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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지 Nov 01. 2020

11. 세상과 거리두기가 내게 준 선물

때로는 내 의지와 정 반대로 흘러가는 인생이 참 야속하기만 하다. 나를 믿고 여유 있게 내 속도대로 나아가자던 약속은 순식간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리 내 속도에 맞게 한 발 한 발 나아가려 한들 세상은 여전히 빨리 무언가를 이루고 증명해내라며 여기저기 시끄러웠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니, 책은 언제 나오니, 그걸로 돈이 되니, 결혼은 언제 할 거니, 집은 자가니 전세니. 주변에서는 끊임없이 내 나이 정도라면 그 정도는 갖추었거나 갖추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런 질문들을 대수롭지 않게 했다. 그런 질문들 앞에 서면 ‘나’라는 사람은 온 데 간데없고 내가 무엇을 가지지 못했는지만 적나라하게 드러나곤 했다. 그것들을 언제 이룰 수 있을지 기약조차 할 수 없는 난 늘 죄인 같고 답답하기만 했다. 


게다가 뉴스며 인터넷에서는 누가 얼마를 벌었고, 누가 최연소 수상을 했고, 누가 글로벌로 진출했고, 등등. 온통 누가 무언가를 얼마나 많이 얼마나 빠르게 이루었는지 떠들어대기 바빴다. 세상은 특정 몇몇의 이야기를 전체의 정답인 것 마냥 대수롭지 않게 떠들어 대곤 했다. 어디를 가든 끊임없이 이런 식의 성공담이 쉴 새 없이 퍼져 나오고 있었다. 마치 그들의 삶이 우리가 본받고 따라야만 하는 정답 같은 삶이라는 듯이.  


이제 보니 세상은 내 속도뿐만 아니라 내 길의 방향, 심지어는 나라는 존재조차 부정하고 믿지 못하도록 온통 폭력적인 메시지를 내뿜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가 따라야 하는 알맞은 속도와 때를 정해놓고는 끊임없이 알람을 울려대고 있었다.  


언제나 주위를 둘러보면 나만 점점 더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초조함을 잔뜩 안고 살아왔었다. 그런데 그건 내가 정말 늦어서가 아니라 세상이 ‘너는 늦었어’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느껴 왔던 불안과 초조함이 어디에서 증폭되고 있는지 비로소 선명해졌다. 내가 무슨 일이든 빨리 해내야 한다고 조급함을 느꼈던 데에는 단지 인정 욕구 때문만은 아닌 게 분명했다. 이제 나는 세상을 직시할 수 있었다. 끊임없이 우리에게 어떤 기준과 잣대를 들이대고 강요하는 사회 속에 내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고난의 바다 한가운데에 표류하고 있었다.  


빠름이 진리인 양, 모두가 1등이 될 수 없는 현실에서 1등만이 정답인 양 칭송하는 곳. 이게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의 현실이었다. 정말 무서운 사실은 그게 너무나도 오래전부터, 아마도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들어오던 메시지 들이라 나조차도 아무런 의심도 하지 못한 채 세상이 떠드는 정답이 마치 누구나 따라야만 하는 정답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는 점이다. 세상은 온통 정해진 몇 개의 방향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통에 자꾸만 나도 모르게 내 방향이 아님에도 그쪽으로 휩쓸리곤 했다. 


그렇게 세상이 끊임없이 제시하는 기준들은 사실 터무니없이 높고도 높았다. 게다가 나와는 방향도 맞지 않았다. 내가 잘 해낼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마치 그것이 내가 꼭 해내야만 하는 무언가라 믿고 애쓰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위에서 다들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주변의 조급함과 초조함을 내 것이라 느꼈던 것 같다. 그러면서 그들과 서로 동요되어 무작정 달리곤 했던 게 아닐까.  


내가 원하지 않는 삶의 방식을 누구나 따라야만 하는 정답처럼 떠들고 있는 세상 속에 서 있을 때면 나는 정말이지 초조함과는 별개로 숨이 막힐 듯 답답해지곤 했다.  


