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문장을 여러 번 읽는 이유

by 오동근

“아, 이 문장 참 좋다.”

책을 읽다가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무심코 손이 멈추며 눈으로 한 번 더 읽고 입으로 작게 읊조려 본다. 그 말이 마음속에서 한참을 맴돌 때면 책을 덮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게 된다. 꼭 뭔가 대단한 교훈이 담긴 문장이 아니더라도 나의 감정을 건드리고 지나가는 그런 말들. 혹시 여러분도 그런 문장을 만나본 적 있나요?


저는 평소에 책을 집 근처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요. 일단 돈이 들지 않아서 부담이 없고 생각지도 못했던 책들을 우연히 마주칠 때의 즐거움이 있죠. 하지만 도서관 책의 가장 큰 단점은 무조건 일정 기간 내에 반납을 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한창 몰입하고 있을 때 반납 기한이 다가오면 아쉽기 짝이 없어요. 그래서 감명 깊게 읽은 책은 결국 제 돈으로 사게 됩니다. 다시 읽고 싶을 때 손 닿는 곳에 있는 책이란 참 든든하거든요.


하지만 막상 책을 사놓고 다시 읽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이건 예전에 읽었잖아’, ‘내용도 다 기억나는데 뭐’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레 손이 가지 않더라고요. 이건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펼쳤는데 낯선 문장 하나가 불쑥 눈에 들어왔어요. ‘이런 말이 있었나?’ 싶어서 다시 전후 문장을 훑어보니 분명히 전에 읽었던 부분인데도 새롭게 느껴졌어요. 같은 책이라도 내가 어떤 시기, 상황에서 읽느냐에 따라 새로운 감정을 느끼곤 합니다.


그 이후로 저는 책을 읽을 때 마음에 들어오는 문장을 그냥 넘기지 않으려고 해요. 메모장에 옮겨 적기도 하고 생각이 떠오르면 짧게 기록도 남깁니다. 딱히 길게 쓰진 않아요. ‘이 문장이 내 마음에 들어왔다’, ‘지금 내 상황에 딱 맞는 말이다’, ‘이 말 덕분에 위로받았다’ 정도로 간단히 적어둡니다. 그렇게 남겨둔 기록들은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보면 정말 흥미로워요. 내가 왜 이 문장을 좋아했는지 그때 어떤 고민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어서요. 마치 오래된 일기장을 다시 펼쳐보는 기분이에요.


저는 좋은 책일수록 다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같은 책이라도 시간이 지나 내 마음이 달라지면 그 책이 하는 말도 달라지거든요. 어릴 땐 그냥 넘어갔던 문장이 성인이 된 지금은 뼈를 때리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해요. 그래서 어떤 문장은 평생 곁에 두고 계속 곱씹게 되는 것 같아요.


책을 다시 읽는다고 해서 늘 뭔가 새로운 걸 얻는 건 아니에요. 어떤 날은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이 사라져서 실망하기도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읽는 이유는 그 책이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예요. 문장은 그대로인데 내가 변했는지를 알게 해주는 거죠. 좋은 문장은 내가 지금 어디쯤 서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 되어줍니다.


혹시 책을 한 번 읽고 나면 다 끝났다고 생각해서 다시 손대지 않으셨다면 한 번만 더 펼쳐보세요. 예전에 좋다고 느꼈던 문장에 마음이 여전히 움직이는지 혹은 전혀 다른 구절이 눈에 들어오는지 확인해 보는 거예요. 그 작은 경험이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어요.


저는 요즘도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고 좋은 문장을 만나면 기록해요. 가끔은 그 기록들을 읽다가 몇 년 전의 제가 무슨 고민을 했는지,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를 떠올리게 돼요. 그리고 그런 흔적들이 모여 저만의 방향을 만들어줘요. 무작정 달려가기보다는 잠시 멈춰서 길을 다시 확인하게 만드는 거죠.


누군가는 책을 많이 읽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좋은 문장을 여러 번 읽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마음을 움직인 문장을 다시 읽고 그 의미를 곱씹는 과정은 어쩌면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작은 연습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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