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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석 Feb 17. 2020

희생은 타인에게 시간을 쓰는 것이다.

사랑도 사람도 자본의 아래에 놓여져 있는 시대에 희생이나 헌신과 같은 

사랑도 사람도 자본의 아래에 놓여져 있는 시대에 희생이나 헌신과 같은 거룩하고 숭고함에 무슨 가치가 있을까

오롯이 '내 것'만이 삶의 근원이 되는 세상에서 나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 일에는 눈길 하나 주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에둘러 말한다. 과연 그것은 극히 실용적이고 경쟁 사회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처세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현상이 팽창할수록 안타깝게도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의 거리는 콘크리트 벽처럼 얼음장과 같이 차갑고 쇠처런 단단하다.

너무나 차갑기에 이웃에 누가 죽어도 며 칠을 모르고 이내 뉴스가 터질때쯤 죽은 사람이 옆집 사람이었음을 미디어를 통하여 접한다. 아울러 호구 잡히지 않기위해 각자마다 호구(護具)를 쓴다.


'시간은 돈이다'(시간은 금이다)라고 말한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을 곱씹어 보면 암묵적으로 세운 삶의 최상위에 있는 자본과 시간을 동일선상에 세웠다는 것을 볼수 있다. 이 시대에서 시간은 돈만큼이나 소중한데다가 가수 선미의 노래처럼 24시간이 모자르기에 남한테 쓸 '잉여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처럼 시간이 없는 세상 속에서, 타인을 위해 시간을 쏟는 것만한 희생은 없다. 게다가 무보수라면 더더욱이 그렇다. 타인에게 시간을 쏟는 것이 곧 타인을 상승 시켜주는 것이기에(역설적이게도 나도 상승하지만) 지금의 이데올로기와는 맞지 않는다. 이것을 거스르는 것은 죽음과도 같아 보이기에 쉽지 않다.


그러나 태어남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내가 지금 여기 있기까지, 금 같은 시간을 태운 수많은 희생이 있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고차원의 사랑이라고 했다. 사랑하기에 희생하고, 희생하기에 사랑한다는 이 두 관계 속에서 분명히 빛은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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