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선택하는 힘

by 오동근

철학자 사르트르가 말한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는 문장은 힘이 있습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무엇이 될지 정해진 존재는 없고 우리는 스스로를 규정해 나간다는 말이지요. 자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의식적으로 행사해야 하는 힘입니다. 저는 직장과 생활 사이에서 지치던 시절, ‘나는 게으른 사람이다’라는 주변의 시선에 무심코 동화되어 가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때 제가 했던 첫 번째 작은 선택은 스스로를 정의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타인의 평가에 따라 나를 묶어두지 않기로 결심하고 매일 아침 10분의 책 읽기와 30분의 산책을 스케줄에 넣었습니다. 이 선택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일상의 리듬을 되찾는 과정이었고 시간이 쌓이면 태도와 결과가 달라짐을 체감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선택이라고 하면 대단하고 극적인 결단만 떠올리지만 실은 작은 습관의 선택들이 쌓여 인생의 방향을 만듭니다. 예를 들어 저는 한 번은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늦잠을 자고 싶은 유혹에 시달렸습니다. 그때 준비된 나를 선택하는 대신 쉬운 나를 택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겁니다. 반면, 그날 저는 알람을 한 번 더 눌렀지만 결국 일어나서 연습했고 발표는 뜻밖에 호응을 얻었습니다. 선택의 순간에는 실패 가능성도 있고 두려움도 있지만 선택하지 않는 것 자체가 또 다른 결과를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선택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된다는 지나친 낙관입니다. 현실에는 경제적 조건, 가족 상황, 사회 구조 같은 제약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저는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 경험은 제약 안에서도 선택의 여지가 있고 그 여지를 찾아내는 사람이 결국 상황을 조금씩 바꿔나간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저는 한동안 여유가 없어 독서를 포기하려 했지만 도서관의 무료 오디오북을 이용하거나 출퇴근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선택하면서 꾸준함을 이어갔습니다. 선택은 환경을 단번에 바꾸지 못할지라도 그 환경을 다루는 우리의 태도를 바꿀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기 연민과의 싸움입니다. 내가 게으르다고, 재능이 없다고 자책하는 순간 선택의 폭은 더 좁아집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가혹했을 때 더 소극적이었고 그 태도를 바꾸자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누구나 실수하고 누구나 망설입니다. 그런 순간에도 지금의 내가 최선이다라고 단언하지 말고 지금의 나는 선택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해 주세요. 그 한 문장이 행동의 출발점이 됩니다.


선택은 고급스러운 덕목이 아니라 매일 마주하는 평범한 결정들의 총합입니다. 여러분도 지금 당장 거창한 결단을 내리기보다 오늘의 작은 행동 하나를 바꿔보세요. 핸드폰 대신 10분의 독서, 늦잠 대신 알람을 한 번 더 듣기, 타인의 정의에 동의하지 않기. 이런 선택들이 쌓이면 어느새 여러분이 스스로 선택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겁니다. 끝으로 선택의 무게 때문에 주저하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완벽한 선택이 필요한 건 아니고 선택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요. 오늘 어떤 나를 선택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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