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디높았던 첫 계단을 넘어 훌쩍 성장한 덕분일까, 이제는 글 쓰는 게 예전만큼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나도 모르게 글을 쓰다 보면 어떻게 썼나 싶을 정도로 마음에 와 닿는 글들이 쓰여 있곤 했다. 물론 이제 단지 몇 편의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었고, 첫 책을 완성하기까지는 아직 수많은 계단을 넘어야 할 테지만 나에게는 지금 이만큼의 성장도 무척이나 기특하고 뿌듯했다. 어쨌거나 스스로의 힘으로 이뤄낸 정직한 성장이었으니까.
내가 너무나도 기쁘고 좋았던 점은 그동안 내가 내린 뿌리들이 정말로 나에게 어떤 에너지를 주고 있는 느낌을 받을 때였다. 나는 매일 글을 쓰는 시간 외에도 명상을 하고, 마음을 공부하고, 경전을 읽고, 산책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을 읽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오고 있었다. 이 일들은 지금껏 나의 뿌리를 성장시키는 데 큰 힘이 되어주었던 것들이다. 그런데 이제는 뿌리를 넘어 바깥으로, 내 글을 성장시키는 데에도 도움을 주기 시작하고 있었다.
명상을 하는 중에도, 마음을 돌아보는 중에도, 산책을 하는 중에도, 읽고 싶은 책을 읽는 중에도, 문득문득 글감이 떠오르거나 책을 쓰는 데 도움이 될만한 이런저런 영감이 찾아오곤 했다.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온통 글감이 널려 있었다. 그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억지로 써내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영감이 떠오르고 글이 쓰이는 게 신기했다.
아,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언제나 답이 있구나. 가슴이 이끄는 방향으로 나아가다 보면 늘 삶의 선물들이 놓여 있구나. 가슴이 이끄는 대로 사는 것, 그러니까 온전히 나로 살아가고 있음에 대한 보답으로 삶이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가슴의 끌림을 믿은 자에게 돌아오는 보너스 선물이랄까.
사실 나는 이제껏 억지로 글감을 찾아다니곤 했었다. 처음부터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막막했던 터라 늘 무엇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곤 했다. 그런데 아무리 고민하고 고민을 해봐도 원하는 것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어떻게 쓰고 싶은지 알아냈다 하더라도, 그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가면 좋을지, 어떤 내용들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갈지, 또다시 막막해지기 일쑤였다.
그런 까닭에 늘 인터넷이며, 서점이며 돌아다니며 끊임없이 자료를 찾고, 읽고 정리하고, 또다시 찾기를 반복하곤 했었다. 잘 쓰지 못하는 것보다 무얼 써야 할지 모르는 게 늘 막막하곤 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무얼 써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잘 쓸 수 없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나로 모아지는 생각을 할 수 없었으니 좋은 글이 써질 리 없었던 게 아닐까.
답이 내 안에 있는데 밖에서만 답을 찾으려 했으니 아무리 해도 나오지 않는 건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글감은 밖에 있지 않았다. 내 안에, 내 마음 안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내가 정말로 쓰고 싶은 것들이 무엇인지는.
그래서 특히나 명상을 하고 있을 때면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문장이나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했는데, 아마도 고요하게 온전히 나로 머무는 온전한 시간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온전히 내면 깊숙한 곳까지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그만큼 수많은 영감들이 내게 선물처럼 찾아왔던 게 아닐까.
내가 쓰고 있는 글을 보면 대부분의 주제들이 지금껏 내가 좋아서, 혹은 어떤 끌림에 의해서 진심으로 꾸준히 해오고 있는 것들이라는 게 점점 더 분명해졌다. 이를테면 명상이나 내 마음에 대한 공부가 그랬다. 그것들은 사실 글을 쓰기 위해서라기보다 나를 믿고 사랑하기 위해, 진심으로 행복해지기 위해 필연적으로 할 수밖에 없던 것들인데, 그런 일들이 지금 내게 영감이 되어 글의 소재가 되어주고 있었다. 오히려 일부러 찾아낸 소재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글들은 어딘가 맹숭맹숭하고 죽어있는 느낌이 들곤 했다. 아마도 나의 숨결이 불어넣어지지 않았던 것이겠지.
