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지 않는 인생을 살기 위한 질문

by 오동근

커피숍에서 우연히 들린 대화였습니다. 60대로 보이는 남성이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들 대학 보내고, 딸 시집보내고... 이제야 내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 순간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누구의 인생을 살아왔다는 걸까요? 그리고 과연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내 인생'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을까요?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에는 죽음을 앞둔 한 아버지의 절규가 담겨 있습니다. 평생을 두 딸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온 고리오 영감이 임종 직전에 내뱉는 말입니다. "지금 흘러간 내 생애 전부를 보고 있네. 나는 속았어. 나는 너무도 어리석었네." 이 대사를 처음 읽었을 때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과연 저도 죽음 앞에서 같은 말을 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정답'들을 학습합니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얻어야 하며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배웁니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고 사회의 인정을 받으,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사는 것이 성공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이런 사회적 기준들이 절대적 진리는 아니네요. 마치 수학 공식처럼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인생의 방정식이 있다고 믿는 경우가 있지만 인생은 수학이 아닙니다. 각자에게 맞는 고유한 해답이 있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태어날 때부터 고유한 재능과 가능성을 가지고 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고 또 다른 사람은 논리적 사고에 탁월하며 누군가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고유한 재능을 발견하지 못한 채 일생을 마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그 열쇠는 바로 질문에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철학의 영원한 주제이지만 동시에 매우 실용적인 질문이기도 합니다.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꾸준히 던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은 확연히 다릅니다. 전자는 자신만의 고유한 길을 만들어가지만 후자는 남이 만든 길을 따라가기만 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 던지기를 어려워합니다. 왜일까요? 첫째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진짜 나를 발견했을 때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말입니다. 둘째는 게으름 때문입니다. 생각하고 성찰하는 것보다는 그냥 관성에 따라 사는 것이 편하니까요. 셋째는 주변의 시선 때문입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걸으면 이상하게 볼까 봐 걱정되니까요. 하지만 이런 두려움과 걱정들이 과연 합리적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자신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고 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일입니다. 고리오 영감처럼 죽음 앞에서 "나는 속았네"라고 말하게 될 테니까요.


좋은 책 한 권은 때로는 우리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기도 합니다. 『고리오 영감』도 그런 책 중 하나입니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묻게 됩니다. "나는 진짜 내 삶을 살고 있는가?"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정말 가치 있는 것들인가?" "나는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고리오 영감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오늘 저녁, 조용한 시간에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진짜 내 삶을 살고 있는가?" "내가 추구하는 것들이 정말 내 것인가?" "내 안에 잠들어 있는 가능성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바로 진정한 삶입니다.


어쩌면 답을 찾는 것보다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더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질문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 깨어남이야말로 후회 없는 인생을 위한 첫 번째 열쇠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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