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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지 Nov 01. 2020

10. 내 삶은 내가 인정하면 돼

나는 어쩔 수 없는 본능의 노예인 걸까. 그러고 보니 내가 글을 쓰면서 자꾸만 지쳤던 이유도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과도하게 애를 썼기 때문이었다. 내가 왜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내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는 까마득히 잊은 채 그저 하루빨리 작가로 성공하기 위한 방법만을 찾았다. 그리고는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응과 인기를 위해서만 글을 쓰다 보니 점점 진짜 내 모습과는 거리가 먼 글을 쓰게 되었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내 인생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만 한다고, 그래야만 내 인생이 가치 있는 것이라 믿고 있었던 탓이었다. 그러고 보면 내 10대, 20대를 돌아보니 내가 했던 대부분의 일들이 하나같이 다 외부의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시작한 것들이었다.  


소름이 끼쳤다. 나는 이제껏 온종일 다른 사람의 인정과 관심을 받기 위해 살아온 게 아닌가. 도대체 왜 그토록 애를 써가며 타인의 인정을 갈구한 건지. 지난날 그 어디에도 스스로 인정하는 삶을 산 적이 없었다. 늘 어딘가 원인모를 공허함에 시달렸던 이유가 이제야 분명해졌다. 지금까지의 내 모든 행동이 부모님, 친구들, 나아가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인정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한 것이었다는 게 확실해졌다.  






정말이지 나는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심지어 혼자서 밥을 먹을 때 조차도 항상 누군가를 의식하며 어딘가 불편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곤 했다. 아마도 어딘가에서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고 살았나 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행동하는 게 오히려 마음이 놓이곤 했다. 그러면서도 늘 가슴 한편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불편함을 안고 있었다. 인정 욕구는 해소되었을지언정 나는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인정 욕구의 함정이었다. 우리는 누군가의 인정을 받아야만 그 인정을 바탕으로 돈도 벌고 원활한 인간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인정 욕구만 너무 과도해진 나머지 자기 자신이 아닌 모습으로 무작정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애쓰고 소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스스로가 왜 그런 안타까운 행동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른 채.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아무리 내 안에 내재된 본능이라 한들 이런 식으로 욕구를 해소하는 건 절대로 나를 위한 방법이 될 수 없었다. 나는 더 이상 타인의 인정에 휘둘리지 싶지 않았다. 이제 그만 온전히 자유롭고 행복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 안에는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고, 그들에게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크나큰 인정 욕구가 떡 하니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내게서 이 인정 욕구를 없앤다는 건 마치 지금까지의 내 삶과 내 존재 자체를 없애버리겠다는 것과 같다는 무시무시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과연 내가 정말로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문득 지금까지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이제껏 성공, 이 두 글자를 품에 안고 성공한 내 모습을 꿈꾸며 줄곧 앞만 보고 달려왔다. 돈, 명예, 지위, 같은 것들을 두루 갖춘 멋진 나. 성공을 꿈꾸는 건 너무 당연하다 믿었다. 왜였을까. 그래야만 내가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거겠지. 사람들이 선망하는 성공의 조건을 갖추어야만 그때야 비로소 나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꿈꾸던 성공한 모습 속에도 역시나 수많은 타인에게서 인정받기를 원하는 욕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렇게 인정받는 내가 되어야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는 거라는 믿음과 함께.  


하지만 이제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꿈꾸던 그런 성공이 나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걸. 오히려 맹목적으로 남들이 말하는 성공을 좇다간 나 자신을 잃고 점점 더 불행해질 뿐이라는 걸. 행복하지도 않으면서 성공한다는 건 아이러니였다. 더 이상 나를 잃어버린 채로 불행한 성공 속에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제 그만 행복해지고 싶었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다는 이유로 나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게 아닐까. 내가 정말로 바랐던 건 진심으로 행복해지는 거라는 걸. 내게 희망의 실마리를 준 건 다름 아닌 진심으로 행복해지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그 자체였다.  


