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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핀 유성애 Jun 04. 2021

[당신곁 페미니즘] 멀고도 가까운, 같이 걷게될 당신께

첫번째 편지 : 혜미와 성애의 편지

이 편지는 오마이뉴스 연재기사입니다. 홈페이지에서 직접 보시면 편지낭독 음성을 바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 재회의 고리가 되어준, 편집자 고 이환희님께도 감사를 전합니다.  


페미니즘을 뭐라고 번역하시나요? 우린 '성평등주의'로 읽습니다. 성별로 인한 차별을 없애자는 얘기죠(오바마도 페미니스트라네요!). 페미니즘이 오해받는 한국, 그 안에서 페미니스트로 사는 두 여성의 이야기. 2주마다 한번씩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대와 성장을 꾀해봅니다.[기자말]

▲ 혜미(오른쪽)와 성애는 2019년 11월말 국회 특권폐지 기자회견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둘의 공통점은 '정치', 2주에 한번씩 편지를 주고받을 예정입니다.

같이 걷게 될 당신에게, 혜미가 드립니다. 

당신 곁의 페미니즘_혜미의 첫번째 편지

 
일요일 밤 10시, 일과와 분리수거 당번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향을 하나 피우고, 얼음 채운 녹차를 마시며 모니터 앞에 앉았습니다. 오늘은 비가 와서 분리수거가 영 쉽지 않았지만 혼자서도 잘했습니다. 아직 5월 중순밖에 되지 않았는데 날이 후덥지근하고 습하네요. 올 여름나기가 쉽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얼마 전 얼음틀을 구매하고 당근시장에서 쓸만한 선풍기를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성애님은 여름 준비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성애님이 글을 써보자고 했을 때, 신났습니다. 그걸 감추느라 조금 진땀 났는데 알아채셨을까요. 좋아하는 식당에서 함께 토마토 펜네 파스타와 시금치 커리를 먹는 중이었는데 그것에 집중할 수 없었어요. 겁이 나기도 했고, 잘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성애님과 함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식당과 음식을 맘에 들어 하셔서 그것도 좋았습니다.


성애님과 헤어진 뒤, 쓰신 글과 기사들을 다시 하나하나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국회 앞을 회상했어요. 그 시기 즈음 그 앞을 자주 갔었는데, 저는 늘 화가 난 채로 마이크를 잡고 얘기했던 것 같아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부끄럽기도 합니다. 어차피 사회는 제 목소리를 잘 안 들어줄 것 같아 분노했던 것 같아요.


그런 저를 성애님은 큰 눈으로 자세히 바라보며 질문하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다는 인상이 깊이 남아있어요. 애석하게도 서로가 바랐던 정치개혁은 잘 이루어지지 않았지만요. 그런 성애님은 더 좋은 정치를 위해 국회의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담아온 것 같아요. 그 안에선 어떤 수많은 일들을 경험했을 지는 상상하기 어렵지만요. 특히 2017년에 짧게 연재한 '여의도의 미묘한 댕댕이'는 좀 더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드네요. 현직 의원들의 반려동물 이야기가 흥미로워요.


한편 성애 님의 일상을 볼 수 있는 SNS엔 요즘은 소식이 덜한 것 같아요. 그래도 흰 정장을 입고 동등한 시선으로 반려자와 마주보고 있는 사진을 찾을 수 있고, 당신이  '프로무지개발견러'라는 사실을 알게되어 즐겁습니다. 곧 생일이기도 하시네요. 이러니 약간 무서우시죠. 혼자 알게된 정보는 이 글에서 더이상 누설하지 않겠습니다. 이젠 서로 알아갈 예정이니까요.


연재는 처음이지만, 이 글쓰기를 통해 저는 많이 나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녹아가고 뜨거워지는 지구에서 곁에, 옆에 사는 페미니스트 동네 친구가 갑작스레 생긴 것도 다행이고, 우리가 바라보는 시선을 잇고, 배움으로 새로운 상상의 공간을 창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서로가 가진 질문들을 주고받으며 어쩌면 각자 간직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을 지도요.


이 글을 쓰는 동안 피워두었던 향이 이미 다 탔어요. 하나를 태우는 데, 50분이 걸리네요. 제가 아는 당신의 일부를 집합해 본 문장들을 시작으로, 너머를 찾는 여정이 기대됩니다. 연재를 마치면 같이 무지개를 찾으러 가요.


2021년 5월 16일, 

김혜미 드림

                              

멀고도 가까운 당신에게, 성애가 드립니다.

당신 곁의 페미니즘_성애의 첫번째 편지             

▲  제21대 국회 시작 당시, 여성 국회의원의 비율은 전체의 반도 아닌 19%였습니다. 더 성평등한 국회는 가능할까요?

