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방법

by 오동근

작년 이맘때쯤 “그렇게까지 글을 써서 뭐가 되겠어?”라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처음 들었을 땐 솔직히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웃음이 나더군요. 왜냐하면 그 ‘뭐가 되겠어’ 했던 글쓰기가 지금의 제 삶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도 처음부터 글쓰기를 대단한 일이라고 여겼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머릿속에 복잡하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는데 그런데 막상 글로 옮기려고 하면 도무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을 더 많이 읽게 되었고 읽은 내용을 정리해 보려는 시도도 조금씩 늘어났습니다. 그렇게 글을 쓰는 일에 조금씩 익숙해지다 보니 하나의 생각이 생겼습니다.


바로 ‘글쓰기만큼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힘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깨달음은 제가 최근 몇 년간 겪은 세상의 변화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2024년 미국에서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해고되었는데 그중 상당수가 프로그래머였다는 사실은 더더욱 놀라웠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구글, 아마존 같은 회사들이 전 세계에서 뛰어난 개발자를 모셔가느라 경쟁을 벌였고 프로그래머는 최고의 유망 직업으로 손꼽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들이 만든 AI 때문에 정작 본인들이 일자리를 잃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뉴스를 접하며 “앞으로 어떤 능력을 가져야 대체되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도달한 답은 바로 ‘내가 직접 창조한 것만이 진짜 나의 것이 된다’는 결론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창조 행위가 글쓰기라는 점을 새삼스럽게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글쓰기를 어려워하거나 오해하고 계십니다. “나는 글재주가 없어서 못 써요.” “글은 뭔가 특별한 이야기가 있어야만 쓸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작가가 아닌데 글을 왜 써야 하죠?” 이러한 말들을 참 자주 듣지만 제 경험으로는 글쓰기는 글재주와는 크게 관계가 없습니다. 글은 잘 써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꾸 써보기 때문에 조금씩 나아지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많이 막막했습니다. 입으로는 어떻게든 풀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글로 옮기려면 도무지 문장이 떠오르지 않았고 결국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지도 헷갈릴 지경이었습니다. 글 하나를 완성하는 데 이틀이 걸리는 경우도 있었고 열 번쯤 고쳐 쓴 끝에 겨우 마음에 드는 문장이 하나 나오는 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쓰다 보면 정말로 달라집니다. 독서를 하고 나면 “이 책은 이런 뜻이겠구나” 하는 한 줄의 느낌이 떠오르기 시작하고 그 한 줄이 문장이 되며 문장이 모여 하나의 짧은 글이 완성됩니다. 그렇게 쌓인 글은 결국 하나의 콘텐츠가 되고 나만의 생각과 감정이 담긴 이야기가 됩니다. 이 과정에서 제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자기 언어’입니다.


AI는 분명 똑똑하고 많은 정보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지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바로 ‘자신만의 언어로 경험을 풀어내는 일’입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베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살아낸 경험과 감정 생각을 내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은 어떤 기술로도 대체될 수 없습니다. 글을 쓰는 순간 그 글은 오롯이 나의 것이 되고 그것이 바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글쓰기 실력을 키우고 싶을 때 책을 읽고 한 줄로 정리해 보는 습관을 들여보세요. ‘한 줄’이 별거 아닐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생각을 요약하고 본질을 꿰뚫는 힘이 담겨 있습니다. 내가 읽은 책이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었는지, 어떤 감정을 남겼는지, 삶의 방향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그것을 짧게 정리해 보는 연습은 글쓰기의 가장 강력한 기초가 됩니다.


가끔은 ‘내가 만든 것이 정말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합니다. 워낙 AI가 빠르고 똑똑하게 글을 만들어내다 보니 나의 글이 별 의미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저는 되새깁니다. 내가 오늘 느낀 어떤 순간, 내가 울었던 이유, 내가 웃었던 기억은 오직 나만이 쓸 수 있습니다. 그 감정이 깃든 문장은 세상에 단 하나뿐이며 그 자체로 가치가 있습니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다만, 처음에는 누구나 서툴 뿐입니다. 글쓰기는 잘하는 사람이 쓰는 것이 아니라 쓰는 사람이 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스스로 쓴 그 한 줄이 나중에는 여러분만의 언어가 되고 세상에서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나’의 증거가 되어줄 것입니다.


오늘도 스스로 물어봅니다. 나는 오늘, 무에서 유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써보았는가. 이 질문이 삶을 바꾸는 가장 단순하고 강력한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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