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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연 Jul 09. 2022

마음의 코어 근육은 어떤 기능이 있을까?

고유수용성 감각, 몸과 마음의 GPS


지난 글에서 마음에 코어 근육이 있다면 몸의 코어 근육처럼, 흔들리는 순간이 있더라도 이내 균형을 찾는 것이 가능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죠. 계속해서 내 몸을 자세히 살펴보며 마음에도 이런 기능과 감각이 있지 않을까 하고 대응시켜보려고 합니다.


혹시 ‘고유수용성 감각’이라고 들어보셨나요? 간단히 이야기하면 이 공간에서 내 몸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인지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내 신체가 어디로 움직이고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를 느끼는 감각입니다. 균형을 잡는 데에도 이 고유수용성 감각이 참 중요하게 쓰입니다. 내 몸이 어디에 있고 어디로 기울어지는지를 정확히 느낄 수 있어야 흔들리고 넘어지려는 순간에 반대되는 힘을 써서 넘어지지 않게 잡아줄 수 있을 테니까요. 내 몸의 GPS와 같은 감각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내가 얼마나 내 몸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지 간단한 테스트를 해볼까요? 눈을 감고, 나의 오른손 검지로 나의 오른쪽 발 네 번째 발가락을 정확히 짚어보세요!


생각보다 쉽지 않죠?


나는 내 몸이 어디에 어떤 자세로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필라테스를 가르치다 보면 회원님들이 인지하고 있는 내 몸의 상태와 실제가 생각보다 많이 차이 날 때가 많아요. 그럴 때면 ‘거울을 통해서 한번 볼까요?’ 하고 확인시켜드리기도 하는데요. 본인이 생각한 것보다 많이 구부러져 있거나, 많이 기울어져 있어서 놀라실 때가 많습니다.



내 몸을 정확히 인지하는 감각이, 마음에 대응해보면 ‘자기 객관화’가 아닐까요? 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자기 객관화는 비난 조의 자기 객관화가 아닙니다. 저는 죄책감을 많이 느끼기도 하고, 저를 많이 탓하고 낮추는 경향이 있어요. 마음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단어인데요, ‘셀프 가스 라이팅’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저는 이 단어를 듣자마자 머리가 띵한 기분이었어요. 제가 제 자신에게 모질고 박하게 대하니까, 또 저를 그렇게 대하는 사람들이 저에게 끌려오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자기 객관화의 뉘앙스는요, ‘너 자신을 냉철한 눈으로 정확히 평가해봐!’가 아니라 ‘내 마음이 지금 어디에, 어떤 상태로 있는지 잘 느끼고,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도 알아보자!’에 더 가깝습니다. (미묘한 차이지만 꼭 느껴주세요:)


예를 들면 제가 수업을 할 때 ‘회원님이 지금 어떤 자세를 하고 있는지 똑바로 보세요! 얼마나 잘못된 자세인지, 우리가 목표로 한 이상적인 자세에서 얼마나 많이 벗어나 있는 건지 보시라고요!’라고 말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회원님들도 그렇고, 친구들에게도 그렇고, 타인에게 이렇게 모진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면 생각만 해도 ‘헉’ 하는데, 저에게는 참 쉽게도 해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마음의 자기 객관화, 고유수용성 감각은 나의 좋은 점도 충분히 인정하고, 지금 잘하고 있는 것들과, 해나가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충분히 알아주는 것. 또 나의 나쁜 점이나 부족한 점도 수치스러워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제가 해온 것들을 잘 인정하고, 칭찬하고, 잘했다고 생각해주지 못합니다. 가끔은 말이라도 그렇게 해보기도 하지만 사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적이 많아요. 남들이 하는 칭찬도 다 빈말이나 예의 상하는 말, 으레 하는 얘기라고 치부해버리곤 했고요. 반대로 다른 사람들이 하는 정말 작은 비난들까지 다 챙겨 맞는 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비난도 아닌 조금 날카롭고 까칠한 말들까지, 그냥 지나가버리면 그만일 장난 조의 비난들까지도 다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비난에는 감각이 엄청 발달해있고, 칭찬에는 엄청 둔감하죠. 그래서 저와 비슷한 성향을 가지신 분들에게는 자기가 잘하고 있는 것을 인정하고, 봐주는 감각이 조금 더 필요하겠죠?


