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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지 Nov 01. 2020

14. 내 속도를 믿겠습니다

삶이 이렇게 행복하고 소중한 것이었나, 문득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지난날의 난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비교하고 따라 하며 남의 속도로 살아온 탓에 늘 어딘가 공허한 느낌뿐, 내 삶이 소중하다는 것도,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도 전혀 모른 채 그저 질주하고 소진시키며 살아온 것 같은데... 그런데 이제는 내 삶도, 나도, 내 마음도, 하나같이 그 자체로 아름답고 멋지게 빛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의 길 위에서 나만의 속도로 걸어가는 나. 이런 나라면 언제 어디서 무얼 하든 나다운 빛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의 씨앗이 내 안쪽 어딘가에 싹트고 있었다. 이 씨앗을 소중히 잘 키워나갈 때, 나도, 내 속도도 온전히 지켜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진심으로 내 삶을 소중히 여기고,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내 속도를 존중하며 온전히 나로 살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나만의 행복한 발걸음을 시작하고 싶었다.  


세상과 거리두기를 하며 홀로 숲 속을 산책하던 날들이 떠올랐다. 그때의 난 행복 그 자체였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행복하게 했을까. 그건 역시나 나에게 어울리는 편안한 속도 덕분이었을 것이다. 내가 행복한 속도, 내가 나일 수 있는 속도로 걸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난 오롯이 풍경을 즐기며 산책하곤 했었다. 그게 너무나 좋았다. 무척이나 가볍고 경쾌한 마음으로 걷다 쉬다를 반복하며 발길이 멈추는 곳에선 찬찬히 살펴볼 수 있는 속도. 그게 바로 내가 그토록 찾으려 애썼던 나에게 어울리는, 나를 행복하고 편안하게 하는 속도였다.  


그렇게 내 속도로 걷고 있을 때면 내가 어디에 있든 세상은 온통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나에게 어울리는 속도로 걷는다는 건 세상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고 즐기고 경험하며 살아가는 걸 의미한다는 것을.  


누구에게나 자신의 세계를 아름답게 경험하며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속도는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저마다 완전히 다른 길 위에서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내 속도로 나아갈 때에만 온전히 내가 될 수 있으며, 내 속도로 나아갈 때만 삶의 아름다운 순간들이 온전한 내 경험이 된다는 것을. 그렇다면 무작정 빨리 달리기만 하는 건 더더욱 의미가 없지 않을까. 중요한 건 내 세계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경험하며 온전히 나로 살아가는 것일 테니까.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한 번뿐인 내 소중한 삶. 그렇기에 나는 더더욱 나에게 맞는 속도로 나아가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정말 굳게 다짐했다. 아니, 굳이 애써 다짐할 필요도 없었다. 내 속도대로 나답게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자유롭고 멋지고 아름답고 행복한 일인지 내 몸이, 내 가슴이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대신 그동안 내가 깨닫고 체득한 지혜를 잊지 않고 늘 들여다보자고, 내 안에 단단한 중심을 두며 살아가자고 약속했다. 더 이상 세상의 소음과 다른 사람들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꿋꿋이 나의 속도로 나아가자고, 때론 흔들리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게 지금 이 편안함을 잘 기억해두자고, 다짐했다.  






행복하고 편안한 속도 속에 드디어 나는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어렴풋이 방향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지나 있었고, 앞으로도 첫 책을 내기까지 어쩌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몰랐다.  


앞으로의 여정에 힘이 될 동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기만의 속도를 믿고 우직하게 자신만의 길을 나아간 멋진 동지가, 늦었다고 실망하지 않고 자기 꿈을 펼친 멋진 동지가. 3년째 홀로 걸어온 고단함 때문이었을까, 나도 모르게 내 곁에 힘을 나눌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때 내 시선이 책상 옆 책꽂이 한편에 놓인 어떤 책을 향했다. 구입 후 한 번도 읽지 않은 아인슈타인의 전기, 《아인슈타인: 삶과 우주》였다. 나는 이제 직감을 온전히 신뢰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꽤나 두꺼운 이 천재 물리학자의 전기를 어디 한 번 읽어 보기로 했다.  


자기만의 삶을 자기만의 속도로 살아냈던 그의 이야기는 내게 질투와 영감 그리고 예상치 못한 위로를 주었는데, 특히나 그의 유년기의 느린 성장에 관한 이야기가 내게 특별한 울림을 주었다.  


