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목격자로 존재해보기

by 최서연


명상이 잘 되지 않아서,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애쓰는 며칠째의 기록.






내가 알아채기도 전에 재빨리 에고가 발동해서 내가 겪고 있는 수많은 일들에 대해서 판단과 평가를 내린다. 그리고 거기에서는 부산물처럼 감정이 떨어진다. 나는 나에게 떨어진 감정을 어찌할 줄 몰라 휘둘리고 있다.


이제 그것을 알아챌 수 있다면, 알아채고 있다면 그래도 한걸음 걸어 나온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늦은 건 마찬가지. 이미 발동해 버린 에고와 감정이 먼저고 내가 알아챈 것은 그다음이니까.







나의 목격자로 존재해보자.


그러면서 또 나를 판단, 평가하면 안 되겠지. 나를 부리고 있는 내 생각과 마음, 즉 에고가 자기 일을 해서 나오고 있는 생각과 감정을 그냥 관찰한다. 에고는 나쁜 것이라기보다는 자기 나름대로의 할 일을 열심히 하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에고에 너무 휘둘려버리지 않기 위해서,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나도 내 할 일을 해야겠지.




목격자의 존재를 인식하자



에고가 즉 나인 줄 알고, 에고에 온갖 힘을 부여하지 말고 목격자의 존재를 인식하자. 나를 관찰하고 있는 나라는 목격자. 에고는 내가 아니다. 마음도 내가 아니다. 생각도 내가 아니다.




무심의 틈새


명상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연습이라면, 그냥 생각 없이 멍 때리는 것과 많이 다른 것일까? 말은 멍 때린다고 하지만 그 순간에 우리는 수 없는 생각 회로를 돌리고 있으니까, 그래서 그건 명상이 아닌 거고 만약 아무 생각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라면 명상이랑 같은 상태일까?


이는 내가 명상을 배우면서 궁금해했던 부분이다.


명상은 멍 때리는, 의식이 없는, 무아의 상태가 아닌 또렷이 깨어있고, 충만한 상태. 하지만 고요하고 평화로운 무심의 틈새이다. 무심의 틈새. 현재에 온전히 서 있다면 사실 나는 과거로 되돌아갈 필요도, 미래로 먼저 가서 걱정할 필요도 없이, 그냥 현재의 평온함에 집중할 수 있겠지.






똑같은 플로우를 3세트 반복하면서 나는 1세트 했을 때의 내가 아니고, 아직 하지도 않은 3세트로 가서 먼저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냥, 여기, 현재. 내 숨과 감각에 집중하기.


잘 알고 있지만 항상 어려운 것이다. 사실 어제 요가 수업을 갔을 때는 즐거움보다는 아 힘들어, 아 오늘따라 너무 하기 싫다, 왜 이렇게 피곤하지, 이런 생각들이 많이 들었다.


“아 힘들어. 아 불편해. 아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


모든 것은 나를 도우러 온 것. 내가 여기서 무엇을 보고 넘어가야 하는가를 생각하자. 고차원의 의식은 신내림과 같은 깨달음이 아니라, 의식의 전환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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