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릿한 두려움과 설렘을 한가득 안은 채 드디어 나는 글 쓰며 사는 삶의 방향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서점에 들러 필요한 책들을 샀고, 좋은 키보드를 하나 장만했다. 그 후로 한동안 하루 종일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처음엔 막막한 마음에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도움이 될 만한 강의를 듣곤 했는데 한 책 쓰기 강의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한 달만에 책 한 권을 쓰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며 실제 사례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아직 무슨 내용의 글을 써야 할지조차 정하지 못한 내가 너무 느린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또다시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은 내 모습에 괜히 이 길을 택했나, 재능이 없으면 어쩌지, 스멀스멀 두려움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고민과 걱정이 깊어질 땐 걷든 달리든 나는 일단 집 밖을 나선다. 이왕이면 자연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마침 창밖을 보니 어느덧 봄꽃들이 하나 둘 피고 있었다. 겨우내 웅크려 있던 몸을 일으켜 한 발 두 발, 온전히 자연을 만날 수 있는 속도로 걸어 나갔다.
4월의 이른 아침, 한적한 벚꽃길을 따라 느릿느릿 걷다 보니 평소라면 무심코 지나쳤을 풍경이 나를 사로잡았다. 차도를 중심으로 양 옆 인도에 심어진 벚나무들이 확연히 달랐다. 내가 서 있는 인도 위에선 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고, 맞은편 인도 위의 벚나무들은 겨우 꽃봉오리 수준이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꽃피는 시기가 확연히 다름이 그저 신기했다.
‘왜 꽃 피는 속도가 다르지?’
호기심에 도로 양쪽에 심어진 벚나무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데, 불쑥 나무들이 내게 속삭였다.
‘그거야 햇빛 때문이지. 우리 나무들은 각자 받는 빛의 양이 달라. 다들 다른 길 위에, 다른 방향으로 서 있으니까.’
맞아, 환경이 다르면 꽃 피는 속도가 다르겠구나. 수많은 벚나무들은 제각기 다른 길, 다른 방향으로 서 있는 탓에 개화 속도도 역시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건 비단 벚나무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나무들의 이야기이기도 했고, 나아가 모든 생명, 모든 존재, 그러니까 나를 포함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똑같은 꽃을 피우는 나무들도 이처럼 꽃피는 속도가 제각각인데 전혀 다른 씨앗, 다른 가능성을 품고 있는 사람들, 다른 길 위에서, 다른 방향으로 걷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시기가 완전히 다른 게 정상이지 않을까. 길도 방향도 모두 다르다면 속도 역시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문득 지난 꿈속에서 보았던 수많은 길들이 떠올랐다. 허공으로 무수히 뻗어 있는 길들은 제각기 생김새가 너무도 달라 서로 속도를 비교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 보였다. 어떤 길은 구불구불한 내리막길이 제멋대로 펼쳐져 있기도 하고 어떤 길은 험난한 바위 산처럼 보였다. 길이 다르니 당연히 속도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길 위의 사람들은 길이 쉬우면 쉬운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모두 다 하나같이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걷고 있었다. 누구 하나 다른 곳을 쳐다보며 조급하거나 초조해하지 않았다.
이제야 확신이 들었다. 길도, 속도도, 맞고 틀린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저 각자의 길이 있고, 그 길에 어울리는 각자의 속도가 있을 뿐이란 걸. 그걸 모른 채 여태껏 나는 내 길 위에서 남들이 가는 속도에 맞춰 달리려고만 했다는 걸.
나는 자꾸만 다른 사람들의 엄청난 속도를 보며 괜스레 위축되고 늦었다는 초조함에 휩싸였는데, 그건 애초에 내 길이 아니었다. 내 길이 아니니 그들의 속도 역시 내 속도가 될 수 없었다. 내 길을 걸어가는 데에는 나만의 속도가 있는 법일 테니까.
우리에게 각자만의 고유한 길이 있고 그 방향이 모두 다 다르다면 우리의 성장 속도 또한 제각각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길이 다르고, 길의 방향이 각기 다른데 어떻게 속도가 같을 수 있을까. 나의 길을 가겠다면서 다른 사람의 속도에 맞추는 건 정말이지 바보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각자의 길이 다르다면 속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냥 나답게 사는, 지금의 내 속도가 ‘정답’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그냥 지금 이대로의 나를, 내 방향과 속도를 믿고 지긋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 단지 그것뿐이지 않을까.
이 당연한 사실을 그동안 왜 모르고 있었을까. 왜 자꾸 나만 늦었다는 생각에 불안해했을까. 왜 항상 남들과 내 속도를 비교하며 조급해했을까. 그저 내 속도대로 가면 그걸로 충분할 텐데. 나는 내 길을 나만의 속도로 가면 그만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내 방향을 찾는 데도 내 속도대로 온 셈이다. 그렇게 찾은 방향대로 나아간다면 내 속도대로 가고 있을 터였다. 내 방향을 찾는 데도 나만의 속도가 있다는 깨달음은 주저앉아만 있던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이게 내 속도라는 확신이 들자 지금의 내가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았다.
나만의 방향을 찾는 데도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듯, 나만의 꽃을 피우려면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다른 길에 핀 꽃들을 보며 초조해할 이유가 없었다. 나도 내 길에 어울리는 속도로 때가 되면 꽃을 피울 수 있을 터였다.
잠시 후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 맞은편 벚꽃길로 향했다. 한 나무 아래서 고개를 들어 꽃봉오리를 살펴보니
자신의 속도를 온전히 존중하겠다는 듯이 벌어진 꽃봉오리 틈새로 벚꽃 잎이 조금씩 피어나는 중이었다. 너도 곧 나처럼 예쁜 꽃을 피울 수 있을 거라고, 손톱만 한 꽃봉오리가 있는 힘껏 나를 응원해주고 있었다.
‘난 지금 꽃잎이 펼쳐지길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다른 꽃들보다 늦은 것 같아 보이지? 그래도 난 불안하지 않아. 난 잘 알고 있거든. 이게 나에게 맞는 성장 속도라는 걸. 아직 때가 되지 않아 꽃잎을 펼치지 못했을 뿐, 햇빛을 잘 받고 기다리다 보면 곧 눈부시게 피어날 거라는 걸. 우리는 아무도 늦지 않았어. 각자의 길을 각자의 속도대로 잘 가고 있으면 그만이야.’
나는 벚꽃에게 편안한 마음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래. 이젠 잘 알겠어. 나는 멈춰 서 있는 것도, 뒤쳐진 것도 아냐. 그냥 내 삶의 속도대로 가고 있을 뿐인 거지. 내가 걷는 이 속도가 바로 온전한 나의 속도야. 이게 내 속도라고. 그러니 조급해하지 않을 게. 더 이상 불안해하지도 않을게. 난 나만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란 걸 알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