그래서 나는 점점 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꾸준하고 즐겁게 해 나갈 수 있었다. 진심으로 하기만 한다면야 나에게 안팎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단단해지고 있었다. 혹시나 시간낭비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의심을 품지 않아도 되는 것이 이렇게 삶에 자유를 줄 줄이야. 나는 전에 없이 행복한 기분으로 신나게 글을 썼다.
좋아서 그냥 했을 뿐인데 그 일을 통해 뜻밖의 선물을 받게 되는 건 정말이지 너무나 기분 좋은 경험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완벽히 나를 통해 이루어지는 이러한 선순환을 전체적으로 온전히 경험하는 것, 그리고 이때 느껴지는 짜릿한 쾌감은 정말이지 너무나 신비롭고 황홀했다. 나는 지금 내 삶을 통해 이루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나 만족스럽고 행복했다. 매일같이 수없이 많은 선물을 받고 있는데, 행복하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기도 했다.
이처럼 유쾌하고 다소 신비로운 과정은 점점 내 글쓰기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사실 그게 내 글쓰기 비법의 전부인 것 같기도 했다. 가슴이 끌리는 일을 진심으로 한다. 그러다 문득 영감이 떠오르면 글을 쓴다. 그게 전부였다. 내가 하는 일이라곤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놓치지 않고 즉시 메모해두거나 조금 더 생각을 확장시켜 정리해두는 정도였다. 그러면 나머지는 필요한 만큼 알아서 쓰이곤 했다. 어느샌가 손이 저절로 움직이며 빈 곳을 채우곤 했다. 억지로 쓰려하지 않아도 필요한 이야기들이 저절로 내 손을 움직여 쓰이는 느낌이랄까.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을 때에도, 그냥 문득문득 스쳐 지나가는 섬광 같은 아이디어나 문장들이 떠오르곤 했다. 일상 전반에 걸쳐 영감을 전달받을 수 있게 된 느낌이었다. 그렇게 영감이 떠오를 때면 나는 혹시나 잃어버릴 새라 황급히 노트를 펼치거나 휴대폰을 켜 메모해두곤 했다. 이렇게 찾아오는 영감은 날것의 생각이나 문장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 날것의 선물들을 잘 숙성해두었다가 알맞은 곳에 요긴하게 쓸 수 있겠다는 든든함에 쌓여가는 글 창고만 보고 있어도 배가 부르곤 했다.
물론 매번 이렇게 영감을 통해서만 글을 쓴 것은 아니었다. 사실 이건 정말 말 그대로 날것의 것을 보관하는 과정이라고 하는 편이 맞았다. 나는 이렇게 저장해 놓은 글 중에서 그때그때 가장 끌리는 것을 골라 긴 글로 변화시키곤 했다. 그렇다고 하루에 엄청나게 많은 글을 쓰거나 하지는 않았다. 때때로 영감이 폭발할 때는 물리적으로 정말 많은 양의 글을 토해내듯 쓰기도 했지만, 그런 일은 극히 드물었고, 문득문득 떠오르는 단편적인 생각들을 습작처럼 휘익 몰아쳐 쓰곤 했다.
어쨌거나 나는 특별히 조급함이나 불안한 마음 없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글을 쓰고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몸소 익혀나가고 있었다. 이처럼 조급함 없이 다소 느릿느릿 글을 쓰다 보면 정말이지 세상이 온통 글감들로 가득 차 있다고 느끼곤 했다.
산책도 내가 일상에서 즐겨하는 것 중 하나였다. 나는 매일같이 집 앞 숲길을 산책하곤 했다. 내 속도로 걷는 즐거움을 알게 해 준 바로 그 숲이었다. 숲은 내 속도로 걷는 나를, 내가 된 나를, 훨씬 더 다채롭고 풍성한 모습으로 맞이해주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바닥에 숨겨진 오래된 낙엽들, 그 사이를 비집고 고개를 내민 작디작은 들풀들, 그 옆에 작은 모래알 하나까지, 나는 점점 더 모든 것에 마음을 열고 호기심과 경외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럴 때면 내가 보고 있는 것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에게 흘러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그러면 나는 그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부지런히 손가락을 움직여 적어두곤 했다.
