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서연 Sep 07. 2020

먹은 건 똑같은데 쓴다고 달라지나요?

필라테스 강사의 식단 일기

  



20살 때부터 필라테스 강사인 지금까지 웬만한 다이어트는 다 해봤다.




유일하게 안 해본 것이 있다면 식단 일기를 쓰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먹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나도 모르게 과자나 초콜릿을 집어먹지도 않았고, 내가 좋아하는 건 삼시 세 끼의 든든한 밥이었다.



필라테스 강사로 일하고 나서부터는 더더욱 내가 먹는 것에 신경이 쓰였고, 건강한 음식들로 하루의 끼니를 채우려고 했기 때문에 따로 적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침저녁으로 무리하게 수업을 많이 한지 6개월이 지나고 나는 6킬로 정도가 쪄있었다. 헉.


근육량이 많으니 몸무게는 그렇다 치고 배가 너무 많이 나온 것이다.


피곤해서 저녁 수업이 끝나고 집에 와서 밤마다 먹었던 안동찜닭 때문일까.


(찜닭은 단백질 아니냐고!?)







대책이 필요한데 대책은 또 없었다.




필라테스 강사가 되기 훨씬 이전부터 나는 섭생에 관한 관심이 많았고, 궁금한 것은 무조건 책을 파는 습관이 있다. 식단 관련한 책들을 많이 읽었고, 꼭 다이어트를 위한 것이 아닌 책들도 내 책장의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다이어트에 관한 웬만한 상식은 다 알고 있었는데 어떠한 방법도 나의 해결책이 되어주지 못했다.



이른 아침에 수업하고, 낮에는 수업 준비. 다시 저녁 10시까지 수업을 해야 하니까 에너지 소모가 가장 큰 저녁 연강 이후에 공복으로 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수업 전에 식사를 하면 속이 더부룩해서 수업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공복으로 아침 수업을 하고, 활동량이 적은 낮에 첫 끼를 가볍게 먹고, 수업이 모두 끝난 후에 집에 와서 늦은 저녁을 든든하게 먹었는데,


여기서 무슨 식사량을 더 줄일 수 있단 말인가!?






어쨌든 생활 패턴도 그렇고, 남산만 한 배도 그렇고 비상 신호가 깜빡이고 있어서 나는 어떻게든 대책을 세워야 했다.





‘눔’이라는 어플을 구독하다




식단과 운동량을 체크해주고 건강 정보를 발송해주는 서비스를 구독하고 식단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영양사님이 해주는 식단에 대한 피드백도, 발송해 주는 건강 정보도 내가 알고 있는 선이거나 내 생활 패턴에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어쨌든 나는 내가 얼마나 먹고 있는지에 대한 기록을 꾸준히 하는 것에 의의를 뒀다.



처음에 이 어플을 구독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일 식단을 기록하면 머니백을 해주는데 그게 은근한 강제성으로 다가와서 의미 없다고 생각하던 식단 기록을 초반에는 꽤나 열심히 했다는 것이다.


(어차피 결제한 돈인데 몇천 원이라도 돌려받는다고  어디서 그런 의욕이 나오는지)







참고로 나는 칼로리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냥 음식을 나타내는 수많은 정보 중의 한 가지로 생각한다. 당연히 칼로리 계산해서 먹고 운동하고 움직이면 살은 빠진다.


예를 들어 나의 기초대사량이 1300칼로리라고 할 때 하루에 1200칼로리만큼의 아이스크림만 먹는다면 살은 빠진다.


근데 내 몸에서의 대사가 과연, 1300칼로리 이상의 건강한 식사를 했을 때와 같을까?


칼로리에 강박을 느끼는 순간 당신은 지옥문을 열어버린 것이니 웬만하면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칼로리 말고도 우리가 먹는 음식에는 수많은 정보가 있다.




원재료, 영양성분, 1회 제공량당 함량, 성인 기준 영양소 기준치, GI지수, 다이어트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탄수화물의 비율, 당류는 얼마인지, 당질은 얼마인지,* 등등등


(*당질+식이섬유=탄수화물/

즉, 탄수화물-식이섬유=‘당질’은 순수히 살이 되는 성분으로 생각하고, 당류는 당질보다 좀 더 작은 단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어떤 사람은 칼로리는 어쩔 수 없는 절대기준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또 칼로리는 됐고 GI 지수가 중요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저탄 고지라고 하고.


다 맞는 말이다.

다 근거가 있으니까 하는 말이고, 책으로 나와있는 다이어트 상식들도 논문에 기초해서 쓰인 경우가 많다.


그럼 누구 말이 맞는 거야?





나의 결론은 ‘나의 지금 생활 패턴과 환경에서 너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




목초를 먹인 소의 무염버터와 싱싱한 원두로 만든 방탄 커피로 아침을 든든하게 시작하고.

아보카도와 목초를 먹인 소고기와 양고기로 구성된 식단으로 점심을 먹고.

저녁에는 좋은 목장에서 방목한 닭이 낳은 건강한 달걀과 다양한 종류의 유기농 야채, 버진 엑스트라 올리브 오일을 챙겨 먹을 수 있다면야, 얼마나 좋겠냐만은.


당장 점심시간 조금만 지나도 스타벅스에 샌드위치가 하나도 안 남아있어서 뭘 먹을지 모르겠는데

저런 걸 어떻게 챙겨 먹냐고요.


(예전에 회사를 다니면서 주 3회 피티 받고, 일주일 내내 헬스장 가서 운동하고, 삼시 세 끼를 다! 간식까지! 도시락 싸다니면서 한 달 반 동안 체지방만 6킬로를 뺀 적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는 또 다음 기회에 풀도록 할게요.

