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의도치 않은 실직을 하고는 매사 "왜 이렇게 일이 꼬일까 노력도 했는데 결과가 늘 안 따라주네."
이 생각을 매일 같이 하고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대한 결과는커녕, 오히려 더 깊은 좌절만 느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괜히 내 탓 같고 세상이 나한테만 가혹한 것 같은 마음이 들었고,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습니다.
지금에서 그때 당시를 돌이켜 보면 정말 저를 괴롭혔던 건 ‘실패’라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바라보는 제 마음과 태도였다고 생각해요. 이 진리를 깨닫게 해 준 계기는 다름 아닌 바둑의 전설 이창호 9단의 한마디였습니다.
이창호 9단은 바둑계에서 ‘무결점의 사나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승률을 자랑하는 프로기사입니다. 그런데 그가 승부 이후 반드시 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복기’입니다. 이긴 바둑도, 진 바둑도 다시 복습하면서 어디서 어떤 수를 두었고 그게 왜 좋았는지 왜 실수였는지를 되짚어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했던 말 중 정말 인상 깊은 표현이 있습니다.
"승리한 바둑을 복기하는 것은 이기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고 패배한 바둑을 복기하는 것은 이기는 준비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졌으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실패 = 무능함’으로 단정 짓고 다시는 그 기억을 떠올리고 싶어 하지 않지만 이창호 9단은 오히려 그 실패를 꺼내 보고, 해부하고, 교훈을 끄집어냅니다. 실패도 결국은 이기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는 그의 태도는 제게도 큰 변화를 주었습니다.
저 역시 어느 순간부터 일을 마친 뒤면 결과에 상관없이 과정을 복기해 보기로 했습니다. 기획이 실패했을 땐 ‘어떤 논리가 약했는가’, ‘누구의 입장을 놓쳤는가’를 돌아보았고 결과가 좋았을 땐 ‘무슨 흐름이 주효했는가’를 적어두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이상하게도 실패가 예전만큼 무섭지 않아 졌습니다. 실패가 곧 ‘망함’이 아니라 더 나은 승리를 위한 준비라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실패도 배우면 된다는 말은 그냥 긍정적인 위로에 불과해요.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실패는 그냥 실패일 뿐이고 아무리 멋지게 포장해도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고 믿었지만 그것은 큰 오해였습니다. 실패가 주는 교훈이 진짜 효과를 발휘하는 시점은 ‘시간’이 지난 후였습니다. 지금은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몇 달 혹은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그때의 경험 덕분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됩니다. 즉, 지금은 실패로 보이는 일이 사실은 더 큰 승리를 위한 ‘연습문제’였던 것입니다.
축구선수 출신 정대세 감독도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축구 인생에는 두 가지밖에 없다. 이기거나, 배우거나." 정말 멋진 말 아닌가요? 이겼다면 그대로 좋고 졌다면 배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둘 사이에 ‘완전한 실패’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는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 제 관점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관점이 바뀌니 예전엔 단순히 ‘망했다’ 고만 느꼈던 상황들이 ‘내가 뭘 배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바뀌었고 그 질문이 결국 더 나은 선택으로 저를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때 그 실수가 모든 걸 망쳤어’, ‘그때 실패하지 않았으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 텐데’라고 생각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실패가 우리 인생을 망치는 것이 아니라 그 실패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문제입니다. 실패한 뒤 자책만 하며 멈춰버릴 것인지 아니면 복기하며 다음을 준비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입니다. 실패의 순간을 영원한 낙오로 만들지 말고 다음 승리를 위한 영양제로 바꿔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거기에는 오직 ‘태도’라는 도구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요즘 잘 안 풀렸던 일, 미뤘던 결정, 실패했던 프로젝트에 대해 스스로 글을 쓰며 정리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반성이 아닙니다. 다음에는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한 준비 과정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두려움보다 자신감이 더 커지고 실패조차도 나의 성장을 도운 고마운 친구처럼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실패는 절대 우리를 망치지 않습니다.
우리를 망치는 것은, 그 실패를 ‘끝’이라고 믿는 마음입니다.
혹시 지금 마음 한편에 실패한 경험 하나쯤 안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괜찮습니다. 그건 아직 ‘진짜 끝’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실패는 여러분이 더 단단해지고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줄 것입니다.
이기거나, 배우거나. 우리 인생에는 그 두 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 스스로에게 조용히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내가 이 상황에서 배운 것은 무엇일까?”
그 질문이 여러분의 다음 승리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