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장면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저는 한동안 “잘되겠지”,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같은 막연한 기대를 희망이라고 믿고 살았습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날에는 그 희망이 쉽게 부서졌고 그러면 또다시 스스로를 다그치거나 포기하는 쪽으로 기울곤 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희망을 미래의 결과와 연결합니다. 이걸 하면 잘될까, 이 선택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성공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그래서 희망은 늘 조건부입니다. 결과가 좋을 것 같을 때만 희망을 붙잡고 불확실해지면 가장 먼저 내려놓습니다. 독서를 꾸준히 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다가도 “이게 나한테 무슨 도움이 되지?”라는 생각이 들면 금세 흐지부지됐고 운동도 눈에 띄는 변화가 없으면 멈춰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이렇듯 희망은 미래를 점치는 태도가 아니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옳다는 확신, 결과와 상관없이 이 선택이 내 삶의 방향으로 맞다고 믿는 상태. 이 정의를 접하고 나서야 그동안 희망을 너무 가볍게 다뤄왔다는 걸 인정하게 됐습니다.
생각해 보면 제 삶에서 오래 남았던 것들은 대부분 결과가 보장되지 않았던 선택들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조금 일찍 일어나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도 당장 달라지는 건 없었습니다. 운동을 다시 시작했을 때도 체중계 숫자는 쉽게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몸이 더 피곤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두지 않았던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이건 옳은 일이라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나중의 내가 지금의 나를 고맙게 여길 것 같다는 막연하지만 분명한 확신 말입니다.
희망을 확신으로 바꾸고 나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하루를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예전에는 결과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이 먼저 올라왔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오늘 내가 한 선택이 옳다면 그 자체로 하루는 충분히 의미 있습니다. 잘될지 안 될지는 그다음 문제입니다. 이 생각은 삶을 훨씬 가볍게 만들어주면서도 동시에 나태해지지 않게 붙잡아줍니다.
희망을 낙관으로만 이해하면 우리는 쉽게 지칩니다.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마다 희망은 배신당한 감정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희망을 지금에 대한 확신으로 다시 정의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결과가 더디더라도 성과가 눈에 띄지 않더라도 나는 이미 옳은 길 위에 서 있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그 믿음은 생각보다 강력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걸 계속해도 될까, 의미가 있긴 한 걸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미래에 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지금의 나에게 물어봐야 할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선택은 결과와 상관없이 옳은가?
만약 그렇다면 그 자체로 이미 희망을 붙잡고 있는 겁니다. 희망은 멀리 있는 약속이 아니라 오늘의 확신입니다. 그리고 그 확신을 하루하루 반복하는 사람이 결국 자신의 삶을 가장 멀리까지 데려간다는 걸 저는 조금씩 체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