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해지지 않는 직업을 찾아서

영화 <카이로의 붉은 장미>

by 호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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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상상,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과 현실 세계의 '나'가 끊임없이 충돌한다. 우디 앨런의 영화를 욕하고 거부하면서도 예전부터 우디 앨런의 영화를 봐온 사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영화 속 주인공은 우리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내면 자아와 비슷한 속성을 갖고 있음을 말이다 다시말해 꼭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그가 만들어낸 영화 속 주인공들은 내면에 탑재되어 있는 몹쓸 자아가 바깥으로 분출된다는 것에 차이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는 내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지속적인 혼란과 환상이 어쩌면 현실 세계의 나를 굴러가게 만드는 힘이니깐.



영화 <카이로의 붉은 장미>는 서로가 서로의 세계를 욕망하는 데에서 기인한 웃지 못할 해프닝이에 관한 이야기다.


경제 대공황 속에서 경제적 문제로 힘들게 살아가는 시칠리아는 영화를 통해서 위안을 받는다. 평상시처럼 그녀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데 그날따라 스크린 속 배우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느낀다. 급기야 자신에게 말까지 걸고 스크린 밖으로 나온다. 남편의 가정폭력과 신경질적인 사장으로부터 따뜻한 말 한마디 듣지 못하던 시칠리아는 세상 상냥하고 젠틀한 영화 속 인물 탐과 사랑에 빠진다. 한편 스크린 내부 세계에서 살아서 끊임없이 연기를 해야 할 배우가 사라지자 영화계는 발칵 뒤집어진다. 탐을 연기했던 진짜 탐이 그를 찾아 나선다. 진짜 탐 그러니깐 현실 세계의 탐은 가짜 탐을 찾다가 우연히 시칠리아를 만나고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줄줄 외우는 그녀를 보고 감동한다. 시칠리아를 홀딱 반하게 만든 진짜 탐은 같이 할리우드로 가자고 그녀를 꼬드기고 가짜 탐을 스크린으로 복귀시킨다. 시칠리아는 진짜 탐과 할리우드로 떠나기 위해 짐을 가득 싸서 나오지만 탐은 이미 떠났다. 시칠리아는 <카이로의 붉은 장미>를 서글픈 눈으로 응시한다. 영화를 막을 내린다.



영화는 진짜 탐이 시칠리아에게 정말 흔들렸는지 그녀에게 사랑에 빠졌었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결론은 그는 떠났고 그녀는 남겨져있다. 그럼에도 필자는 탐이 시칠리아에게 아주 많이 흔들렸을 것 같다는 의견이다. 그리고 할리우드로 돌아간 진짜 탐의 삶이 많이 바뀔 것 같다. 영화상에서는 시칠리아가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불우의 여주인공으로 표현되어 영화를 많이 본 사람은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지 못해 불행해진다 같은 결론처럼 보인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시기에 혹은 과거 대공황 시기에 이렇게라도 상상하며 행복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서 내 자아를 입체적으로 갈고닦을 수만 있다면 살인만 아니면 괜찮을 것 같다.


예전에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시칠리아는 멍청해 보였고 영화를 많이 보는 것에 회의 감이 들었다. 전공 수업에서< PLAY IT AGAIN >과 같이 교수님이 소개해 주신 영화여서 당시 수업 주제에 맞게 영화를 해석할 줄 밖에 몰랐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오히려 꿈과 환상에 빠져 살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간절해진다. 우리 사회는 꿈과 희망이라는 단어를 교육할 때는 전면에 내세운다. 그것이 없으면 세상을 살아갈 수 없을 것 마냥. 하지만 막상 학교를 떠나면 꿈과 희망이라는 단어는 터부의 대상이다. 너무 희망찬 사람에게는 현실적인 감각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몽상가나 탐험가들에게는 외국에서 살아야겠네요 사업가 체질이신가 보다~라고 비꼰다. 그저 나로 살아가고 싶은데 그럼 나를 챙길 수 있는 돈이 필요한 것이 다인데 나를 소진하지 않을 일자리가 없다.


나의 자아가, 영혼이 구겨지지 않고서 일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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