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년 동안 내면으로 엄청나게 깊고 넓은 뿌리를 뻗어왔다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이제는 그걸 바탕으로 책을 써야 할 차례였다. 본격적으로 작가로서, 글쓰기를 성장시킬 차례였다.
뿌리가 크다고 나무가 빨리 자라는 것은 아닌가 보다. 뿌리만 거대하게 성장시켜 온 탓에 내 줄기와 잎, 그러니까 글쓰기의 성장은 이제 걸음마 수준이었다. 나는 어떤 책을 쓰고 싶은지 방향성만 잡은 채 또 한동안 헤매고 있었다.
해야 할 게 많기도 했지만, 그전에 그냥 좀 막연한 부분이 있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것과 그걸 어떻게 한 권의 책으로 풀어낼지 안다는 것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얘기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저 멀리 반짝이는 북극성 하나만을 바라보며 손에는 펜 하나만을 든 채 무성한 숲 속을 헤쳐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나는 누군가 열심히 닦아놓은 고속도로 위를 차를 타고 달리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은 사실 아무도 가지 않은, 오직 나에게만 펼쳐진 풀과 나무가 무성한 숲과도 같았다. 지금 나는 이런 거친 숲 속을 두 발로 직접 걷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인생이라는 숲 속에서 무성한 수풀을 헤치며 나만의 길을 직접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었다.
막막한 게 당연했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당연했다. 오히려 질주할 수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걸지도 몰랐다. 거친 숲 속에서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보다는 바로 앞에 있는 수풀을 하나하나 조심히 헤쳐가며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게 지금 내가 글쓰기를 통해, 내 삶을 통해 하고 있는 일이었다. 나는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중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 더디 더디 걸었다. 때로는 크게 넘어지고 다쳐 한참을 주저앉아 있어야만 하기도 했었고, 한참을 달려가는 듯싶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우두커니 멈춰 서서 한참을 뒷걸음질 치기 일쑤였다. 그런데 그게 다 거친 숲 속을 헤쳐 나가는 중이었기 때문이라니. 안심이 되기도 하고, 그때 자꾸만 넘어지고 멈춰서는 나를 몰아세웠던 기억에 가슴이 아렸다.
내 길을 걷는다는 건 원래 막막하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며 그게 지극히 정상적인 속도라는 걸 왜 학교에서는 알려주지 않는 걸까. 왜 다들 무조건 빨리 가라고만 그렇게들 아우성인 걸까. 우리가 걷고 있는 모든 길들은 사실 우리 스스로도 직접 가보기 전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것일 텐데. 자기 길에 맞는 속도는 스스로 숲 속을 헤쳐나가며 찾아야만 하는 것일 텐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이제 막 새로운 일을 시작해놓고 너무 빠른 성장을 바라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나의 길을 간다는 건 아무도 간 적 없는 무성한 숲 속을 헤치며 가는 일. 처음이라면 더더욱 시간이 걸릴 수밖에. 그런데 스스로 말도 안 되게 너무 높은 기준을 세워놓고는 그걸 이루려고 말도 안 되는 지름길을 찾고 있었다니. 이제 막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렸을 뿐인데 매일매일 눈에 띌 만큼 성장하기를 바라는 건 너무나도 욕심 가득한 심보였다는 생각이 든다.
삼 년 전 내가 처음 쓰기 시작한 글들을 보면 멋만 잔뜩 들어가 있고 정말이지, 형편없었다. 글은 결과물이 바로 보이니 쓰면서도 내 실력은 왜 이럴까 자책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우연히 어딘가에서 들었던 상식적이고 당연한 한 마디가 내게 희망을 주었던 기억이 난다. ‘처음부터 잘 쓰려고 하지 마세요. 매일매일 꾸준히 쓰다 보면 잘 쓸 수 있어요.’
