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공정함을 ‘똑같이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같은 기회를 주고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공정하다고 말하죠. 회사에서 업무를 나눌 때도, 가족이나 지인 사이에서 무언가를 나눌 때도 “똑같이 했잖아”라는 말로 스스로를 합리화하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키가 큰 사람, 중간 키인 사람, 키가 작은 사람이 울타리 너머를 보려는 상황에서 모두에게 같은 상자 하나씩을 주면 과연 공정할까요? 키 큰 사람은 상자가 없어도 볼 수 있고, 중간 키 사람은 상자 덕분에 볼 수 있지만, 키 작은 사람은 상자 위에 올라서도 여전히 보지 못합니다. 이 상황에서는 제가 알고 있던 ‘공평함’이 얼마나 불완전한지 깨달았습니다.
공정함은 단순히 나누는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결과와 마음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가 같은 상자를 받는 건 공평할 수는 있어도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정말 공정하려면 이미 볼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의 상자를 기꺼이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세 사람 모두가 울타리 너머를 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바람직한 공정함 아닐까요. 저는 지금까지 “규칙은 지켰다”, “똑같이 했다”는 말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지 상대가 정말로 그 상황에서 도움이 되었는지까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공정함은 ‘내가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의 배려’가 아닙니다. 또 없는 것을 억지로 희생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 이미 충분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조금 내려놓는 선택을 말합니다. 시간일 수도 있고, 기회일 수도 있고, 말 한마디의 배려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후배에게 업무를 가르칠 때, “나도 바쁜데 왜 내가 더 해야 하지?”라는 마음이 먼저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때 제가 조금만 더 설명해 주고 기다려줬다면 팀 전체가 훨씬 편해졌을 겁니다. 그때의 저는 공평했을지 몰라도 공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공정함은 결국 ‘선의의 선택’과 닮아 있습니다. 가진 사람이 양보하고, 힘 있는 사람이 돌아보고, 여유 있는 사람이 한 걸음 물러서는 선택 말입니다. 이런 선택은 당장은 손해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그 선택이 결국 나 자신에게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신뢰가 쌓이고 관계가 부드러워지고 결국 더 큰 기회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종종 “세상은 원래 불공평해”라는 말로 생각을 멈춥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질문은 그다음입니다. “그럼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미 충분히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상자를 내려놓을 용기가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내가 서 있는 위치를 돌아보고 누군가에게 조금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선택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거창한 희생이 아니라 바람직하게 공평해지려는 작은 마음 하나면 충분합니다.
공정함은 제도나 구호가 아니라 매일의 선택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가진 것을 지키는 데만 급급할지 아니면 기꺼이 나누며 모두가 함께 볼 수 있는 세상을 만들지. 그 선택의 갈림길에서 저는 이제 조금 더 용기 있게 상자를 내려놓는 쪽을 선택해 보려 합니다. 아마 그게 내가 이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