제가 이와 관련된 몸의 신기한 지도를 보여 드릴게요


homoculus



 그림은 사람의 감각이 발달되어있는 정도로 그린 신체 지도입니다. 우리는 입과 눈과 코와 손과 우리가 자주 쓰는 감각들에 대해서는 엄청 민감하고 예민합니다. 반대로 내가  쓰지 않는 팔꿈치라던가, 그런 부분들은 엄청 작게 그려져 있죠? 감각도 떨어지고  느끼지도 못하는 부분들이죠. 아마 우리 마음도 이렇게 사람마다 다르게 생기지 않았을까요? 어떤 부분들은 유난히도 발달하다 못해 과활성화되어 있어서 저처럼 그냥 스쳐 지나가도  말들까지  챙겨 맞아 버린다거나, 어떤 부분들은 너무 둔감하고 퇴화되어버려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지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죠. 그래서  마음에 이런 부분들을 챙겨봐 주는 ! 그게 진짜 마음의 고유 수용 감각이 아닐까 해요. 그래야 내가 과활성화된 비난 감각으로 나를 너무 비난하지도 않고, 둔감해진 칭찬 감각으로  칭찬은 받아들일 줄도 모르고  줄도 모르는 마음이 되어버리지 않도록이요.


놀랍게도 고유 수용 감각은 자기 수용 감각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해요. 저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수용하라는 말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었는데, 내 몸이 어디 있는지를 인지하듯이 나 자신도 그렇게 인지하고 알면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좀 덜 어려워진 기분이 듭니다.


그럼에도 나 자신을 칭찬하고 인정하기란 참 쉽지 않잖아요. 아니, 자연스럽게 되는 거였으면, 그렇게 한다고 되는 거였으면 벌써 그렇게 했겠지. 이건 마치 필라테스 선생님이 엄청 어려운 동작을 알려주면서 ‘올라오면 돼요.’ 혹은 ‘이렇게 움직이면 돼요.’라고 말하는 거랑 똑같잖아요? 안되는걸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요 슨생님.




유독 어떤 부분의 움직임이 하나도 안 되는 분들이 있어요. 이렇게도 알려주고, 저렇게도 해봐도 나무토막처럼 빳빳하게 굳어있죠. 이건 하려는데 안 되는 게 아니고요, 아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상태예요. 그게 그 사람도 하고 싶은데 정말 할 줄을 모르는 거예요. 감각이 너무 떨어졌기 때문에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도 모르고, 내가 여기서 저 상태를 만들려면 어떤 근육을 써서 어떤 움직임으로 어떤 힘의 방향을 써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는 상태인 거죠.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말 감각이 너무 떨어져서 도저히 할 수가 없는 상태일 때. 그럴 때는 그 주변의 근육들을 다른 감각자극으로라도 깨워줍니다. 폼롤러를 하든, 시각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든, 차라리 정반대 되는 움직임을 해보든.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그 근육들을 깨워내는 거예요. 진짜 손으로 만지거나 쓰다듬는 것도 효과가 있습니다.


그럼 이걸 마음에 대입해봅시다. 저처럼 칭찬 감각이 엄청 둔감한 사람들은 몸과 비슷하게, 그 칭찬 감각을 깨워내는 경험을 해보면 되겠죠. 스스로 칭찬 일기를 써보는 것도 좋고요, 무의식 중에 자꾸 공격하는 친구들을 의식적으로라도 균형을 맞춰주는 거죠. 이게 처음에는 엄청 억지스러운 것 같기도 한데요, 나중에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나중에 보면 그래도 꽤 칭찬받도 될 일들이었는데 나는 왜 이걸 억지라고 생각했는지 황당할 정도일 때도 있었어요. 그리고 칭찬을 충분히 경험합니다. 예전에 받았던 아주 작은 칭찬이라도요, 수집하듯이 모아 보세요. 캡처를 하든, 어디 적어놓든. 내가 받은 칭찬을 열심히 수집에서 그 칭찬을 충분히, 달게 받는 거예요. 우리 칭찬받으면 ‘아유, 아니에요.’ 하고 지나갈 때 많잖아요. 그런 것들을 나중에 혼자서라도 하나하나 기억해서 수집을 하고, 그 칭찬을 비난을 챙겨 맞은 것처럼 정말 다 챙겨 받는 겁니다. 반복해서 다른 사람이 해준 칭찬을 보면 새삼 신기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 때가 많아요. 비난을 곱씹는 것보다 그 경험을 많이 하는 것이 우리의 칭찬 감각을 깨워줄 거예요.