물론 한 때 나는 이런 사회적 알람에 잘 순종하며 살아온 편이었다. 그래야만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그렇게 살 이유가 없었다. 내가 나로 살면 그게 곧 행복이자 성공이라는 걸 이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아등바등하며 세상의 정답을 따르며 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제 막 홀로서기를 시작한 어린 아이나 마찬가지였다. 세상은 여전히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가고 있었고, 그 한가운데서 나만 우두커니 멈춰 서 있는 셈이었다. 온통 빨리빨리를 외치며 질주하는 곳에서 내 속도를 지키며 나아가기란 정말이지 터무니없이 어려운 일이었다. 내 속도로 살겠다는 다짐이 결심만으로 쉽게 되지 않았던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해 보였다. 이 수많은 소음들 속에서 중심을 잡고 스스로의 속도를 믿는다는 게 쉬울 턱이 없었다. 내게는 아직 내 속도를 지키며 세상에 떠밀리지 않을 단단한 마음이 없었다. 내 안에는 아직 그런 강한 힘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때때로 나는 전보다 더 초조하고 두려워졌다. 내가 자꾸만 멈춰 있다는 생각, 그러니 어서 다시 달려야만 한다는 초조함이 엄습하곤 했다. 게다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로 걸어야 내게 맞는 속도인지를. 슬프게도 나는 내 속도로 걷는 법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계속 외부의 소음에 휘둘리고 바깥을 보며 비교하고 위축되기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이 이렇게나 소란스럽고 폭력적이기까지 한데, 이 안에서 나를 온전히 지켜낼 수 있을까, 온전히 내 속도를 되찾을 수 있을까. 나는 아직 내가 누구인지도 확신이 없는데. 이런 엄청난 소음 속에서 나를 지켜낸다는 건 지금의 나로선 역부족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지금 내게 절실히 필요한 건 ‘세상과 거리두기’라는 걸. 잠시 세상과 멀찌감치 떨어져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걸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내게 직감이란 시의적절하게 나에게 맞는 길을 비춰주는 나침반 같았다. 나는 내 직감을 믿고 잠시 세상과 거리를 두기로 했다. 내가 내 속도로 온전히 걸을 수 있게 되면, 그럴 충분한 힘이 생기면 그때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자고, 굳게 마음먹었다. 그렇게 나는 온통 빨리빨리를 외치는 세상에서 빠져나왔다.  






나는 가장 먼저 SNS부터 그만두었다. 인기를 위해 글을 쓰는 일은 진즉 그만두었지만, 나는 늘 누가 무얼 하고 있는지,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지 나도 모르게 기웃거리곤 했다. 그러면 자꾸만 지금의 내 모습과 비교하게 된다는 걸 알면서도 빠져나오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하자 오히려 마음이 후련했다. 내 마음이 건강하고 단단해지고 나면, 그때 다시 돌아오자고, 나는 그렇게 인터넷 세계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친구들은 물론이고 가족들도 거의 만나지 않은 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스스로에게 처음으로 선물한 온전한 휴가였다. 나를 건강하게 사랑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나가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떠나 도착한 나의 도피처는 내 방과 집 근처 숲, 그리고 나 자신이었다.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선택지이기도 했으나 다행히도 이곳들은 외부의 소음으로부터 온전하게 나를 지킬 수 있는 고요하고 안전한 공간이었다. 오롯이 나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가질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한 마음이었다.  


방 안에서는 주로 책을 읽거나 글을 썼다. 내 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 혹은 자기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로 읽곤 했다. 그리고는 책에서 받은 영감으로 나만 목소리를 담아 글을 써보곤 했다. 그럴 때면 내가 읽은 책 속 주인공들의 여유로움과 은은한 자신감이 나에게도 물들어 오는 것만 같았다. 꽤나 기분 좋은 물듦이었다.  


휴대폰을 켜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일은 예상보다 훨씬 더 좋았다. 이렇게 마음이 여유로운 게 언제였는지. 그동안 내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를 증명하느라 애썼구나, 지난 기억 속의 내가 안쓰러웠다. 이제는 스스로 그런 아픔을 만들어내지는 말자고 왼쪽 가슴을 도닥거렸다.  






오전 시간이나 점심을 먹은 뒤 나는 집 앞 숲길을 산책하곤 했다. 날씨가 허락하는 한 거의 매일같이 몇 시간이고 집 앞 숲길을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이상하게 나는 숲 속에 있을 때면 따스히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그 온기 때문인지 내 발길은 틈만 나면 숲을 향하곤 했다.  


도심 속 숲이라 늘 산책하는 사람들로 붐비곤 했는데, 마주치는 어느 누구도 내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편안한 안정감을 주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사람들이 내게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그들의 시선을 신경 쓰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내가 일부러 의식하지 않았다면 내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텐데. 그동안 너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왔던 게 아닐까, 그놈의 인정이 뭐라고. 피식 웃음이 났다.  


