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은지 Nov 01. 2020

12. 신비로운 명상의 효과

세상과 거리를 둔 채 숲 속에서 고요히 나에게 집중하는 그 시간들은 너무나도 좋았다. 하지만 완전히 나에게 집중하기엔 숲 속에는 너무나 반짝이는 것들이 많았다. 때때로 나는 손톱만 한 풀꽃 한 송이에도 마음을 빼앗기곤 했다. 이름도 모르는 풀꽃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동안 정작 내 안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있지 못한 게 아닐까, 나만의 시계 소리를 듣지 못하는 건 아닐까, 염려되곤 했다.  


나는 숲 속을 거닐면서 종종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으면서 내 안에 느껴지는 어떤 방향성, 흐름 같은 것들만 오롯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어느 때보다도 편안하고 세상이 온통 나를 따스히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느낌이 너무나도 좋았다. 그렇게 나만의 시계와 나침반을 따라갈 때면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나를 감싸곤 했다. 하지만 이 느낌은 아주 이따금씩 드는 것이어서 나는 종종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해지곤 했다. 나는 내 안의 자그마한 소리를 더 자주, 더 또렷하게 듣고 싶었다. 이제는 숲 속에서 뿐만 아니라 세상 속에서도 언제나 내 가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기를 바랐다.  


자기 자신으로 나아가는 길 곳곳엔 알 수 없는 도움의 손길이 나타나곤 하는 것 같다. 그때 즈음 내가 읽고 있던 책들이 하나같이 마음챙김 명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숲 속을 걷는 것 외에 무얼 더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자연스레 나는 내 방 안으로 들어와 눈을 감고 고요한 침묵 속에 오직 내 안의 어떤 울림과 나지막한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나는 내 가슴의 시계 소리를 듣기 위해 명상을 시작했다. 그렇게 내 방도, 집 앞의 숲도 아닌 나, 내 안으로의 비밀 같은 여정을 시작했다.  






나는 매일 아침 방석 하나를 깔고 앉아 가능한 만큼 가부좌를 틀었다. 앉는 것부터 쉽지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그렇게 가부좌를 틀고 앉는 다소 진지한 자세가 왠지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울에 비친 명상하는 내 모습이 좋았다. 그냥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을 좋아할 수 있다니. 문득 내가 참 많이 변했구나, 싶었다. 이렇게 나는 나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게 되는 걸까, 기분 좋은 기대감이 나를 감쌌다.   


마음챙김 명상은 호흡이나 몸의 감각에 주의를 집중하며 지금 이 순간에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이다.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말은 어떠한 판단이나 평가 없이 그저 바라보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차리기만 한다는 뜻이었다. 처음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나는 호흡에 집중하는 것으로 명상을 시작했다. 코를 중심으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내가 앞으로 꾸준히 해 나가야 할 일이었다. 사실은 무언가를 한다기보다 하지 않는 쪽에 가깝다는 걸 깨달은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처음 며칠은 1분도 채 되지 않아 호흡을 놓치기 일쑤였다. 호흡을 놓친 대부분의 이유는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생각과 감정에 주의를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한 생각들이었다. 나는 그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꽉 채우고 나서야 문득 내가 호흡을 알아차리는 명상 중이었음을 깨닫고 다시 코끝으로 주의를 돌리곤 했다.  


하지만 호흡에 주의를 옮기기가 무섭게 나는 온갖 생각의 늪에 빠져 한참을 허우적 대곤 했다. 그건 정말 생각의 늪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불안한 생각과 감정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쑥불쑥 일어나곤 했다. 


내 의지도 아닌 것들에 무의식적으로 끌려다니는 게 과연 현명한 일일까? 불안한 마음은 불쑥불쑥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났다 사라지곤 했는데, 내가 거기에 붙들려 생각의 늪에 빠지는 순간 불안은 정말 내 현실처럼 생생히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나는 불안한 생각과 감정을 현실이라 믿으며 고통스러워하곤 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영문도 모른 채 내 마음에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나를 위한 일이 될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나는 그동안 온갖 비교와 조급함의 늪에 살고 있었던 게 아닐까. 단지 그 마음을 알아차리는 법을 알지 못했다는 이유로. 나는 왜 그렇게나 모르는 것 투성이었는지. 이번에도 역시나 지난날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너무 늦지 않았다는 점과 어쩌면 이게 내 인생의 속도가 아닐까 얼마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나는 조금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토록 내 평생을 힘들게 했을 오만가지 생각과 감정들을 벗어나는 방법은 놀랍도록 간단했다. 내가 생각에 늪에 빠졌다는 걸 알아차리기만 하면 즉시 생각이 멈추고 주의를 코끝으로 다시 옮겨올 수 있었다. 나는 생각이 불쑥불쑥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순 없었지만, 생각이 일어났을 때 그것에 주의를 빼앗기지 않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배워가고 있었다.   


