교 친구 중 체구도 외소하고 내성적이며 가정환경이 어려워 학교생활을 힘들어했던
남자친구를 짝사랑하고 있었나봅니다.
몸이 성치 않은 재윤이가 의지할 만한 건장하고 믿음직한 다른 친구가 아닌 것이 아쉬웠던 저는 눈치 없이 슬쩍 속내를 비추고 말았습니다.
남몰래 짝사랑을 키워가던 재윤이 마음이 처참히 무너졌던 건 그 만남을 탐탁치 않게 여겼던 엄마의 방해가 아니라 그 친구의 ‘커밍아웃’ 때문이었습니다.
첫 사랑이 꽃 피기도 전 뿌리 째 말라버린 아픈 사연은 재윤이가 병상에 꼼짝없이 누워, 저와 도란도란 나누던 속 깊은 대화 속에 묻어 나오더군요.
마치 좋았던 옛 일을 회상하듯 옅은 미소를 띤 재윤이의 얼굴은 지난 날 사랑에 가슴앓이 하며 들뜨고 짜릿했던 순간들과 무너지는 가슴으로 사랑을 정리해야했던 그 모든 시간을 아우르며 운명과 삶을 넉넉히 감싸 안는
은은한 달빛 같았습니다.
이제 나의 영원한 애인이 되어 하늘나라로 떠난 내 마음 속 재윤이와
그녀가 생전 사랑했거나 또는 시간이 짧아 미처 만나거나 사랑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저도 오래오래 이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내 눈에만 보이는 소중한 당신,
내 입술에 영원히 담아둘 당신,
가슴 깊이 숨겨두고 싶은 당신,
당신만 모르는 그 사람.
내게도 애인이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