아인슈타인은 하녀조차 멍청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말을 아주 늦게 배웠다고 한다. 그의 늦은 언어 발달은 가족들을 몹시 걱정스럽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느림을 특별함으로 여겼던 것 같다. 세상의 구박에 굴하지 않고 천방지축이던 그의 성격이 더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훗날 아인슈타인은 보통사람들보다 느린 자신의 언어발달이 상대성이론을 찾아내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내가 어떻게 상대성 이론을 찾아낼 수 있었을까에 대해서 자문해보았는데, 그 답은 다음과 같은 환경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사람들은 공간과 시간의 문제에 대해서 절대 고민하지 않는다. 그런 문제는 아이들이나 생각하는 유치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장이 너무 느렸던 나는 충분히 성장한 후에야 비로소 공간과 시간에 대해서 궁금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보통 아이들보다 그 문제에 대해서 훨씬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 《아인슈타인: 삶과 우주》, p.31 


나 자신으로 살기에 너무 늦은 나이도, 너무 늦은 성장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자기 삶에 가장 어울리는 속도로 나아가는 사람만이 있을 뿐이지 않을까.  


아인슈타인이 노년에 한 이 말은 나의 느린 성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듯했다. 남들과 다른 속도로 성장하며 다른 속도로 어린 시절을 보낸 덕에 시간과 공감의 개념을 완전히 다르게 볼 수 있었다니, 나도 조금 더 늦어도 괜찮지 않을까. 나의 글쓰기가 느리게 성장하고 있다면 어쩌면 출판계의 상대성 이론을 발견하려는지도 모를 일이니까.  


나는 아인슈타인 할아버지를 내 친구 목록에 슬며시 추가했다. 내 긴긴 여정의 멋진 친구가 되어줄 것만 같았다. 나만 너무 늦은 건 아닐까 불안해질 때마다 다정한 친구의 말을 꺼내어 보자고, 그의 이야기를 나의 글창고 한쪽에 고이 넣어 두었다.  






나만의 길을 나의 속도대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완전한 믿음과 응원이 아닐까. 내 속도를 응원해줄 친구가 하나 늘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사실 나에게는 평생을 함께 해 온 친구가 있다는 걸. 돌아보니 언제부턴가 나는 나를 위로하고 응원하며 내가 나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힘을 북돋워주곤 했다. 언제나 내 곁에서 외롭고 지난한 여정을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는 나의 완벽한 친구는 다름 아닌 ‘나’였다.  


내가 완전한 내 편이 되어줄 때, 나의 모든 걸음을 진심으로 존중해줄 때, 그때 우리는 가장 안전하게 자기 삶을 펼쳐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도 끊임없이 크고 작은 고난이 찾아오겠지, 나는 나의 열렬한 응원이자 위로가 되어주고 싶었다. 지치고 힘든 순간에 내가 다시 힘을 낼 수 있도록, 용기를 잃지 않도록. 나는 내 편이 되어 나를 응원하자고, 온전히 내 길을 내 속도대로 걷는 나를 위해.  


그러고 보면 내가 나를 믿어준다는 건 참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디서 무얼 하든 든든한 응원군이 있다는 거니까! 온 마음 다해 내 속도를, 아니 나라는 존재 자체를 믿어주기로 했다. 내가 나로 걷는 걸음이 곧 내 속도이고 그걸로 충분하다는 믿음이 꽃피고 있었다. 나는 내 길을 내 속도로 걸어가면 그뿐이었다.  


남들과 똑같은 길을 가려고 하면 우리는 늘 늦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그 길을 먼저 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앞에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나만의 길을 가려는 사람에겐 세상의 속도도, 다른 이들의 속도도,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내 길은 나만 가는 것이고, 누구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니 그냥 내게 가장 편안한 속도로 나다운 걸음을 걸어가면 되지 않을까.  


나의 방향으로 나아가기만 한다면, 걷든, 뛰든, 잠시 멈춰 있든, 모두 다 있는 그대로 나의 속도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길 위에선 모두 다 내 속도이지 않을까 하고. 이제 더 이상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든 빠르든 그냥 내가 갈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가면 그게 정답이라고. 내가 내 길을 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점점 분명해졌다.  


내 가슴의 나침반을 따라 나아가고 있다면, 나는 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늦든 빠르든 모두 다 그냥 내 속도인 것이다. 더 빨리 가야 할 필요도 없고, 일부러 속도를 늦출 필요도 없이, 이렇게 내가 할 수 있는 편안한 속도대로 나아간다면 적당한 때에 내 꿈이 이뤄지리라는 기대감이 가득 찼다.  


이제 나는 믿고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내 가슴속 나침반이 향하는 곳으로.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내 길을 걷고 있으니 이제 더 이상 세상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겠다고, 지금 이대로의 나로도, 느릿느릿해 보이는 이대로의 속도로도 충분하다고, 이게 진짜 내 삶이고 내 속도라고, 되뇌면서. 무엇보다도, 내 속도를, 내 길을, 나 조은지를, 온전히 믿고 사랑하면서. 나는 가슴에 부푼 꿈을 안고 또다시 혼자만의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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