나는 아직 스스로를 완전히 믿어줄 수 있을 만큼 강한 마음을 갖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매일매일 내 생각과 감정의 늪에 빠지지 않는 법을 연습해나간다면 언젠가는 내 마음도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을 만큼 단단하고 강해지지 않을까. 명상이 그걸 가능하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명상을 시작하면 여전히 온갖 생각과 감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지만 나는 점점 생각이 일어나는 즉시 그걸 바라볼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은 긴장을 풀고 어떤 생각과 감정들이 일어났다 사라지는지 차분히 바라볼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내 안에서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는 어떤 패턴이 있음을 발견했다. 내 마음의 시선이 자꾸만 바깥으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온통 바깥의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그에 대한 어떤 감정들을 곱씹고 있었다.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불안해하거나, 내가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 관하여 생각하고 끊임없이 나를 그들과 비교하며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곤 했다. 나에게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 그 어디에도 지금 여기에 숨 쉬고 있는 ‘나’에 대한 건 없었다. 내 마음은 온통 내가 아닌 바깥의 무언가에 대해 혼자서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생각을 멈추고 호흡으로 돌아오는 바로 그 순간에, 나는 바깥으로 향하던 시선을 돌려 나에게로, 내 안쪽을 바라본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러한 내면으로의 시선 전환이야말로 내게 진정한 자유를 선물해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이런 생각의 패턴은 사실 오래전부터 나를 괴롭히고 있던 것이었다. 나는 언제나 시선을 바깥에 고정시킨 채로 끊임없이 외부의 대상에게 내 마음의 주도권을 내어 주곤 했는데, 그럴 때면 세상이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처럼 마음의 시선이 바깥을 향할 때에는 이상하리만치 늘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이 동반되곤 했다. 내가 의도적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 해도 어느샌가 다시 부정적인 생각이 그 자리를 메꾸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제 시선을 돌리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저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알아차리고 다시 들숨과 날숨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며 호흡에 집중하면 그만이었다. 호흡에 집중하는 순간엔 언제나 내 시선은 이미 나의 내면을 향하고 있었다.  


고요히 내면으로 침잠하여 내 안의 불안과 두려움 등 온갖 감정과 생각들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어느새 감정과 생각의 소용돌이가 멈추고 편안해지곤 했다. 지금 이 순간에 나에게는 아무런 불안도 두려움도 없는 자유가 찾아오곤 했다.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 낯설면서도 기뻤다.  


기쁨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거의 매일 아침 하루 일과를 명상으로 시작하곤 했다. 1분이 5분이 되고, 5분이 10분, 30분, 한 시간이 되기까지 세 달쯤 걸렸을까. 나는 이제 한 시간을 꼬박 한 자리에 앉아 호흡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때부터 주의를 집중하는 범위를 넓혀 숨이 들고나가는 코 주위뿐 아니라 몸 전체에 걸쳐 일어나고 사라지는 감각을 바라보는 수련을 시작했다. 


나는 아침 명상시간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중에도 점점 명상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몸 전체에 걸쳐 감각을 관찰하는  일 역시 문득문득 바깥으로 향하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시선을 내면으로 돌리곤 했다. 마음의 시선이 안쪽으로 돌아오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는 일이 줄어들고 있었다. 그 시간들이 쌓일수록 나는 점점 더 자유로워졌고, 내 마음의 주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명상이 점점 일상 속에 자리 잡아가면서 나는 편안한 안정감 속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가고 있었다. 시선을 내면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명상의 또 다른 신비로움 때문이었다. 명상은 지금 이 순간에 완전히 몰입한 나머지 모든 것을 멈추는 시간이었다.  


비교도 멈추고, 판단도 멈추고, 생각도 멈춘 채, 지금 이대로의 나를 만나는 시간. 세상과 거리를 두고 의도적으로 느려지다 못해 멈춰버리는 연습. 그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명상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교와 판단을 멈춘 자리엔 아무런 문제 없이 완전한 내가 서 있었다. 이 완전한 멈춤 속에, 비로소 완전히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 진짜 ‘내’가 있었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내가.  


멈추고 싶어도 멈추지 못했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사실 나는 열심히 달리지 않는다면, 무언가 치열하게 하지 않는다면, 나만 금세 뒤처지고 문제가 생길 거라 믿고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완전히 멈춘 뒤 지금 이대로의 나를 보고 있자니 놀랍게도 아무런 문제도 없고 오히려 전에 없이 평온하기까지 했다.  


맹목적인 질주 속에서도 난 늘 두려움에 휩싸였는데, 이렇게 온전히 멈추고 나에게 집중하니 돌아온 것은 나는 이대로 완전하다는 근원적인 믿음이었다. 아이러니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완전한 느낌이라니. 정말 그냥 이대로의 내 모습으로 살아가기만 해도 충분히 괜찮은 걸까, 알 수 없는 용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온통 빠름만을 외치는 세상 속에서 명상은 내게 ‘멈춤’의 진정한 가치를 알려주곤 했다. 세상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내 안에 단단한 중심을 찾고 내 안에 오롯이 머물 수 있어야 한다는 걸 명상을 하면서 점차 확신하게 되었다. 명상은 온통 빨리빨리를 외쳐대는 세상 속에서 내가 내 안으로 들어가 쉴 수 있는 안식처를 마련해주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완전한 멈춤 속에서 온전히 내가 편안한 속도를 찾아나갈 수 있었고, 비교하지 않고 내가 편안한 속도로 나아가면 그만이라는 안정감이 나를 감싸곤 했다.  


비교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나는 이게 너무나도 좋았다. 비교의 늪에서 빠져나오니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 한들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고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높은 곳에 올라 있는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냥 나였다.  


명상을 하면서 내 생각과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고요히 바라볼 수 있게 되니 내가 잃어버린 진실이 보였다. 나는 정말로 나라는 고유한 삶을 살고 있을 뿐이라는 것. 어디에도 비교될 필요도 없고 평가될 필요도 없이 그냥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발 한 발을 옮기면 그뿐이라는 것. 그리고 바로 그 사실을 점점 체화시키고 내게 당연한 기준으로 자리 잡게 하는 것, 그리하여 언제나 내가 나 자신의 모습으로 편안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세였다.


그러고 보면 처음 이 길을 걷기 시작한 것도 바로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닌가. 나는 이제야 온전히 나를 믿고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된 것 같아 가슴 한편이 벅차올랐다. 

이전 11화 11. 세상과 거리두기가 내게 준 선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