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초월이라는 단어를 듣습니다. '초월'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마치 도인이 산속에서 수행 끝에 얻게 되는 특별한 경지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나 현실을 외면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죠. 그런데 제가 경험한 초월은 그런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삶의 아주 작은 틈 사이에서 극한의 고통을 지나고 나서야 살짝 얼굴을 드러내는 조용한 평온함에 더 가까웠습니다.
많은 분들이 ‘초월’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소유, 무감정, 현실 도피 같은 키워드를 떠올리곤 하지만 실제 초월은 고통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힘에서 비롯됩니다. 그 고통이 너무 커서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을 때 오히려 저항을 멈추면서 찾아오는 해방감. 그 해방감이야말로 우리를 초월의 감정으로 이끌어줍니다.
격투기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아실 겁니다. 선수가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린 경기 후반부, 이상하리만큼 평온한 얼굴로 라운드를 이어가는 장면은 체념이 아닙니다. 아픔이 일상이 되어버리고 더 이상 그 고통에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는 상태. 다시 말해 고통을 내면화하면서 넘어선 경지, 그게 바로 초월입니다.
저는 독서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꾸준히 읽으려 할 때 처음에는 집중도 안 되고 자꾸 스마트폰에 손이 가고 졸리고 하기 싫어지죠.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지루함과 어려움을 계속 넘어서서 하루 30분, 1시간씩 읽다 보면 ‘어라? 이 시간이 기다려지네?’ 싶은 날이 옵니다. 그건 책을 사랑하게 돼서가 아니라 ‘꾸준함을 통한 고통의 초월’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집중이 안 되는 그 괴로움을 견디고 텍스트와 씨름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비로소 마음이 조용해지고 삶의 리듬이 바뀌는 경험. 이 또한 초월의 다른 얼굴입니다.
저는 한때 무작정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으로 매일 야근하고 주말에도 일했습니다. 처음엔 몸이 힘들었지만 버티면 언젠가 익숙해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견뎠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더군요. 그러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제 마음속에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분노도 아니고 절망도 아니고 그냥 ‘그래, 이게 나의 현실이지’ 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느낌. 그때 저는 더 이상 그 고통에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이 힘들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을 저는 지금 돌이켜보면 초월의 순간이었다고 느낍니다.
초월은 무감각이나 마비가 아닙니다.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여 그 감정에 더 이상 이끌리지 않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 상태는 ‘참을 수 없어!’ 하는 순간을 수십 번 반복해서 넘어설 때야 찾아옵니다. 다시 말해 초월은 운 좋게 얻어지는 선물이 아니라 반복적인 고통의 과정 속에서 탄생하는 일종의 보상입니다.
배고픔을 예로 들면 더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처음엔 너무 배고파서 아무 생각도 못 하겠지만 그 상태가 몇 시간 이상 지속되면 이상하게 배고픔이 덜 느껴지는 순간이 옵니다. 그건 몸이 위기에 적응해서 신호를 줄이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그 감각을 스스로 초월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물론 건강에는 좋지 않지만 심리적인 메커니즘은 동일합니다.
초월은 결국 나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넘어설 준비가 되었을 때 찾아오는 감정입니다. 억지로 만들 수도 없고 누군가 대신 경험해 줄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경험을 합니다. 극한의 공부, 끝없는 훈련, 포기하고 싶었던 다이어트 혹은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사건들 속에서 말이죠. 이 모든 것이 결국 우리를 더 큰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더 평온한 삶으로 이끌어주는 계기가 되어줍니다.
혹시 여러분도 어떤 고통을 견디고 있지 않나요? 계속되면 무너질 것 같고 언제 끝날지 몰라서 두려운 그 시간. 그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분명히 아주 조용하게 당신 안에 초월의 순간이 찾아올 겁니다. 그 순간이 오면 더 이상 지금의 고통은 여러분을 흔들 수 없습니다.
여러분도 올해가 끝나기 전 자신만의 방식으로 초월을 경험해보셨으면 합니다. 한계를 느끼는 그 자리에서 한 걸음만 더 내디뎌보세요. 그 걸음 끝에서 평온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