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법

by 오동근

우리는 매일 같은 것들을 봅니다. 같은 거리, 같은 사람, 같은 일상, 같은 문제. 그런데도 유독 어떤 날은 그 익숙한 풍경이 다르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대상이 바뀐 게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방식이 바뀐 거죠. 이걸 저는 한동안 “기분 탓”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컨디션이 좋으면 세상이 괜히 부드럽게 보이고 마음이 지치면 모든 게 벽처럼 느껴지니까요.


한민복 시인의 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물을 울타리로 본 발상이었습니다. 울타리는 보통 막는 것, 차단하는 것, 넘어갈 수 없는 경계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울타리가 높을수록 안전하다고 믿고, 울타리가 낮으면 불안하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시인은 말합니다. 섬의 울타리는 물이고, 그 울타리는 가장 낮으며, 오히려 길이라고요.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머리를 세게 맞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가 평생 ‘벽’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들이 사실은 ‘길’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제 삶에도 그런 울타리들이 많았습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남들의 시선, 나 스스로 만든 기준들. 저는 그것들을 “넘어가면 안 되는 선”으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도전 앞에서는 늘 멈췄고 변화 앞에서는 뒤로 물러섰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울타리를 조금 다른 각도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정말 날 막는 걸까? 아니면 내가 막힌다고 믿고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이 바뀌자 같은 상황인데도 선택이 달라졌습니다. 피하던 일에 도전했고, 미루던 말을 꺼냈고, 스스로에게 조금 더 솔직해졌습니다. 울타리는 여전히 거기 있었지만 그건 더 이상 감옥이 아니라 통로처럼 느껴졌습니다.


사람들은 남들과 다르게 본다는 건 특별한 재능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창의적인 사람, 예술적인 감각이 있는 사람, 책을 많이 읽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르게 본다는 건 능력이 아니라 연습에 가깝습니다. 익숙한 걸 한 번 더 바라보고 당연한 걸 한 번 더 의심해 보고 늘 하던 해석을 잠시 내려놓는 연습. 시는 그 연습을 가장 부드럽게 도와주는 도구였습니다.


특히 시를 읽을 때, 저는 자주 멈춥니다. 이해가 안 되는 문장이 나오면 그냥 넘기지 않고, 그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봅니다. 왜 이 단어를 썼을까,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 그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세상을 보는 각도가 조금씩 달라집니다. 섬이 더 이상 고립이 아니듯 실패는 더 이상 끝이 아니고 외로움은 반드시 불행이 아니며 느림은 뒤처짐이 아니라 깊어짐일 수 있다는 걸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자주 “현실은 냉정하다”는 말을 하지만 현실이 냉정한 게 아니라 우리가 너무 단정적으로만 현실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요. 울타리를 벽으로만 보면 벽이 되지만 길로 보면 길이 됩니다. 이건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갇혔다고 느끼고 어떤 사람은 열렸다고 느낍니다. 그 차이는 환경이 아니라 해석에서 나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저는 여전히 같은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갑자기 모든 문제가 사라진 것도 아니고 삶이 극적으로 바뀐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히 달라진 게 하나 있습니다. 예전에는 막힌 것처럼 보이던 장면에서 요즘은 종종 길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길은 늘 거창한 곳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요즘 삶이 답답하게 느껴진다면 한 번쯤 이렇게 질문해 보면 어떨까요.

“이건 정말 울타리일까 아니면 내가 아직 길로 보지 못한 걸까?”

섬을 둘러싼 물이 울타리이자 길이었듯 우리의 삶에도 그런 장면들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걸 발견하는 순간, 세상은 조금 더 넓어지고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자유로워집니다.

오늘도 저는 시 한 편을 읽으며 또 하나의 울타리를 길로 바꾸는 연습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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