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있을 때면 따스한 햇살이 내 등 뒤를 부드럽게 밀어주는 느낌을 받곤 했다. 꽃들이 태양을 향해 나아가듯 나 역시도 나를 비추는 빛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이렇게 빛을 받고 나아가다 보면 나도 역시 꽃을 피우게 되겠지, 기분 좋은 상상이 절로 떠오르곤 했다.
하지만 혼자서 글을 쓴다는 건 무척이나 외롭고도 불안한 일이라는 걸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나는 알 수 없는 불안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내게 작가로서의 자질이나 재능이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 섞인 걱정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지금껏 글쓰기와 완전히 다른 일을 하며 살았고, 유일하게 글쓰기와 연관된 일이라면 다른 사람들보다 책을 더 좋아한다는 것 정도. 그 외엔 사실 내가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란 증거를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당연히 처음부터 좋은 글, 누군가에게 내보일 만한 글이 써질 리 만무했다. 나는 지금 이 도전이 혹시라도 무모한 패기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우연히 아타카마라는 이름을 가진 어느 사막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칠레 북쪽에 위치한 온통 모래뿐인 이 황량한 사막은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로 한 번도 비가 내린 적이 없는 곳이 있을 만큼 지구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이라고 한다. 비가 내리지 않는 대부분의 경우엔 식물도 거의 없는 메마른 땅이라고.
그런데 2005년부터 몇 차례 슈퍼 엘리뇨 현상으로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졌고, 얼마 후 그곳엔 상상도 못 했던 풍경이 펼쳐졌다고 한다.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던 붉고 황량한 사막이 형형색색의 꽃들로 뒤덮인 것이다. 엄청난 수의 꽃들이 마법처럼 솟아난 것이다.
이것은 ‘데씨에르토 플로리도’라고 불리는 현상인데, 사막 안에 길게는 수백 년 전부터 잠들어 있던 수많은 씨앗들이 비가 내리고 충분한 수분이 공급되면 일시에 개화한다고 한다. 인터넷을 통해 찾아본 당시 아타카마 사막의 사진에서는 사막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셀 수 없이 많은 꽃과 풀들이 자라나 있었다. 붉은 모래흙이 갈라진 틈 사이로 제각기 다른 생명들이 한껏 자신의 빛깔을 뽐내고 있는 듯했다.
꽃들이 만개한 사막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자니 붉은 모래 바닥 위로 지금의 내 모습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풀 한 포기 나기 어려운 메마른 사막이라 여겼던 나라는 존재가 사실은 엄청난 씨앗들을 품고 있는 비밀의 사막이었던 게 아닐까. 나조차도 내 안에 얼마나 많은 씨앗이 잠들어있는지 모르는 그런 가능성의 사막인 건 아닐까.
형형색색의 아타카마 사막이 나타난 이유는 자신의 가능성을 굳게 믿고 비가 내리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때를 묵묵히 기다린 씨앗들 덕분이었다. 내 안에도 아마 그런 씨앗들이 숨어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가 됐다. 물론 내 안의 첫 씨앗이 언제 잎을 내밀고 꽃을 피울지 지금 알 수는 없었다. 그래도 지금 내 안에 잠들어 있을 수많은 씨앗들이 단비가 내려 뿌리를 뻗고 꽃잎을 내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아직 이룬 것도 없고, 실패 투성이인 나지만, 내 안에 어떤 가능성의 씨앗이 자신의 때를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만 해도 설렜다.
그동안 나를 의심하고 불신하며 얼마나 많은 가능성의 씨앗들을 사라지게 하고 있었을까 생각하니 피어보지도 못하고 사라져야만 했던 수많은 씨앗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남은 씨앗들은 소중히 잘 지켜내야지. 씨앗을 잘 품고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비가 내리고 오아시스를 만나는 것처럼 믿음으로 내 씨앗을 잘 보듬고 키워나가야만 하지 않을까.
