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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지 Nov 01. 2020

8. 잠깐, 이건 내 속도가 아니잖아

내 안에 가능성의 씨앗을 품고 있다는 믿음 때문일까, 아침에 눈을 뜨면 뭐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엄청난 에너지가 샘솟았다. 내 머릿속은 온통 쓰고 있는 책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꿈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게 딱 지금의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이대로라면 나는 순식간에 첫 책을 완성하고 그토록 꿈꾸던 작가가 되겠구나, 부푼 꿈에 밥을 먹지 않아도, 잠을 자지 않아도 늘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꿈이라는 건 이토록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거라고, 행복의 비밀을 손에 쥔 것 마냥 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온통 내 꿈에 대해 이야기하기 바빴다. 그렇게 한동안 나는 달콤한 꿈에 취해 구름 위를 나는 듯한 황홀감에 빠져 지냈다.  


하지만 그토록 달콤했던 황홀감은 순간의 꿈처럼 너무나도 짧았다. 새로운 시작은 설렘만큼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걸까. 꿈을 찾았다는 달콤한 설렘도 잠시, 오히려 조급함만 더 커지고 있는 듯했다. 


진짜 꿈을 찾았다고 해서 이전과 특별히 달라진 건 사실 별로 없었다. 내 안에 샘솟던 엄청난 에너지도 어느덧 사라져 갔고,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일 년이 넘어갈 무렵부터 잊고 있던 불안이 고개를 내밀었다. 내심 이때쯤이면 첫 책을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현실은 고작 몇 편의 글을 끄적거린 게 전부였다. 사실 아직도 무슨 글을 써야 할지 감도 잡지 못한 상태였다. 나는 또다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진짜 꿈이 생기고 정말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생겨서일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루빨리 책을 써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내 목표를 빠르게 이뤄줄 지름길을 찾는 데 에너지를 쏟기 시작했다.  


책 쓰기와 글쓰기에 관한 온갖 책을 사들였고, 지름길을 찾고 싶은 마음에 수백만 원짜리 책 쓰기 강의를 수강하기도 했다. 하지만 큰맘 먹고 찾아간 수업에서도 내가 원하는 책을 순식간에 써낼 만한 비법은 없었다. 그저 매일매일 성실하게 쓰는 게 그 비법이라면 비법이었다.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 하루라도 빨리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란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노력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전에 없이 열심히, 아주아주 치열하게 내 모든 시간과 노력을 글 쓰는 일에 바쳤다. 필요한 자료를 정리하고 글을 쓰는 것 외의 시간은 최대한 줄이고 또 줄였다. 끼니는 거의 배달음식으로 해결했고, 꾸준히 해오던 운동도 그만두었으며, 취미로 읽던 책들도 모조리 구석으로 밀어놓았다.  


대신 책상 위뿐만 아니라 작업실과 집 여기저기에 읽고 정리해야 할 자료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끊임없이 보면서 어서 책을 써내야지, 스스로를 굳게 다잡으며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간절했다. 간절히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랐고 그만큼 치열하게 노력했다. 죽기 살기로 읽고 썼고, 그러면 내 바람처럼 빠른 시일 내에 내 첫 책이 완성되리라고, 그 책으로 어서 세상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이토록 간절히 바라면 ‘빨리’ 이루어질 것이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내 속도를 믿겠다는 다짐은 초조함과 불안 앞에선 아무런 힘도 돼주질 못했다. 나는 그런 다짐을 했는지조차 까마득히 잊은 채, 빨리, 오직 하루라도 더 빨리 첫 책을 완성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가고 있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뭔가 열심히 하고는 있는 것 같은데 막상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 나를 더욱더 초조하고 막막하게 했다. 출구 없는 미로에 완전히 갇혀버린 느낌이었다. 차라리 꿈이 없었다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없었다면, 지금보단 덜 힘들지 않을까, 원망스러운 마음만 가득해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SNS에서 답을 찾았다. 당시 카드 뉴스 형태로 짤막한 글을 써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었다. 글이 짧으니 편하게 읽기 좋고 꽤 그럴듯한 메시지를 손쉽게 전할 수 있어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그런 카드 뉴스 형태의 짤막한 글에 열광하고 있었다. 게다가 연애나 인간관계에 대한 주제는 특히나 전파력이 좋아 금세 팔로워 수가 늘어나곤 했다. 이거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글이 짧으니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을 테고, 한 권의 책을 빠르게 완성하기에 더없이 완벽한 지름길처럼 보였다.  


나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에 대해 짤막짤막한 글을 쓴 뒤 내 SNS 계정에 올리기 시작했다.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머지않아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 글을 읽게 되는 건 아닐까, 기분 좋은 상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곤 했다.  


