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도를 믿고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을 떨쳐내자 이내 내 속도로 걷는 즐거움이 찾아왔다. 완전한 평온함이었다. 나는 온전히 내 속도로 매일 조금씩 글을 써 나갔다. 차근차근 나의 속도를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은은하고 편안한 안정감이 나를 감싸고 있는 게 느껴졌다. 더 이상 초조하지도, 조급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정말로 나에게 어울리는 속도를 찾았다는 기쁨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이렇게 차근차근 나를 알아간다는 것이 참 소중한 행복이란 걸 예전엔 왜 미처 몰랐을까, 행복한 투정을 해보기도 했다.
내게 맞는 방향을 따라 내 속도대로 산다는 건 그 자체로 행복이었다. 내 속도에 맞게 매일 조금씩 글을 써나가는 건 참 평온하고도 행복했다. 나는 어렴풋이 진짜 행복에 대해 알아가고 있었다.
처음 꿈을 찾고 글을 쓰기 시작한 때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벌써 3년이 훌쩍 지나있었다.
‘휴, 3년이나 지났는데 이제 겨우 내가 쓰고 싶은 글의 방향을 찾은 게 전부네. 이게 내 속도란 말이지? 그래, 어쩔 수 없지. 이제부터 하나 둘 차곡차곡 써 나가는 수밖에.’
나는 컴퓨터를 켜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몇 시간 뒤 한 편의 글이 완성되었고, 완성된 글을 처음부터 읽어 내려가던 중, 그만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다.
처음이었다. 화면 속에는 내가 그렇게도 담고 싶었던 바로 그런 느낌과 생각이 오롯이 담긴 글이 쓰여있었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방향에 꼭 맞는 바로 그런 글이었다. 나는 멈춰있던 게 아니었다. 청춘, 봄의 시기에 나는 정말로 뿌리를 뻗고 있었던 것이다. 바깥이 아닌 안쪽으로. 그것도 아주 넓고 깊게.
그제야 내가 지난 3년 동안 뻗어 내린 뿌리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늘 바깥만 보느라 신경조차 쓰지 못했던 나의 수많은 뿌리들이. 늘 그 자리에 멈춘듯한 자그마한 새싹을 보며 마음을 졸인 적도 많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표면 위론 아직 싹을 틔운 수준이었지만, 나는 땅 밑으로, 흙을 뚫고 깊숙이 굵고 단단한 뿌리를 키워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 내가 그냥 멈춰 서 있지만은 않았구나. 그때의 안도감이란.
큰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을 만큼 뿌리는 넓고 깊게 사방으로 뻗어 자그마한 새싹을 단단히 받치고 있었다. 이 무성한 뿌리가 내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이제는 위로 줄기를 뻗고, 꽃을 피우고, 나만의 열매를 맺을 준비가 다 되었다고. 자신이 자라는 동안 보채지 않고 믿고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이제 우리 함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보자고.
괜스레 눈물이 고였다. 스스로를 채찍질했던 지난 3년, 주위의 우려와 걱정을 등지고 몰래 훔쳐야 했던 눈물들, 나 조차도 나를 믿지 못해 포기할까 싶던 숱한 순간들이 떠올랐기에. 밖에서 보기에 나는 3년 동안 이제 고작 제대로 된 글 한 편을 쓴 것일지 몰랐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글 한 편이 아니었다. 내 지난 3년을 완전히 인정하고 안아주는 희망의 표지였다. 내가 옳은 방향으로 잘 나아왔다고, 희망의 표지가 나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사실 나는 언젠가부터 글쓰기보다 명상을 하고, 마음에 관한 수많은 책들을 읽고, 고전을 공부하는 데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쏟고 있었다. 가슴이 이끄는 대로 하고 있으면서도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이게 과연 앞으로 내가 글을 쓰고 책을 내는 데 의미가 있을지, 사실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저 좋아서든 필요에 의해서든 낭비 같아 보이기도 한 그것들을 그냥 해오곤 했다.