지금까지의 고통스럽고 아픈 경험을 통해 한 가지 확실히 알게 된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진짜 내 모습이 아닌 채로 애쓰다 보면 나는 행복할 수도 없을뿐더러 몸도 마음도 모두 상처 입고 아프게 된다는 점이었다. 타인의 인정만을 위해서 나에게 맞지 않는 것들을 해내려 애쓸 때마다 내 안의 인정 욕구는 해소됐을지 몰라도 나는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그때의 난 진짜 내가 아니었다. 늘 내가 사라지는 것 같은 공허함을 느끼곤 했다. 더 이상 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한 행위를 통해서는 건강하게 행복해질 수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 안에 떡 하니 남아 있는 본능을 없앨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건 내가 평생을 안고 가야 할 숙제 같은 것이었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 내 마음대로 어쩌지 못하는 것을 무작정 거부하고 무시하는 것 역시 언젠가는 또 다른 고통으로 돌아온다는 것 역시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쉽지는 않겠지만 내 안의 욕구를 쿨하게 인정하되 그게 너무 과도하게 나를 집어삼키지 않도록 현명하게, 내가 행복한 방향으로 인정 욕구를 표출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심결에 머릿속 생각들을 글로 옮겨 적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내가 살아온 이야기, 내 생각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지. 행복에 대해 고민하고 행복에 대해 쓰고 있어서였을까,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온전히 내가 된 기분이었다. 놀랍게도 그 느낌은 바로 내가 그토록 원하던 진정으로 인정받는 느낌, 바로 그것이었다.  


문득 방 한쪽 거울에 비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소파에 편하게  등을 기대고 앉아 무릎 위에 노트를 펼친 채 글을 쓰고 있었다. 그 모습에 왠지 모르게 행복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거울 속 나에게서 은은하면서도 눈부신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것 봐. 다른 사람의 인정에 기대지 않아도 되잖아. 지금처럼 그냥 나인 채로 머물러 있기만 하면 돼.’ 


바로 그때 나는 그냥 지금처럼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면 된다는 알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 이건 내가 무언가를 잘 해냈기 때문에 느끼는 안정감이 아니었다. 그냥 내가 내 모습 그대로 편안하게 머물렀을 뿐인데 자연스레 느껴지는 따스함이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내 삶과 나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오롯이 인정하고 응원하고 있었다.  


나를 인정한다는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내가 나를 인정한다는 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듯 내가 가진 것이나 이룬 것에 대해 칭찬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내가 온전히 나로 머무는 바로 그 순간에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존재를 지지하는 따스하고 편안한 안정감이었다. 


나를 편안한 마음으로 이해하고 바라보았을 뿐인데 그게 타인의 인정과는 비교도 못할 만큼 완전한 편안함을 선물해 주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준다 한들 내가 진심으로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바깥에서 인정받으려 애쓸 땐 그토록 공허함만 가득 느끼곤 했는데, 이렇게 그냥 편안하게 글을 쓰고 있었을 뿐인데, 편안하면서도 내 존재가 근원적으로 지지받는 느낌이라니. 나는 어쩌면 너무나 가까이에 있었던 답을 멀리에서 어렵게만 찾고 있었던 게 아닐까.  


내가 멋지고 빛나 보이는 순간은 그냥 내가 나인채로 지금에 머물고 있는 모든 순간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나는 온전히 나였다. 그래서인지 누구의 인정을 받고 있는 게 아닌데도 그저 있는 그대로 편안하고 안정감을 느끼곤 했다. 내 안에서 나는 충분히 잘 살고 있다는 알 수 없는 충만함이 느껴지곤 했다.  


내가 나인 채로 살아가는 것. 그리하여 자연스레 내가 나를 인정하게 되는 것. 이게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행복과 자유의 열쇠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행복이 곧 내가 그토록 꿈꾸던 진정한 성공이었다는 사실을.  