당신은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꿉니다. 당신은 악기 하나 정도는 연주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해요. 당신은 가능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 하고, 당신이 하는 일을 통해 좀 더 살만한 세상을 만들려 하고, 생각하는 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믿는 것도 같아요. 당신을 생각하며 쓴 문장들인데, 쓰고 나니 제 이야기 같기도 하네요.


멀고도 가까운 혜미씨에게 첫 편지를 써요. 혜미씨는 첫 글에서 저를 만난 뒤에 '설렘을 감추느라 조금 진땀이 났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게 증상으로 왔답니다. 농담처럼 던져본 말에 마치 오래 준비된 것처럼 촤르륵 이야기가 전개되고 연재가 시작됐는데, 그때 아, 약간 현기증이 났어요. 고백하자면 사실 저는 당신의 정확한 나이도 모르거든요. 평소 쓰는 글과 하는 말, 표정과 눈빛, 말하는 태도에 비추어 '언젠가 친해지고 싶은, 좋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만나보니 정말로 좋은 사람이더라고요. 요 며칠 저는 스트레스 탓에 새벽마다 깨고, 다시 잘 잠들지는 못하는 불면증세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연재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무슨 얘길 나눌까,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하고요.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서 마음이 막 다급해질 정도였다면 믿으실까요. 우정에 나이가 꼭 중요할까 싶습니다. 기독교라는 종교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 등, 공통점이 많으면서도 다른 자리에 서 있는 당신이 궁금합니다. 더 알고 싶고요.


혜미씨가 첫 편지를 써서 보내온 다음 날은 마침, 강남역 여성살인사건 5주기였어요. 그날 저는 시댁에 가족행사가 있어 반휴를 쓰고 다녀와야 했는데, 때마침 생리 중이라 허리 통증에 더해 종일 컨디션이 좋지 않았습니다. 여자로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여러모로 생각해보게 되는 하루였어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차별받아선 안 된다고 저는 믿는데, 현실은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여요. 당장 '페미니즘'이란 단어에도 버튼이 눌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성 평등한 사회를 만들자는 페미니즘이 요사이 오해받고 있다,고 저는 느끼곤 합니다. 정치권에서 '이대남'이란 신조어가 나오는 것도 그런 맥락이잖아요. 그런데 이런 얘길 하다 보면 좀 답답해져요. 저는 누가누가 더 불행한지 겨루는 불행배틀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신나게 재미나게 살 수 있는지를 얘기했으면 좋겠거든요. 다 됐고, 여자들이 실제적 위협을 느끼지 않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남자친구에게, 남편에게, 모르는 남성에게 맞거나 위협당하는 여자가 없는 세상이요. 오긴 올까요?


그런 내일은 멀지만 혜미씨는 가까이에 있어 좋네요. 저도 서울 마포구에 살거든요. 우쿨렐레를 한창 배우고 있다는 혜미씨처럼, 저도 재작년 우쿨렐레에 빠져 한참을 혼자 띵동거렸어요. 올해엔 칼림바를 치다가 쉬고 있는 상태고요. 언젠가 같이 만나 연주할 날을 꿈꿔봅니다. 이 편지들에는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듣고 보고 겪은 것들, 2021년 여름을 지나는 혜미씨와 저의 시선이 담기게 될 텐데, 연재가 끝난 뒤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벌써 궁금해져요. 솔직하게 또 재미나게 주고받을 우리의 편지가 다른 누군가에게도 힘이 된다면 참 좋겠네요.


만나서 반가워요 당신, 손잡고 같이 걸어요.


2021년 5월 25일 

유성애 드림 

   

* 혜미와 성애가 2주에 한 번씩 주고받으며, 격주 금요일 게재될 예정입니다. 이 편지는 문학동네 이슬아x남궁인의 연재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됐습니다. 

* 긍정적인 피드백은 큰 힘이 됩니다. 편지를 즐겁게 읽으셨다면, 여기(링크)를 눌러 응원을 남겨주세요.

 

필자소개: 

<김혜미> 연재는 처음이라. 마포에 살고, 녹색 정치를 하며, 사회 정책에 관심있게 움직이는 사람. 셰어하우스에 살며 분리수거를 잘 하고싶은 페미니스트. 삶과 이상을 잇고-짓고 싶은 사람. 날기싫은 비행기와 춤추고 싶은 멋쟁이 토마토를 간신히 연주할 수 있는 우쿨렐레 초보. 토마토 음식으로 해장하는 사람.


<유성애> 아픈 몸을 사는 사람, 편집노동자. 스스로 장애인-비장애인 경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20대 초반 한 팔 두 다리가 부러졌던 경험이, 의도치 않게 여자로 태어나 살며 겪었던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소외된 사람들 목소리에 마음이 더 기운다. 성평등한 국회, 성평등한 오늘을 꿈꾸는 페미니스트.


태그:#성평등#글쓰기#편지#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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