그 후로 나는 온통 내 SNS 계정의 팔로워 수를 늘리는 데 집착하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더 호응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사람들을 모을 수 있을까, 나는 온통 인기를 얻기 위한 글을 쓰는 데에만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글을 써나갈수록 내가 쓰는 글은 나만의 빛과 힘을 잃고 특별함 없는 그저 그런 글 중에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으로 꾸역꾸역 쓰면 쓸수록 나는 또다시 지쳐가고 있었다.  


팔로워는 늘어갔지만 나는 점점 더 지쳐갔다. 인기만 좇아 글을 찍어내는 내 모습에 신물이 났다. 급기야 억지로 짜내는 글쓰기에 나는 완전히 질려버렸고, 1년 내에 첫 책을 완성한다는 목표는 한없이 멀어져만 갔다. 지름길이라 믿었던 방법마저 해답을 주지 못하다니, 마음 한편에선 그냥 다 포기해버릴까, 하는 충동이 불쑥불쑥 치밀곤 했다. 답을 찾은 듯싶었으나 또다시 답 없는 길에 들어선 듯한 막막함이 나를 또다시 주저앉혀버렸다.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간절히 노력했는데 고작 이 정도 결과라면 이 길이 내 길이 아닌 게 아닐까. 나는 글쓰기에 대한 모든 의욕을 잃고 또다시 멈춰 서고야 말았다.  






글쓰기를 멈추고 한 달쯤 지났을까. 문득, 이건 내 속도가 아니라는 생각이 스쳤다.  


‘내 속도를 믿기로 했으면서 왜 또 이렇게 빨리 가려고 애쓰고 있었던 거지? 이건 전혀 내 속도가 아닌데...’ 


게다가 나는 방향마저 잃고 또다시 질주하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남들을 따라 하며 억지로 속도를 내는 건 나에게 전혀 맞지 않는 방식이었다. 그런 식으로 평생을 살아온 탓에 그토록 아팠으면서도 왜 나는 지난날의 아픔을 잊고 또다시 무작정 질주하고 있었던 걸까.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하나의 목표만을 좇아 무작정 달리기만 했던 지난날의 내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정말 그랬다. 지금의 나는 목표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목표를 위해 질주하던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그동안 나는 막연히 좋은 책,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을 뿐, 구체적으로 내가 무슨 책을 쓰고 싶은지, 내가 어떤 글을 잘 쓸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 조차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무작정 목표를 이루겠다는 맹목적인 결심과 억지 노력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방향을 찾는 일이었다. 언제나 내게 방향을 알려주었던 건 책이었다. 나는 그동안 내가 좋아했던 책, 그리고 내게 영감을 주었던 책들을 다시 읽으면서 내가 써야 할 글이 무엇인지, 내가 정말로 쓰고 싶은 내용은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조함 속에서 내가 정말로 쓰고 싶은 글이 무엇인지, 여유 있게 고민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면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빨리 첫 책을 완성하고 어엿한 작가로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짓누르곤 했다. 이대로 나는 무엇을 써야 할지도 모른 채 또다시 실패하게 되는 걸까, 부정적인 생각만 머릿속을 가득 채우곤 했다.   


‘이놈의 조급함은 언제까지 날 괴롭히려는 걸까. 분명 일 년 전의 난 내 안의 가능성을 믿고 나만의 멋진 꽃을 피우기 위해 내 속도를 믿고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는데...’ 


예전에는 이런 상황에 부딪힐 때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의 문제를 무시하고 덮어둔 채 억지로 마음을 다른 쪽으로 돌리곤 했다. 그러면 당장은 상황이 해결된 듯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게도 스스로를 자책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곤 했다. 그게 너무나도 싫으면서도 당장 부정적인 마음을 견디는 게 힘들어 늘 외면하고 자책하기를 반복하며 살아왔었다.  


그런데 이번엔 자책이 아닌 근본적인 해결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훨씬 강했다. 나는 더 이상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진심으로 내 속도를 찾고 싶었다. 더 이상 조급함에 이끌려 나를 해치는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일 년 전에도 나는 이 조급함을 해결하기 위해 내 속도를 믿겠다고 굳게 약속했었다. 늘 조급함이 나를 엄습할 때마다 내 속도를 믿자, 내 속도를 믿자, 몇 번이고 주문을 외우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내 속도를 믿겠다고 주문을 외워 봤자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는 없었나 보다. 아직도 이렇게나 초조하고 불안해하는 걸 보면.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 정면승부. 내 조급함의 뿌리 깊은 원인을 찾아 제대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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