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봄

by 로시별



봄은 전해준다.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새해가 밝았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늘어난 나이 한 살을 실감하게 해준다. 헐벗었던 나무들이 새로운 나뭇잎과 꽃들을 피워내는 계절, 그들의 새로운 시작이 나의 나이를 알려주는 신호인 양…. 오묘한 감정이 꿈틀꿈틀 올라온다.


2009년 봄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벚꽃축제를 구경하러 가겠다며 친구와 함께 부산을 떨었다. 아침 일찍 3호선 끝자락 대화역에서부터 여의도역에 가기까지 1시간 반 남짓한 시간 동안 오랜만에 나가는 서울 나들이에, 예쁘게 피어있는 꽃구경을 할 기대감에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있었다.


여의도역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많아졌다. 서울이어서 사람이 많은가. 평소에 서울을 잘 나와보지 않았던 나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축제현장에 도착해선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세상에나. 사람이 이렇게 많을 수가.


북적이는 인파 속에 앞으로 한 발짝 내딛기조차 어려웠고 벚나무 아래에서 사진을 찍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았다. 벚꽃보다 사람을 구경하러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그땐 어려서 그랬는지 벚꽃으로 풍성한 나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예쁘다고 생각했고 사람들 사이를 이리저리 비집고 다니며 온몸으로 봄을 만끽했다.

사람이 많아도 벚꽃이 너무나 예쁘니까, 벚꽃축제에 참가하는 것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의 내 모습은 참 풋풋했다.


그 이후로도 몇 해 동안 ‘그래도 봄에는 꽃구경을 가야지’하며 길을 나서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고 사람들에 질려 다시 갈 엄두를 못 낼 것 같다가도 봄이 오면 또다시 지하철을 타고 여의도로 갔다. 젊어서 가능한 열정이지 않았을까.


십여 년이 흐른 지금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는 찾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피한다는 표현이 더욱 적합할 거 같다. 지금은 집 근처에 피어있는 꽃들과 함께하는 여유로운 산책을 좋아한다. ‘드라마 속 한 장면으로 나왔던 벚꽃놀이 장소가 우리 집 근처였다니.’ 하는 발견에 놀라움을 얻고 행복해한다. 대학교 캠퍼스의 작은 벚꽃길을 산책하며 사진을 남긴다. 이런 사진을 바라보며 봄을 만났음에 만족한다.


이십 대의 열정, 풋풋함을 잃어버린 것 같아 가끔은 아쉽지만, 길가에 핀 꽃 한 송이를 보며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작은 여유에도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된 것이다.


벚꽃이 지면 떨어지는 벚꽃 잎을 쓸어야겠지. 여름휴가를 떠나는 길에 교통체증을 걱정하고, 가을에 예쁜 단풍이 피고 지면 떨어지는 낙엽을 쓸고 있는 환경미화원분들의 노고가 떠오르겠지. 겨울에는 내리는 눈을 보며 미끄러운 길을 걱정하고,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우며 눈이 그만 오기만을 바라겠지... 나만 좋은 것보다 다른 사람의 노고를 생각할 수 있는 품을 갖게 된 것. 그런 모습에서 이제 어른 비슷한 사람이 되었구나 느낀다.


문득 봄이, 어른이 되었구나, 알려주는 것 같다. 십여 년 전 친구와 들떠서 나들이 가던 젊었던 나는 그사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어릴 땐 봄이고, 꽃이고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는데 걸음을 걷고 어린이집에 다닐 나이가 되니 메말랐던 감정들이 조금씩 꿈틀대는 걸 느낀다.


아이에게 온몸으로 봄을 맞이하게 해주고 싶어 고민한다.


“아가야, 책에서 읽었던 거 기억나니?

<손에 손잡고 우리가 어딜 가든지 새들은 달콤한 노래를 하고 꽃들은 활짝 피어날 거야>

이게 바로 봄이야. 꽃들이 활짝 피어나는 포근한 계절. 손잡고 나들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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