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토론이라고 하면 누군가와 마주 앉아 말로 겨루는 장면을 떠올립니다. 상대를 설득하고 논리를 세우고 때로는 이겨야 하는 싸움 같은 이미지 말이죠. 그래서 사람들이 나는 토론 체질이 아니야라며 미리 선을 긋습니다. 말이 빠르지 않아서 논리가 즉각적으로 떠오르지 않아서 혹은 괜히 말실수할까 봐서요. 저 역시 그런 이유로 토론은 똑똑한 사람들만 하는 것 준비된 사람만 가능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면서 그 생각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그저 소설 속 인물들의 선택을 따라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꾸 질문이 생겼습니다.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 이 질문 하나가 시작이었습니다. 답을 쉽게 내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머릿속에서 또 다른 내가 말을 걸어옵니다. “그래도 저 선택은 너무 감정적이지 않나?” 그러면 또 다른 내가 반박합니다. “하지만 그 당시의 감정을 생각해 보면 이해되지 않아?” 그렇게 내 안에서 여러 목소리가 오가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했던 건 이 대화에는 싸움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이겨야 할 필요도 체면을 지킬 이유도 없었습니다. 천천히 생각해도 되고 중간에 말을 바꿔도 괜찮았습니다. 무엇보다 틀려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상대가 ‘나’였으니까요. 이 경험을 통해 토론이란 반드시 밖에서만 이루어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고 어쩌면 가장 깊은 토론은 내 안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지식 축적의 수단으로만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 뭘 배울 수 있지?”라는 질문 말이죠. 물론 배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큰 힘은 책이 나에게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는 데 있습니다. 책 속 인물의 선택, 작가의 시선, 시대적 배경은 자연스럽게 나를 시험대 위에 올려놓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설명해야 합니다. 이게 바로 토론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누가 지켜보지 않아도 일어나는 아주 정직한 토론이죠.
책을 읽으며 나 자신과 토론을 반복하다 보니 일상에서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 바로 판단부터 하지 않게 되었고 의견이 다를 때도 “왜 저렇게 생각할까?”라는 질문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예전 같으면 피했을 대화도 이제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마주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기기 위한 말이 아니라 이해하기 위한 말이 가능해졌다고 느낍니다.
결국 독서가 준 가장 큰 선물은 ‘답’이 아니라 ‘질문하는 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을 혼자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습니다. 토론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특별한 훈련을 받지 않아도 책 한 권이면 충분히 시작할 수 있다는 걸 몸으로 알게 됐습니다.
올겨울, 혹시 마음이 조금 정체된 느낌이 든다면 누군가와 말다툼을 하고 지쳐 있다면 혹은 내 생각이 맞는지 헷갈린다면 책을 펼쳐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어떤 책이던 중요한 건 페이지를 넘기며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 이미 여러분 안에서는 조용하지만 깊은 토론이 시작되고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 토론은 생각보다 우리를 많이 성장시켜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