정말로 성공은 그렇게 애쓰며 성취해야 할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내가 온전한 나로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인정하고 행복해지는 것, 그게 바로 내가 진심으로 꿈꾸던 성공의 모습이었다. 그동안 나를 사로잡았던 성공 해서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 성공 뒤에 행복이 찾아올 거라는 믿음이 사라져 갔다. 대신 지금 나로 사는 이 순간이 진정한 행복이자 진짜 성공이라는 확신이 단단해지고 있었다.  






늦은 밤 침대에 누워있자니 그토록 인정받으러 애쓰려 애썼던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과도해지면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질주하게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 결과 자기 자신을 소진시키고 진짜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지난날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진짜 내가 아닌 모습으로 세상의 인정을 받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심지어 스스로를 심각하게 상처 입히는 일이기까지 한데 말이다.  


내가 잘못된 방식으로 타인의 인정을 받으려 애쓰는 동안 나의 내면 저 깊은 곳에선 이런 내 모습을 혐오하며 스스로에게 엄청난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내가 아닌 모습으로 인정받으려 애쓰다 보면 진짜 내 모습을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그 결과 마음 깊은 곳에 상처를 입히게 된다는 걸 내 지난 아픔이 너무나 생생히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는 타인의 인정을 받지 못했을 때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했을 때, 가장 상처 받고 가장 아프다는 걸, 이제는 정말이지 잊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나의 초라함을 가리기 위해 내가 아닌 모습으로 애쓰고 성공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결국에 나를 아프게 할 뿐이니까.  


한 편으론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실 내 인생은 오직 나밖에 모르는데, 내 삶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사는 것인데, 과연 누가 나를 온전히 인정해줄 수 있을까. 내가 내 길을 걷고 있다면 진짜 인정을 받아야 할 존재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아닐까.  


그동안의 숱한 내 실패들, 그 실패들 때문에 나는 늘 내가 죄인인 것만 같고 아무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을 것 만 같은 두려움에 시달렸는데, 이제는 그만 나를 믿고 인정해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나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 그거면 내가 나를 인정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이대로 충분하다는 실감이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내가 나인 순간에 다른 누구의 인정도 필요 없을 만큼 나는 편안하고 안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애써서 나를 증명할 필요조차 없다는 것, 나만의 길 위에서 나만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고 인정받을만한 일이라는 것을 나로 머무는 순간 속에서 실감하고 있었다. 


이렇게 차츰차츰 나로 사는 시간들을 늘려간다면, 나인채로 행복한 순간들을 늘려간다면, 언젠가 완전한 자유와 성공 속에 살고 있지 않을까. 어서 내 안에 이 실감이 단단해지기를. 나로 살면 충분하다, 내 속도대로 나아가면 충분하다는 확신이 마음속 깊이 뿌리내려주기를. 그리하여 내 안에 꺼지지 않는 별이 되어주기를. 소망하며 잠이 들었다. 


그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꿈속의 나는 일곱 살쯤 돼 보였다. 나는 내 안의 어린 소녀를 늘 칭찬받기 위해, 관심받기 위해 늘 뭐든 잘 해내야만 했던, 그래야만 한다고 믿었던 내 안의 어린 소녀를 두 팔로 따스히 감싸 안았다. 평생을 나를 옥죄어 온 이 조급함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그만 나를 놓아주자고, 나는 나로 살면 충분하다고, 이제부턴 정말로 자유롭고 행복해지자고, 몇 번이고 되뇌었다. 내 두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서른의 조은지 안에서 일곱의 조은지가 엉엉 울고 있었다.  


‘괜찮아. 이제부터 우리 정말로 행복해지는 거야. 그 누구도 아닌 내 모습으로. 내 속도로 나아가는 거야.’ 


그렇게 나는 내가 찾은 별을 품에 안고 또다시 나만의 글쓰기 여정을 떠났다. 내가 나인채로 머물던 순간의 따스함을 잊지 말자고 되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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