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웅장해지는 문구

by 오동근

여러분들은 시를 좋아하시나요? 저는 학창 시절 국어시간에 교과서에 나오는 시 외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책을 읽으면서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시의 위대함을 알게 된 이후 관심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최근 이육사 시인의 「광야」를 듣게 되었습니다. 낯익은 시인의 이름, 어디선가 본 듯한 시 제목이었지만, 그날따라 그 시가 가슴 깊이 박혀왔습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다듬이 소리 들렸으랴…”


많은 사람들이 이육사의 「광야」를 떠올리면 “독립운동가의 시”, “시대정신이 담긴 작품” 정도로만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그런 해석은 맞지만 저는 이 시가 단지 과거를 담은 애국 시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강력한 메시지라고 느꼈습니다. 특히 마지막 구절인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는 구절이 깊게 마음에 남았습니다. 보통 이 부분에서 ‘초인’을 위대한 구원자나 특별한 인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지만 저는 이 초인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잠재된 가능성, 즉 스스로 깨워야 하는 존재라고 여겨졌습니다.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 즉 초인의 개념과 이 시의 초인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니체는 초인을 기존 질서나 도덕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만의 가치와 삶의 방향을 창조하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눈앞에 보이는 결과만 중요하게 여기고 빠른 성과를 원한다. 나무를 직접 심고 기다리기보다는 이미 열매가 열린 나무만 찾으려 한다.” 이 말은 이육사의 시 속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는 구절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곧,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은 결과를 쫓는 것이 아니라 씨앗을 심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요즘 우리는 빠른 세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빠른 속도가 미덕처럼 여겨지고, 성과는 눈에 보이는 것이어야 하며, 기다림은 무능으로 간주됩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그러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책을 읽어도 무언가를 배워도 항상 먼저 따졌던 것은 ‘이게 나한테 어떤 이득이 될까’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허전해졌습니다. 쌓인 정보는 많았지만 정작 나를 이루는 ‘무언가’는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 이육사의 시가 다시 다가왔습니다.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이 구절은 마치 오늘의 나에게 던지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누군가가 보아주기를 바라는 멋진 결과물이 아니라 조용히 씨를 뿌리고 그 씨앗이 자라기를 기다리는 일이었습니다. 당장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마치 내가 나를 키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방향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내가 잘 가고 있는지도 불확실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그럴 때 누군가가 해결해 주기를 기다립니다. 혹은 더 나은 기회가 오기를 바라며 멈춰 섭니다. “참아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이 말은 단순히 어떤 장소를 지킨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것도 나를 함부로 흔들지 못하게 할 만큼 단단해지라는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누군가의 기준이나 사회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나의 삶의 중심을 지키는 태도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기다리는 사람이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이끌어줄 날을 바라보는 대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선택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독서이든, 글쓰기이든, 그 무엇이든지 간에 씨앗 하나를 심는 일에 하루를 씁니다. 때로는 불안이 밀려올 때가 있지만 그럴수록 다시 「광야」를 읊조립니다. 그러면 희한하게도 마음이 다잡아집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작은 실천이 언젠가는 내 안의 초인을 깨우는 힘이 될 거라고 믿게 됩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께 조심스레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당신은 어떤 씨앗을 심고 계신가요? 혹시 세상의 기준에 맞추느라 나만의 씨앗을 찾지 못하고 계신 건 아닌가요? 불확실한 오늘 속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단단한 실천은 씨앗을 심는 일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시간이 오래 걸려도, 그 씨앗은 언젠가 광야에 뿌리내리고 열매를 맺습니다.


니체는 “정말 원하는 삶은 기다려서 얻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씨를 심고 길을 만들어가는 자만이 도달할 수 있다.” 이육사는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고 말했고 저는 오늘도 그 시를 마음속에서 되새기며 씨앗을 심습니다. 지금은 작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그 씨앗은 언젠가 광야 위에 홀로 서는 나만의 나무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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