감각을 깨웠으면 이제 움직여봐야겠죠! 정말 아끼는 사람에게 칭찬을 하듯이 나에게도 칭찬을 해주고, 또 정말 아끼는 사람에게도 칭찬을 해주고. 그런 경험들이 쌓이다 보면 그 움직임이 이제 자연스러워질 때가 옵니다. 그렇게 나의 잠들어있던 칭찬 감각도 깨우고, 하는 방법을 몰라 움직일 수도 없던 움직임들을 찾아주세요. 움직이고 있다면, 몸이 변하지 않는 사람은 없어요.



그렇다면 나의 부족하고 나쁜 면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저는 그런 부분들이 너무 수치스럽고 숨기고 싶고, 올바르지 않고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죄책감이 심한 편이거든요. 그것도 몸에 비유해보니까 좀 쉬웠습니다.


아까 제가 수업하는 것을 상상해보던 것처럼요, ‘너 이거 잘못됐으니까 당장 고쳐!’가 아니라, ‘아 내가 지금은 이 상태에 있구나, 이런 것들은 잘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들은 또 부족하구나.’ 딱 여기까지가 고유 수용 감각입니다. ‘이런 부분은 부족한데 너 지금까지 왜 이렇게 하고 있었던 거야, 왜 이건 못하는 거야, 얼른 고쳐서 저 이상적인 자세로 나아가야 할 거 아니야!’까지 나가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사람은 모두 잘하는 것도 있고, 잘못하고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어떤 움직임은 유독 잘하고, 어떤 움직임은 유독 안되기도 하죠. 제가 첫 번째 글에서 고관절을 90도 이상으로 접는 ‘티저’ 동작이 안되었다고 했는데요, 사실 저는 그걸 좀 수치스러워했어요. ‘강사인데 왜 이걸 못하지? 이것만 해낸다면 나는 더 이상 수치스럽지 않을 거야. 이것만 해낸다면 나는 부족해 보이지 않을 거야.’ 등등의 생각으로 저의 고관절을 더 힘들게 만들었죠.


근데 못할 수도 있습니다. 참 쉽고도 어려운 이야기죠? 사실 저는 이걸 받아들이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못하기 싫은데 못할 수도 있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 잘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는데 나는 못하는 거잖아. 내가 이걸 못하면 사람들이 나를 부족한 강사라고 생각할 거야.’ 이렇게 나의 부정적인 느낌을 구체적으로 쪼개어보고 그 생각들에 대해서 일단 내가 의식적으로 라도 좋은 답변을 주기 시작했어요, 내 마음에게. ‘내가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어, 하지만 내가 강사로서 잘하고 있는 부분들이, 장점이 분명히 있고 그걸 아는 사람이라면 나를 이 자세를 못한다는 이유로 부족한 강사라고 폄하하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칭찬 감각을 깨운 것과 또 비슷하게, 못해도 비웃지 않고 못할 수도 있지라고 생각해주는 친구들과 사람들이 주변에 있을 때 이 부분이 조금 받아들여지더라고요. 나 또한 그 사람들의 부족한 부분을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물론 저도 100% 받아들이지는 못합니다. 그만큼 또 저는 저를 공격하고 있겠죠? 이것 역시 당연히 못하는 부분도 있는 거죠 뭐. 하지만 분명 나아갈 거라고, 확장되어 갈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몸은 “너 여기 잘못됐어 고쳐!”라고 말할 때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이 상태라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여주는 것이 먼저예요. 우리 몸이 그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거든요. ‘아, 지금까지 그런 상태에 있어와서 이렇게 되었구나.’ 도 충분히 봐주고요. ‘그럼 내가 그렇게 될 수밖에 상태를 조금씩 해결해볼게.’라고 친절하고 인내심 있게 우리 몸과 근육과 신경계와 뇌에 알려주는 거예요. 그리고 그 경험들이 우리 몸과 마음에 쌓아가면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나아갈 거니까 어느 방향으로든 변화하게 될 거거든요. 우리의 몸도 마음도. 내가 그 방향을 잘 설정해줘야겠죠.



마지막으로 제가 일기장에 적어두었던 문장들을 나눠드리고 싶어요.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모습이 되기 위해서 발버둥 칠 때도 있었지만, 스스로에 대한 온전한 수용을 할 수 있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내가 변화한다는 신기한 역설. 다른 사람이 한 선택들도, 과거의 내가 했던 선택들도, 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믿어주는 것.


내가 완벽해서 사랑받는 게 아니야. 내가 100점이라서 사랑받는 게 아니야. 채워진 육각형의 꼭짓점과 채워지지 못한 모든 면들이 나를 구성하고, 그 자체로 사랑받고 이해받는 거야.


그건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 아니 사랑하고 미워하고 결국 사랑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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