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만 유독 힘들고 어려운 동작이 있습니다
저는 5년 차 필라테스 강사입니다. 아침저녁으로 그룹 수업과 개인 수업을 하고, 개인적으로 클래식 필라테스 레슨을 받으며 수련하고, 해부학과 운동 과학도 틈틈이 공부하고, 브런치에 필라테스 매거진도 연재하면서 어느새 15만 독자님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어요.
저의 체형이 완전히 이상적인 상태는 아니지만, 체형상 잘 못하는 동작들도 꽤 잘하는 편입니다. 또 강사 레슨을 받을 때는 ‘인터미디어’라는 꽤 난이도가 있는 레벨로 레슨을 받고 있는데 그럼에도 제가 유독 못하는 동작이 있습니다. 필라테스의 꽃이라고 불리는 ‘티저’라는 동작이에요.
사진에 있는 티저는 ‘비기너’ 단계의 티저인데도 저는 이 동작이 너무 힘들고 잘 안될 때가 많아요. 레슨 해주시는 강사님께서 다른 동작은 다 인터 레벨인데 이 동작을 할 때만 다른 사람 같다는 말하셨어요. 몸은 인터인데 비기너에 있으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나는 왜 티저를 못할까?’ 운동도 꽤 잘하는 편이고, 다른 동작들은 더 높은 레벨로 하고, 몸이 안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나만 유독 못하는 동작, 나에게만 유독 힘들고 안 되는 동작. 그게 내 마음에도 비슷하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삶을 살아가면서 내 마음이 참 많은 일을 합니다. 매일의 루틴을 지키기도 하고, 즐거움도 찾고, 양보도 하고, 배려도 하고, 주장도 하고, 거절도 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관계도 맺고, 두렵지만 마음을 먼저 표현하기도 하고, 싫어하는 사람에게 애써 웃어 보이기도 하면서 많은 동작들을 하고 있잖아요. 근데 그중에서 나에게 유독 힘든 것들이 있지 않나요? 다른 사람들은 꽤나 잘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데 말이에요.
필라테스의 모든 동작은 전신 운동이고, 전신의 모든 근육들이 협응 하면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과정입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티저도 그냥 특정 근육만 잘 쓴다고 해서, 단지 유연하기만 해서, 단지 힘이 세다고 해서 해낼 수 있는 동작은 아니에요. 코어를 중심으로 다리를 길고 탄탄히 뻗는 힘과 몸통을 접는 힘이 있어야 하고, 몸통 뒷면의 근육들이 그에 맞게 늘어나 주어야 할 수 있는 동작이죠. 게다가 다리에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팔과 다리가 서로 밀고 당기며 팽팽히 저항하는 힘을 가지고 버티면서도, 어깨가 으쓱해서 상승모근이 과하게 쓰이지 않게 등도 끌어내려야 하죠. 동시에 척추도 길게 늘이고 넘어지지 않게 중심도 잡아야 합니다.
이 동작 하나에도 쓰여야 하는 움직임과, 신경 써야 하는 근육들, 협응 해야 하는 힘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래서 필라테스에서 모든 동작을 자유롭게 해낼 수 있는 게, 꼭 마음이 자유롭게 다양한 동작들을 해내면서 삶을 살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일도 잘하고 있고, 틈틈이 글도 쓰고, 내 운동도 하고, 잘하는 것들도 있지만 유독 바보처럼 못하는 일들이 있어요. 인간관계라던가, 적절한 때에 하는 부드러운 거절이라던가, 싫다는 표현, 부정적인 면을 받아들이는 것, 내가 힘들거나 아픈 것을 너무 늦지 않게 이야기하는 것 등등. 적절하게 필요할 때 과도한 힘을 들이지 않고 제때제때 해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내 몸이 자유롭게 모든 움직임을 해낼 수 있는 것처럼, 내 마음도 삶도 그렇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몸에 대입해서 생각했을 때, 내가 티저 동작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일단 몸통을 반으로 접는 가장 핵심적인 움직임, 그 움직임을 만들어 주는 고관절이 잘 기능해주어야 하겠죠. 그리고 뒤에 있는 근육들도 그만큼 잘 늘어나 줘야 합니다. 팔꿈치를 상상해보세요. 내가 팔을 접으려고 힘을 열심히 주었는데, 뒤에 있는 근육들이 하나도 늘어나 주지 않고 버틴다면 나는 과하게 큰 힘을 써서 힘겹게 팔꿈치를 접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몸은 뒷면이 유연한 만큼 앞면이 강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니까요.
내 몸의 고관절을 접는 것이 마음의 동작으로 보면 꼭 인간관계를 맺는 것 같아요. 제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 저는 다리를 쫙 펴고 허리를 세우는 자세가 강사로 일하는 몇 년 동안이나 잘 안되고 힘들었거든요. 몸을 반으로 접는 가장 크고 핵심적인 움직임이 사람이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과 대응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뒷면의 햄스트링이나 둔근이 그렇게 많이 타이트하지도 않은 편인데, 고관절을 접는 것이 유독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그럼 첫 번째 이유는 고관절의 수축성 운동이 기능적으로 잘 안 되는 것.
근데 사실 우리 몸이 작동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어떤 동작에서 어떤 근육을 동원하든 코어의 힘이 잘 형성되어 있다면요, 특정 근육이 과도하게 힘을 쓸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저는 티저를 할 때 고관절이 과도하게 긴장하고 힘을 쓰고 있어서 힘들어지는데요, 사실 근육들이 긴장하고 과도하게 사용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겁이 나서 그렇거나, 그게 습관이 되어서 그렇거나, 계속 안 좋은 자세에서 버티면서 무리해서 그렇거나. (이것도 꼭 내 마음의 방어기제 같지 않나요?)
어쨌든 그렇다면 두 번째 이유는 코어 근육이 (다른 동작을 하기에는 괜찮지만) 티저를 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이구나.
그렇다면 내 마음의 코어 근육은 무엇일까? 그게 건강하게 강해진다면 내가 어려워하는 삶의 동작들도 엄청 손쉽게는 아니더라도, 과도하게 긴장하지 않고, 겁내지 않고, 고통스러워하지 않고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고민들로부터 이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