마음이 초조하고 조급했을 땐 주변에 이렇게 수많은 선물들이 가득하다는 것도 모른 채 늘 무얼 써야 하나 머리를 싸매곤 했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길을 나서기만 해도, 그저 주위를 둘러보기만 해도 곳곳에서 내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온다는 게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어쨌거나 이 모두가 내가 나인채로 머문 시간들이 내게 준 선물임이 틀림없었다.
이제는 내 안에서 글과 삶이 어느새 하나가 된 느낌이었다. 더 이상 무언가 억지로 한다는 느낌 없이 영감이 떠오르면 자연스레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나는 가슴이 이끄는 방향을 따라 그때그때 필요하고 알맞은 것들을 해나가면서 영감이라는 보너스 선물까지 받고 있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글과 하나 되어 나조차도 잊고 글을 쓰고 있을 때면 알 수 없는 충만함과 어떤 신비로운 기운이 나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느낌을 받곤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내 빛의 방향, 그러니까 가슴이 이끄는 방향과 일치되어 살기 시작하면서 점점 일상을 선물처럼 만들어주고 있었다. 내가 향하는 방향과 가슴이 빛을 비추는 방향이 일치할 때, 선물 같은 삶, 선물 같은 글이 내게 찾아오는 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며칠 뒤 어느 일요일 오후, 나는 BTS의 <LOVE YOURSELF 結 'Answer'> 앨범을 틀어놓은 채 창문을 통해 한가득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두 마리의 반려견과 함께 한가로이 침대 위를 뒹굴고 있었다. 한없이 여유롭게 강아지들과 장난을 치던 중 불현듯 꼭 쓰고 싶었던 내용의 책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나는 그 자리에서 노트를 펼쳐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책 한 권 분량의 목차와 대략적인 얼개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가장 어울리는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무언가에 홀린 듯 몇 시간 동안 꼼짝 않고 펜을 굴리며 이것저것 적어나갔다.
한참이 지난 뒤 고개를 돌려 창문을 보니 이미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몇 시간 동안 내가 정리한 것들을 보았다. 평소라면 한 달이 걸려도 쉽지 않았을 분량의 내용들이 노트 몇 페이지에 걸쳐 빼곡히 적혀 있었다.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를 와르르 쏟아낸 듯 무척이나 가볍고 개운했다.
생각해보니 진정한 나로 살지 못했을 때는 어딘지 모르게 정체되고 꽉 막힌 듯한 답답함을 느끼곤 했는데, 요즘 이렇게 가슴이 이끄는 방향을 따라 자연스레 나아가다 보니 순풍에 돛단배가 순항하듯이 더욱 속도를 낼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면 예전에 느끼던 답답함은 가슴의 방향과 반대로 향하면서 느꼈던 앞이 막힌듯한 느낌이지 않았을까.
문득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그 말을 인생에서는 속도보다 방향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식의 표면적인 의미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 말의 진짜 의미는 ‘방향이 속도를 이끈다’는 뜻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보니 정말로 방향이 속도를 이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의 나는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많은 글을 지치지도 않고 끊임없이 쓰고 있었다. 그동안 내 안에 쌓여왔던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내 열 손가락 끝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전에 열심히 공부하고 책을 읽고 겨우겨우 한 두 편의 글을 쓸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작업량이나 속도면에서 월등히 많고 빨랐다. 앞으로 나는 얼마나 더 많은 글을 쓰게 될까, 생각할 때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다.
정말이지 삶이 따스한 바람이 되어 내 등을 떠밀어주는 느낌이랄까. 이게 다 가슴이 이끄는 곳으로, 진정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덕분이었다. 이제 나는 정말로 조급해할 이유가 없었다. 그저 가슴의 방향을 믿고 편안히 노를 저어 나가면 그만이었다. 종종 강한 바람을 만나면 나는 금세 훌쩍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나는 그저 내 삶의 속도에 몸을 맡기고 아름다운 풍경들을 나만의 시선으로 온전히 즐기면 그만이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가슴을 신뢰하며 나아가는 것, 나로 살아가는 것, 그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