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고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는 순간, 솔직히 말하면 쉽지 않습니다. 특히 알람을 끄고 다시 눈을 감고 싶을 때 머릿속에는 늘 같은 질문이 떠오르죠.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아침 운동, 독서, 매일 반복되는 다짐들. 편안함을 선택해도 당장 큰일이 나는 건 아닌데 왜 나는 자꾸 스스로를 불편한 쪽으로 밀어 넣고 있을까.
우리는 흔히 고통을 나쁜 것이라고만 생각합니다. 힘들면 실패한 것 같고 괴로우면 방향을 잘못 잡았다고 느끼죠. 그래서 조금이라도 버거워지면 “이 길은 아닌가 보다”라며 물러섭니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독서나 운동이 귀찮아질 때마다 ‘굳이 이렇게까지 나를 몰아붙일 필요가 있을까’라는 핑계를 얼마나 자주 대왔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곰곰이 돌아보니 제 삶에서 조금이라도 나아졌다고 느낀 순간들은 전부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퇴근 후 소파에 눕는 대신 책을 펼쳤던 날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운동화를 신었던 아침들, 당장 성과가 보이지 않아도 계속 기록하고 생각을 정리했던 시간들. 그때는 분명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그 고통이 저를 한 단계 끌어올려 주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는 일이 그렇습니다. 당장은 눈이 피곤하고 집중하기도 어렵습니다. 운동도 마찬가지죠. 숨이 차고 근육이 아픕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이 고통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생각이 깊어지고, 몸이 단단해지고,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달라진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고통은 이상하게도 견딜 만합니다. 아니, 때로는 기꺼이 선택하게 됩니다.
저는 예전엔 늘 명확한 답을 찾으려 애썼습니다. 내가 잘하는 게 뭔지, 어떤 선택이 정답인지, 어느 길이 가장 빠른 성공으로 이어지는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명쾌한 해답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대신 하나는 분명해졌습니다. 의미 있는 고통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감내하고 있다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방황하는 시간도 있었고, 확신 없이 걸어온 날들도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완전히 손을 놓지 않았다는 점, 불편함을 감수하는 선택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 결국 저를 여기까지 데려왔습니다. 결과가 언제 나타날지는 몰라도 방향만큼은 틀리지 않았다는 묘한 신뢰가 생겼습니다. 이 신뢰가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자발적 고통을 선택한다는 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일 같기도 합니다. 나는 어떤 고통까지는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인가? 이 불편함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줄까? 그 질문에 답하려다 보면 자연스럽게 삶의 우선순위도 정리됩니다. 아무 고통이나 끌어안는 게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는 고통만 남기게 됩니다.
결국 고통은 쾌락의 반대편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의미 있는 고통은 깊은 만족감과 연결돼 있습니다. 당장은 힘들어도, 하루를 마무리하며 “오늘도 내가 나를 속이지는 않았구나”라고 말할 수 있는 그 감각. 그게 저에게는 꽤 큰 행복입니다.
오늘도 저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게으르고, 흔들리고, 도망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운동화를 신고, 책을 펼치고, 글을 씁니다. 이 선택이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오히려 이 길을 계속 가보고 싶습니다.
어쩌면 성공의 해답은 멀리 있지 않은지도 모르겠습니다. 고통을 완전히 없애려 애쓰는 대신 내가 감당할 수 있고 의미 있다고 믿는 고통을 선택하는 것. 그 선택을 하루하루 반복하는 것. 지금의 저는 그게 꽤 확실한 방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