그런데 이제 알 것 같았다. 낭비가 아닐까 불안해하면서도 마음 가는 대로 해왔던 모든 일들이 이렇게 깊고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는 데 자양분이 되어왔다는 것을. 내가 진심으로 했던 그 모든 일들이 깊고 넓은 뿌리가 되어 나를 엄청난 단단함으로 지지해주고 있었다. 내가 해왔던 모든 일들이 나의 마음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단단하게 만들었으며, 나아가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잘 이해하고 위로하여 단단하게 해 줄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앞으로 이 무성하고 단단한 뿌리들이 내 삶을 어떻게 지탱하고 얼마나 많은 잎과 열매를 맺게 해 줄 것인지,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짜릿함에 온 몸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고 보면 지금껏 내가 진심으로 해왔던 모든 것들은 어떤 식으로든 나를 성장시키고 지금의 내가 되는 데 나름의 기여를 하고 있었다. 너무나 좋아해서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던 만화책에서 처음으로 꿈과 사랑을 배웠고, 돈을 벌기 위해 했던 일에서도 치열하게 부딪혔기에 돈 이상의 인생의 지혜를 터득하기도 했었다. 이런 식으로 내가 진심으로 했던 모든 일들이 내 안에 어딘가에 쌓여 나를 조금씩 조금씩 나다운 모습으로 성장시켜주고 있었다.
이제는 분명해졌다. 내가 진심을 담아 해온 모든 일들이 나에게 좋은 양분이 되어준다는 것, 그래서 의식 하든 그렇지 않든 나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이 사실이 바로 내가 내 속도를 완전히 믿고 가슴이 이끄는 것들을 계속 해나가도 되는 이유라는 것까지.
우리 모두에게는 진심으로 행하는 태도를 통해 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 일 속에서 자신답게 해주는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멋진 능력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능력이 우리를 다양한 방면으로 끊임없이 성장시켜주는 것은 아닐까. 그게 바로 내가 이렇게 나다운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비밀일 것만 같았다.
그런 멋진 능력을 가졌다고 믿는 것만으로도 나는 안심하고 언제나 가슴이 원하는 것들을 덥석 덥석 해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내 안에는 무엇을 하든 그걸 통해 배우고 나답게 성장하는, 그런 멋진 능력이 있다고 믿기로 했다. 생각은 현실을 바꾸는 힘이 있으니까.
내가 그동안 뿌리를 내리며 안으로 성장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던 이유는 어느 과학자가 쓴 한 권의 책 덕분이기도 했다.
오로지 한 길만을 묵묵히 걸어온 여성 생물학자이자 지질학자이기도 한 호프 자런의 자전적 에세이, 《랩 걸》은 내게 수많은 영감을 선물하고 위로와 희망이 되어준 책이다. 주로 식물에 대한 연구를 하는 과학자의 에세이답게 이 책에는 다양한 식물들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나오곤 했는데, 그중에서도 글쓰기에 조금은 지쳐 있던 내게 참 많은 위로와 용기가 되었던 부분이 바로 이런 식물의 은밀한 성장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녀는 책을 통해 나무들이 열매를 맺지 않는 때에도 늘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나무로 태어나기 전인 씨앗들 조차도 자신의 때를 기다리며 자신이 세상에 피어날 수 있는 신호를 호시탐탐 기다리고 있다고.
열매를 맺는 일, 그러니까 외부에서 확인 가능한 성취를 이뤄야만 우리가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란 뜻이기도 했다. 나무들이 열매를 맺지 않는 시기에도 끊임없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뿌리를 깊게 뻗고 줄기를 두껍게 하고 그늘을 만드는 것처럼, 나 역시도 그에 버금가는 나름의 의미를 갖는 일들을 하고 있던 셈이었다. 나는 내면으로 뿌리를 더 깊고 넓게 뻗는 중이었고, 이제 막 줄기를 더 굵게 만들고 잎사귀를 키우려던 참이었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한 준비이기도 했지만, 그 과정들 자체로도 나는 성장하고 있는 중이었다.
열매를 맺는 일은 그 모든 과정들이 한데 모여 순간의 결과로 외부에 드러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나무가 열매를 맺기까지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굵게 뻗고 잎사귀를 펼치고 각종 벌레들과 싸우는 그 지난한 과정들 속에 있었다. 내가 지난 3년 간 해 온 일이 바로 그러한 과정들인 셈이었다. 그 모든 과정들이 내 안에서 어우러져 내 속도에 맞는 성장을 이뤄내고 있었던 것이다.
멈춰있는 것처럼 보였던 그 모든 순간에도 나는 나만의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라는 나무도 늘 무언가를 하며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무런 변화 없이 제자리에 멈춰만 있는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에게 필요한 성장을 하고 있는데 어쩌면 스스로만 자신의 성장을 보지 못하고 침울해하는 것은 아닐까.
나의 내면에 얼마나 많은 뿌리를 뻗어 내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나는 그동안 바깥에서만 성장의 증거를 찾고 있었던 셈이다. 사실 바깥에 보이는 성장은 내면의 성장이 자연스레 바깥에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