사실 생각해보면 내 안에 어떤 재능이 얼마나 잠재되어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우선 재능의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고 믿으며 꾸준히 계발시켜 나가는 길뿐이기도 했다. 아무리 엄청난 재능이 숨겨져 있다 한들 스스로 믿지 못한다면 그 씨앗은 채 잎도 내밀지 못하고 말 테니까.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조급함을 내려놓고, 내 가슴의 선택을 믿고, 내 속도를 믿으며 꿋꿋이 나의 방향으로 나아가 보는 일이란 걸 알았다. 무엇보다도 내가 내 삶을, 내 삶의 속도를 의심 없이 믿어주는 게 너무나도 중요했다. 인생이라는 캄캄한 숲을 나아가는 여정에서 꼭 필요한 게 바로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일 테니까.
나도 내 안에 소중한 가능성의 씨앗을 가졌으니까, 거기에서 어떤 나무가 자라날지, 어떤 꽃이 피어날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스스로에 대한 믿음만이 내 씨앗의 싹을 틔워내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믿음 없이는 내 안의 가능성의 씨앗은 싹을 틔울 수조차 없을 터였다. 그때부터였다. 그냥 내 삶을 믿고, 내 삶의 속도를 믿어보자고 결심한 건.
산책을 나서니 길가엔 어느덧 형형색색의 장미가 만개해 있었다. 장미꽃은 하나같이 햇빛이 가장 잘 드는 방향으로 고개를 내밀고선 각자 저마다의 고유한 색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모든 장미들이 조금씩 다른 빛깔을 뽐내고 있는 게 하나같이 다 눈부시고 아름다웠다. 여기 이 장미들도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고 이렇게 멋지고 매력 넘친 모습으로 자라났겠지. 새삼 세상 모든 식물들이 위대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면 어떤 씨앗이든 자기가 피워야 할 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옆에 핀 다른 꽃을 시기하여 더 빨리 꽃 피우려 하지 않으며 내 꽃을 두고 애써 남의 꽃을 피우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속도를 믿고 태양을 향해 뻗어 나갈 뿐이다. 그 결과 자신이 지닌 가능성을 완전히 꽃 피울 수 있는 것 아닐까.
글 쓰는 삶으로 내딛는 지금 나의 이 시작이 나라는 광활한 사막 안에 잠들어 있는 첫 씨앗을 꽃피게 하는 것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에서야 꿈을 찾은 이유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이유가 뭐가 됐든 내 안의 씨앗을 믿고, 내 속도를 믿고 나아가다 보면 결실을 맺을 거라고, 희망의 빛이 나를 내리쬐는 것만 같았다.
내 안의 씨앗이 언제 뿌리를 내리고 잎을 펼칠지, 꽃이 언제 피어나게 될지 아직은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지금은 그저 믿고 나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면서 어떻게 미지의 사막을 여행할 수 있을까. 그리고 역시나 희망적인 사실이 있다면 나의 사막엔 수많은 씨앗들이 잠들어 있다는 점이 아닐까. 그 씨앗들이 믿음이라는 단비를 듬뿍 받다 보면 적당한 때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꽃 피우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 내 안의 가능성을 믿고, 내 속도를 믿고, 나의 방향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일, 그게 바로 지금부터 내가 해나가야 하는 일이었다.
나도 세상에 하나뿐인 색을 지닌 나만의 꽃을 피우고 싶다. 빨리 가겠다는 이유로 남의 꽃을 피우고 싶지는 않다. 자신의 속도를 믿고 기다린 씨앗들처럼 나도 내 속도를 믿고 나아가야지. 내 안의 잠들어 있는 씨앗들을 소중히 키워나가야지. 나만의 꽃을 가장 나답게 나다운 속도로 키워낼 수 있도록. 내 속도를 믿고 빛의 방향으로 뚜벅뚜벅 나아갈 것이다.
어렵게 찾은 소중한 씨앗인 만큼 쉽게 포기해버리지 않도록 내 속도에 맞게 차근차근해 나가자고, 가슴 깊이 꾹꾹 새겨두었다.
‘내 가능성을 믿고 가 보는 거야. 모든 꽃이 봄에만 피는 건 아니잖아. 어떤 꽃이 필진 모르지만 내 속도를 믿고 한 발 한 발 걷다 보면 결국 필 테니까. 눈부시게 아름다운 나만의 멋진 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