그때가 아마 글쓰기를 시작하고 육 개월쯤 되었을 때였나. 물론 난 매일 꾸준히 쓰지도 않았고, 다소 잘 쓰려고 애를 쓴 편이지만, 아마 그때부터 은연중에 내 느릿한 속도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렇게 삼 년이 지나 신기하게도 나는 어떤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얼마 전 그동안 넓고 깊게 자란 나의 뿌리를 확인하게 해 준 한 편의 글에서 보았던 것처럼. 정말로 내면의 성장이 밖으로도 표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글쓰기에 중요한 것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많이 쓰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내면에서 자기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기만의 목소리로 풀어내는 방법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시간이 훨씬 더 중요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시간들이 나에게 있어 숲 속을 모험하기 위한 기초체력을 기르는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 이론 책들을 보다 보면 모든 성장은 겉보기에 계단식으로 진행된다고 하는데, 정말 내 글쓰기의 성장이 그랬다. 나는 맨 앞에 놓인 엄청나게 큰 계단을 하나 올라온 셈이었다. 누구에게나 이 첫 번째 계단이 가장 높고 어려운 고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앞으로도 크고 작은 계단들을 계속 올라야 하겠지만, 이 첫 계단을 넘어온 힘으로 나는 앞으로 펼쳐 칠 나만의 멋진 여정을 계속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어찌 보면 나는 삼 년 전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가 아니라 대학을 졸업할 무렵부터, 나의 길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이 거친 숲 속에 들어섰다는 생각이 든다. 수풀을 헤쳐 가다 보면 보이지 않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거친 나뭇가지에 상처를 입기도 하고, 때로는 뱀이나 야생동물의 습격을 받기도 한다. 내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겪었던 모든 일들이 전부 다 내 삶이라는 거대하고 무성한 숲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일들이었던 것이다.
나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을 겪을 때마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인지 신을 원망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자신만의 북극성을 따라 자신만의 여정을 시작한 모든 이들에게 일어나는 거친 숲이 선물하는 모험이라고 하는 편이 맞았다. 왜냐하면 그런 경험들이 지금의 단단하고 강인한 내가 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지혜와 힘을 선물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거친 숲의 모험들 덕분에 차 안에서 편안히 달릴 줄만 알던 연약한 소녀가 이제는 스스로 수풀을 헤치며 자기 길을 만들어 가는 여행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짐작할 수 있었다. 내 글쓰기의 여정 역시 내 삶의 여정과 비슷하게 거친 수풀을 헤쳐가는 과정이 될 것이라는 것을. 글쓰기 역시 내 삶의 일부이니 어쩌면 당연한 얘기인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글쓰기라는 숲, 작가로서의 여정이 내게 선물할 다양한 장애물과 모험을 오롯이 감내하고 더디더라도 우직하게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호젓한 마음가짐이었다. 그러한 태도와 마음가짐만이 나를 진정한 여행자로, 진정한 작가로 성장시켜줄 수 있을 터였다.
그러고 보니 나는 삼 년 전 단지 글을 쓰기 시작한 것만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내 안의 진정한 나를 찾아 나서는 여정을 시작한 셈이었다. 이 여정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여정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나는 지난 삼 년 동안 진짜 나를 만나기 위한 소중한 여정 중에 있었던 셈이었다.
돌아보면 나의 내면으로 향하는 이 소중한 여정에서 나는 언제나 매 순간 충실했고, 종종 꽤나 치열했으며 때로는 한없이 느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들 속에서 나는 언제나 내 안 깊은 곳의 진짜 나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잠시 흔들리고 비틀거리긴 했지만 언제나 나는 다시 나에게로 향해 나아왔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렇게 나답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가슴의 이끌림을 따라 자연스레 내면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건 생각하면 할수록 행운이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내면을 단단하게 성장시키지 못한 채 바깥으로만 너무 커버렸다면 아마 나는 스스로를 버티지 못하고 금세 쓰러져버리고 말았겠지. 뿌리가 빈약한 아름드리나무가 강한 바람 한 번에 풀썩 쓰러져버리는 것처럼. 하지만 나는 너무나 운 좋게도 바깥으로 울창해지는 대신 먼저 땅 밑으로, 나의 가장 깊은 곳으로 뻗어나가기를 선택할 수 있었다.
자신만이 갈 수 있는 길을 찾아 첫 발을 내디딘 모든 여행자들은 필연적으로 내면으로의 여정을 함께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내면의 여정이 동반되지 않는 여행은 사실 진정한 꿈의 여정이라고 말할 수 없을 테니까. 우리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언제나 내면의 경험이고 내면의 성장일 테니까.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인생이라는 유일한 길 위에 선 여행자이기도 하다. 우리는 스스로 인식 하든 그렇지 않든 늘 내면의 여정을 함께 하고 있다. 그러다 자신에게 꼭 알맞은 때에 이 놀라운 여정에 불쑥 발 딛게 된다. 이미 발을 들이게 된 이상 절대로 피할 수는 없다. 그냥 온 마음 다해 제대로 겪어낼 수밖에 없다. 피한다고 피해지는 성격의 여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는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고 싶은 근원적인 소망이 늘 우리의 가슴을 두드리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찾아오는 이 소중한 내면 여정의 시기를 오롯이 자신의 속도로 지나와야만, 그때 축적한 마음의 힘으로 앞으로의 바깥의 여정 또한 무사히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이 초반의 여정을 잘 해낼수록 진정한 자신의 모습으로 삶을 보다 더 아름답고 눈부시게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자신을 보다 더 사랑하고 감사하며 행복한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