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또 뭘 해야 하지?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눈을 제대로 뜨기도 전에 일정과 할 일들이 머릿속을 먼저 차지합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선택을 정말 많이 합니다. 점심 메뉴, 주말 약속, 퇴근 후 계획 같은 것들요. 그런데 막상 선택의 순간이 오면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아무거나 괜찮아. 사실은 그렇지 않은 데도요. 속으로는 분명 매운 게 당기거나, 집에 가서 쉬고 싶거나, 혼자 조용히 있고 싶은데 말입니다. 괜히 나만 유난 떠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 같을까 봐 그 마음을 삼켜버립니다.
문제는 이런 일이 하루 이틀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몸이 피곤하다는 신호를 보내도 “조금만 더 참자”라고 넘기고 마음이 지쳐 있다는 느낌이 들어도 “다들 이 정도는 버티잖아”라고 스스로를 설득합니다. 그렇게 참고 맞추는 데 익숙해지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조차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아침을 먹을 때면 늘 집에 있는 재료부터 떠올렸습니다. 이게 있으니까 이걸 먹어야지, 시간 없으니까 대충 먹어야지.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 몸은 지금 뭘 먹고 싶어 할까?' 잠시 멈춰서 스스로에게 묻자 의외로 답은 빨리 나왔습니다. 따뜻한 음식, 제대로 된 한 끼. 평소 같았으면 귀찮아서 지나쳤을 선택이었지만 그날은 조금 번거롭더라도 제 욕구를 따라가 봤습니다. 그 선택 하나가 하루를 완전히 바꾸진 않았지만 적어도 그날의 저는 제 편이 되어준 느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욕구를 말하는 걸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행동으로 생각하지만 욕구를 인식하고 표현하는 것과 남을 배려하지 않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계속 타인의 기준에만 맞추다 보면 관계에서도 삶에서도 점점 지쳐갑니다.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는 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는 말이 아니라 최소한 내 마음을 외면하지는 말자는 다짐입니다.
요즘 저는 하루에 한 번쯤은 저 자신에게 묻습니다. 오늘은 뭘 먹고 싶은지, 어디에 가고 싶은지, 지금 이 순간 나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지. 여전히 습관처럼 “괜찮아”라는 말이 먼저 나올 때도 있지만 예전보다는 그 말을 조금 늦게 합니다. 그 짧은 멈춤 덕분에 제 일상은 아주 조금씩 제 중심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잘 참고, 잘 견뎌왔습니다. 이제는 그만큼 잘 들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내 안에서 조용히 울리는 그 목소리에 말입니다. 오늘 하루, 아주 사소한 욕구 하나라도 존중해 보는 것. 어쩌면 그 작은 선택이 나를 다시 나에게로 데려오는 시작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