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공연을 하나 보고 왔습니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다루는 작품이었는데 보고 나서 계속 이런 생각이 맴돌았습니다.
“사람은 물건을 만들고 물건은 다시 사람을 만든다.”
처음엔 조금 과장된 말처럼 들렸습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무심코 휴대폰을 들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게 됐습니다. 우리는 편해지려고 많은 것을 만들었습니다. 스마트폰, 배달앱, OTT, 각종 플랫폼들. 버튼 하나로 주문하고 클릭 한 번으로 영상을 보고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세상 소식을 다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전보다 더 바쁘고 더 초조해진 기분이 듭니다. 편리해졌는데 왜 마음은 더 분주할까요.
저는 '요즘은 다 이렇게 산다'는 말을 마치 방패처럼 들고 다녔습니다. 늦게까지 일하고 퇴근 후에도 자기 계발 영상을 보고 주말엔 뒤처질까 봐 공부를 했습니다. SNS를 보면 다들 열심히 사는 것 같아서 가만히 쉬는 게 괜히 불안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꽉 채워 살면 뿌듯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항상 허전함이 남았습니다.
사람들은 바쁘게 사는 게 곧 잘 사는 거라는 생각 합니다. 성실함과 분주함을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거죠. 하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쁘게 살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사회의 통념에 떠밀려서 바쁜 건지 구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주말 아침, 사실은 늦잠을 자고 싶었는데 ‘시간을 허비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억지로 일어나 영어 강의를 틀어놓는 상황. 강의를 듣고 있는데 머릿속은 온통 딴생각뿐입니다. 그러고 나면 자책이 따라옵니다. ‘왜 이렇게 집중을 못 하지?’ 하지만 어쩌면 문제는 집중력이 아니라 방향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내가 원해서 선택한 시간인지 아니면 남들 기준에 맞추려는 시간인지 말입니다. 저는 퇴근 후 정해둔 시간만큼은 휴대폰을 다른 방에 두고 책을 읽거나 그냥 멍하니 앉아 있습니다. 처음엔 불안했습니다. 뭔가 놓치고 있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며칠 지나자 오히려 마음이 조금 느려졌습니다. 대단한 변화는 아니지만 적어도 제가 시간을 선택하고 있다는 감각은 분명해졌습니다.
우리는 흔히 성공하면 자유로워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돈을 더 벌고 지위가 올라가면 비로소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요. 물론 어느 정도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방향을 점검하지 않은 채 달리기만 하면 더 큰 구조 안에서 더 열심히 돌아가는 톱니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이렇게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이 선택은 정말 내가 원하는 걸까?” 거창한 결단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 오늘 저녁 메뉴를 고를 때, 주말 일정을 정할 때, 휴대폰을 집어 들기 전 3초만 멈춰 보는 것. 그 작은 멈춤이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어쩌면 우리는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하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방향만큼은 스스로 정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만든 것들에 휘둘리지 않고 그 안에서 나를 잃지 않는 것.
혹시 요즘 괜히 지치고, 이유 없이 허전하다면 한 번쯤 이렇게 물어보셔도 좋겠습니다. “나는 지금 누구의 기준으로 살고 있지?” 그 질문 하나가 꿈처럼 흘러가던 하루를 잠시 멈추게 해 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멈춤 속에서 비로소 나다운 속도를 찾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