숲의 한적한 기운 때문일까, 아니면 나에게 어울리는 속도를 찾아가고 있어서일까. 세상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 후로 조급함, 초조함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평온함, 고요함으로 조금씩 변해가는 게 느껴졌다.  


숲 속의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서로에게 속도를 강요하거나 비교할 필요 없이, 그렇게 나는 내게 편안한 속도로 한 발 한 발 걷는 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나는 갈대숲 곳곳을 느릿느릿한 걸음걸이로 걷고 또 걸었다. 숲길을 걸으며 만나는 다양한 풍경이 내 눈길을 사로잡곤 했다. 걷다가 자세히 보고 싶은 것이 눈에 들어오면 슬며시 멈추어 서서 한동안 바라보곤 했다. 이름 모를 들꽃, 멋들어진 느티나무, 그 아래 바글거리는 개미 떼, 불쑥 나타난 새하얀 토끼, 느릿느릿 흐르는 강물, 그 위를 한없이 유유히 떠다니는 오리들까지. 내 눈길을 사로잡은 그 모든 것들에게서 은은한 행복이 전해져 왔다.  

다들 저마다의 시계와 나침반을 가슴에 하나씩 품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저마다 자기에게 꼭 어울리는 곳에 어울리는 속도로 편안하게 머물러 있음이 느껴졌다. 숲 속의 모든 것들이 나에게 다 훌륭한 선생님이 되어주고 있었다.  






이렇게 다들 각자만의 속도로 세상과 완벽히 조화를 이루며 너무나도 멋진 풍경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는데 나는 왜 그토록 질주하고만 있었는지. 그러고 보니 이렇게 온전히 자연을 느끼며 걸어본 지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마도 나는 자연 속을 걷지 않게 되면서 내 속도도, 내 삶도 모두 잃어버린 거겠지. 처음부터 온전히 자기만의 속도로 멋지게 자라났을 숲 속의 수많은 생명들이 내심 부러웠다. 나도 그렇게 내 모습으로 세상과 어우러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도 이미 이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라는 걸. 나만의 속도로 나아간다면 나 역시도 세상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며 살게 될 거라는 걸.  


나는 설레고 기쁜 마음으로 발길이 이끄는 대로 이곳저곳을 거닐었다. 발길이 향하는 곳으로 나아갈 때면 자연스럽게 저절로 흘러가는 느낌이 좋았다. 때론 성큼성큼 속도가 빨라지기도 하고 때론 우두커니 멈추어 서기도 했지만 그 모든 과정이 너무도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내 속도로 걷는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이렇게 가슴이 이끄는 방향을 따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 이게 바로 내가 소중히 기억해야만 하는 나에게 어울리는 속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알 것 같았다. 나는 지금 세상의 소음이 아닌 내 안의 시계 소리와 나침반을 따라 걷고 있다는 것을. 내 가슴 안에는 나만을 위한 시계와 나침반이 모두 들어 있어 내가 언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나지막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 나지막한 목소리는 언제나 내 안 깊숙한 곳에서 나에게 맞는 속도와 방향을 알려주고 있지 않았을까. 나는 그동안 너무나 시끄러운 세상 속에 파묻혀 정작 중요한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었구나.  


그제야 보였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내 속도와 방향을 잃은 채로 살아왔는지, 내가 있던 세상이 얼마나 내 속도와 방향을 무시하고 있었는지. 그것도 모른 채 내가 나를 얼마나 오래 방치하고 있었는지를.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나는 그렇게 많이 아프지 않았을 텐데. 지난날의 아픈 기억이 떠올라 눈물이 고였다.  


이제는 정말로 나에게 어울리는 방향을 향해 나에게 어울리는 속도로 나아가고 싶었다. 물론 평생 이렇게 세상에서 홀로 떨어진 채로 살 수는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얼마 되지 않을 지금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했다. 이제는 더 이상 바깥의 소음에 나를 잃어버리지 말자고, 내 소중한 속도를 잃어버리지 말자고, 언제나 가슴이 이끄는 방향으로 꿋꿋이 나아가자고, 그러려면 이 귀한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잘 사용하자고. 그리고 건강하게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자고. 그렇게 되뇌었다. 


이런 내 간절함이 어딘가에 전달되었던 것일까, 나는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꿈같은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세상과 거리를 둔 채 온전히 나를 알아갈 수 있었다. 거리두기는 나를 세상의 파도에서 지켜주고 있었다. 나는 머지않아 나의 방향을 찾고 내 속도로 글을 써 나아갈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때부터 어렴풋이 내 속도를 믿고 나아가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때 내 가슴의 나침반이 이 책을 향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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