다만 피티 선생님도 저한테 진짜 독한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독한 인간이니까 똑같이 하려고 하지는 않으셔도 됩니다^^)






다시 어플로 돌아가서! 나는 그간 칼로리에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이 ‘눔’이라는 어플의 절대 수치는 총 칼로리였다.


그래서 나는 그간 소홀히 하던 수치에 대한 의식을 조금은 깨울 수 있었다.


‘아, 내가 먹고 있는 게 생각보다 칼로리가 많구나?’


정도의 인식. (이게 강박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그리고 그 이상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아서 그냥 혼자 다이어리 쓰듯이 식단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노트에 뭔가를 쓰거나, 스티커를 붙이고, 꾸미고 이런 것들을 좋아해서 재미를 붙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뭘 먹었는지를 기록했다.



간식을 먹게 되면 간식도 기록했고. 점점 나의 식사 패턴이 눈에 보였다. 제대로 된 끼니 2번과 간식 1회 또는 2회 일 때 가장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냈다.


며칠 습관이 되니 생각지 못하게 폭식을 하거나 야식을 하게 되는 날이 생겼고,

‘아 속이 너무 더부룩한데 이건 먹지 말걸 그랬다, 좀 덜 먹을걸 그랬다, 디저트까지는 안 먹어도 될뻔했다’ 등의 꼭 따리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좀 더 쓰다 보니 내가 뭔가를 먹을까 말까 할 때

억지로 ‘참아야지 으으으으’가 아니라

(이러면 진짜 꼭 나중에 폭식하게 됨)


내가 전에 비슷한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떤 선택을 했었는지, 그래서 어떤 기분이었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쌓였다.


같은 상황에서 먹는 쪽을 선택했을 때와, 먹지 않는 쪽을 선택했을 때의 감정을 비교해서 나는 어렵지 않게 나에게 좀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었다.


(항상 안 먹는 선택을 했다는 게 아닙니다! 먹더라도 마음 편히 적당히 먹을 수 있는 선택을 하거나, 먹지 않더라도 스트레스에 의한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이왕 열심히 쓰는 거 조금 더 효과적으로 이용을 해볼까 싶어서 그냥 그날의 기록과 기분을 적는 것을 넘어서 주말이면 내 식단에 대한 피드백을 혼자서 해봤다.



나의 피드백의 주된 사항은 이것이었다


단백질을 얼마나 먹었는가

야채나 식이섬유를 얼마나 먹었는가


하루에 먹는 것을 생각해보면 거의다 탄수화물 아니면 지방일 것이다.


내가 회원님들께 단백질 챙겨 먹으라고 말씀드리면 계란 하나 먹었다고 하시는데,


위에 내가 독하게 식단을 했을 시절에 아침저녁으로 삶은 계란 흰자를 5개씩 먹고, 점심엔 닭가슴살 100g을 먹었는데, 계란 하나라니요?


(삶은 계란 1개 기준 단백질 함량: 6.5g / 한국인 하루 권장 섭취량은 몸무게 1kg 당 1g /운동이나 다이어트 시에는 1kg 1.5~2g 권장.


개인적인 생각으로 권장 섭취량은 최소 기준인 것 같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60kg 성인 기준, 계란으로 다 채운다고 했을 때 약 9.2개 정도의 계란을 먹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한 끼에 적어도 3개.


한 끼당 삶은 계란 3개만큼의 단백질을 드시고 계신가요? 닭가슴살 샐러드에 들어있는 새 모이보다도 적어 보이는 닭가슴살 몇 조각으로 한 끼의 단백질을 채웠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어쨌든 내가 챙겨 먹는다고 생각해도 생각보다 단백질 섭취량이 엄청 적다는 것이다.


이걸 30%까지만 늘려도 몸의 변화가 생길 것이다!


(내가 먹는 것의 30%를 단백질로 채우라는 것이지 30%를 더 먹어서 130%을 만들라는 의미는 아닙니닼ㅋㅋㅋㅋ)



그리고 마카롱이나 케이크 같은 건 내가 챙기지 않아도 자연히 커피와 함께 ‘꾸준히’ 먹게 되는데

야채나 식이섬유 과일 같은 것 들은 신경 쓰지 않으면 챙겨 먹지 않는 것 같아서 함께 체크했다.






그리고 식단일기를 꾸준히 쓰면서 2020년의 상반기를 보낸 결과,

나는 7킬로를 감량하고

올해의 목표였던 바디 프로필도 찍었다!







매일 쓰는 일기의 영향력은 정말 엄청나다.




하루하루 쓸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내 생활 패턴을 어느 정도 규칙적으로 잡아주고,

내가 이런 식사를 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도 기록해서,


그냥 지나치고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는 다른 선택을 하게끔 해준다.


어떤 식사를 했는지를 적다 보면,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를 기록하게 되고,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기억하게 된다.





기록하는 것은 분명 다음에 더 나은 선택을 하게끔 해준다.




요즘에는 패턴이 익숙해져서 식단 일기를 쓰지는 않는다.


하지만 살다가 너무 피곤하거나, 예상치 못한 환경 변화로 인해서 또 비상등이 켜지면


나는 식단일기를 가장 먼저 쓸 것이다.











일상의 순간에서 잡은 글의 조각들을 담았습니다.

별게 아닐 수도, 별거 일수도 있는.


한방에 해결해주는 마법약을 저는 찾지 못했습니다.

인간관계도, 다이어트도, 사랑도, 내 일상의 평온함도.


-<소복한 햇살> 프롤로그 중




최서연 | 세번째 독립출판물 | 사진에세이 <소복한 햇살>

매거진의 이전글 살 빼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