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근육 키우려면?
지난 시간에 중립에 대한 이야기를 했죠. 몸도 마음도, 항상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중용의 자세로 있어야 충격과 스트레스를 잘 분산하면서 최선의 전략으로 삶을 마주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요. 그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자세를 하려면 서로 반대되는 근육들의 발란스가 잘 맞아야 합니다.
오른쪽의 서있는 자세를 봐주세요. 앞 허벅지가 너무 발달하고, 항상 무리하며 힘을 쓰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앞쪽으로 기울어진 자세를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아니면 앞쪽으로 기울어진 자세를 많이 하다 보니, 앞 허벅지가 발달하게 된 걸 수도 있고요. 뭐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앞 허벅지에 비해 뒷허벅지와 엉덩이 근육이 약화되어 힘을 쓰지 못하는 상태인 거죠. 앞뒤 근육의 발란스가 맞다면 당연히 앞 허벅지에 기대서 앞으로 기대고 있지 않고, 왼쪽 사진처럼 바른 자세에 있을 수 있을 테니까요.
중립에서 벗어난 지금의 상태에서 중립으로 가려면 내가 평소에 쉽게 쓰고, 자주 쓰던 근육들이 아니라, 내가 가지 않던 방향, 쓰지 않던 힘들을 써봐야 한다고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려면 내 몸의 약해진 부분들을 살펴봐 줘야 하죠. 내가 중립에서 많이 벗어난 상태에 있다면, 일단 그 상태를 살펴봐주세요. 내가 어떤 힘에 기대고 있는지, 어떤 근육들은 무리하고, 어떤 근육들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지요.
혹시 명상이나, 요가를 하면서 바디스캔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내 몸의 구석구석에 그저 관심을 보내주는 행위인데요, 직접 해당 부분들을 움직여보거나 만져봐도 괜찮지만 그냥 눈을 감고 내 왼쪽 새끼발가락이 어디에 있고, 어떤 감각이 느껴지는지부터 시작해서 머리끝까지 몸의 정말 구석구석에 집중을 보내주는 행위입니다. 무엇이 느껴지고 있고, 어떤 상태인지요.
얼마 전에 친구가 우연히 잠이 안 와서 유튜브에서 이런저런 영상을 찾아보다가 바디스캔을 해봤다고 했는데, 운동을 한 것도 아닌데 왠지 온몸이 개운하고, 기분이 좋아졌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몸은 우리 몸의 구석구석에 관심을 보내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물며 우리 마음은 어떨까요?
내 마음의 취약한 부분, 내가 심리적으로 취약한 부분을 채워내기는 너무 힘들죠. 같은 브릿지 동작을 하더라도 내가 원래 잘 쓰던 힘이 아니라, 쓰지 않던 허벅지 안쪽이나 허벅지 뒤쪽, 엉덩이 힘을 정확히 쓰면서 하면 잘하던 분들도 부들부들 흔들리면서 버티기 힘들어합니다. 마음에 그런 부분들을 내가 어떻게 알아봐 줘야 할까요?
사실 내 마음속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참 힘들어요. 살아오면서 겪었던 사소하고도 아찔한 상처들이, 지금의 내 일상을 어지럽히지 못하도록 잘 가라앉혀놓았는데, 흙탕물의 흙먼지들을 가라앉히듯이 겨우 겨우 가라앉혀놓았는데, 그렇게 가라앉히기도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걸 통째로 들고 마구마구 흔들어버리는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심층 정신분석 상담을 받는 1년 내내 너무 힘들 때도, 그만 들여다보고 싶을 때도, 모르는 척하고 지금 그럭저럭 괜찮은 대로 살면 안 되나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요가와 명상을 하면서도 갑자기 숨이 턱 막혀오는 순간이 있었어요. 이 이상 들여다보면 안 돼. 그건 내가 해결할 수 없어. 그것까지 들여다보고 해결할 수 없어. 염증이 어마 무시하게 생기고 곪을 대로 곪은 상처에 일단 메디폼을 붙여 놓고 살고 있는데, 그걸 굳이 다 뜯어서 봐야 하는 기분. 나는 그걸 마주할 자신도, 해결할 능력도 안 되는 거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언제까지나 그걸 원망하고 있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냥 깨끗이 받아들이고 내려놓을 수도 없는 나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때 저의 요가 선생님께서 ‘지금 그걸 다 들여다보기 무서워하는 나’도 그냥 그대로 수용해주라고 하셨어요. 지금은 내가 그걸 들여다보기 무서워하는구나. 나에게 ‘이제 와서 다 지난 일을 무서워하지 마! 얼른 들여다보고 해결해!’라고 하지 않고 그냥 ‘아 내가 그걸 들여다보기 힘들어하는구나, 지금은.’
얼른 들여다보고 해결해버리고 짠! 하고 깨끗한 빨래처럼 빨려 나오면 좋겠지만, 내 마음과 몸이 그렇게 뿅 하고 바뀌지는 않잖아요. 지금 두려워하는 내 마음을 충분히 느껴주고 ‘엄청 무섭겠다, 얼마나 무서웠어, 가라앉혀놓고 사느라고 많이 힘들었겠다’ 이렇게 충분히 함께 옆에 있어주는 거예요. 얼른 바꾸고 해결하고 싶어 하는 답답한 마음을 잠깐 내려놓고요. 그렇게 ‘무서워하는구나.’ 하다 보니 또 어느 순간 생각보다 힘들지 않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기가 또 찾아오곤 했습니다.
어떤 때는 할 수 있을 때까지 내 마음을 살펴봐주면서 옆에 있어주고 기다려주기도 하고, 어떨 때는 용기를 내서 하지 않던 일들을 해보기도 했어요. 하지 않던 일이니까 적정한 정도를 찾기 힘들어서 너무 튀어나가 버릴 때도 있죠. 이렇게 튀어나가다가는 다칠 수도 있는데, 최대한 다치지 않으면서 움직여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서 내 몸에 빗대어 살펴볼까요? 사진에 있는 자세는 필라테스의 ‘스완’이라는 자세예요. 척추의 신전을 일으키고, 몸통 뒷면 근육들을 적극적으로 써내는 동작이죠. 근데 이 동작에서 정말 뒷면에 근육들만 냅다 조여서 신전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앞쪽으로 튀어나가는 허리를 지지해줄 힘이 없어서 다치거나 허리가 과도하게 아프고 말 겁니다. 신전한다고 해서 몸통의 신전근들만 쓰는 것이 아니라, 몸통의 굴곡근들도 힘을 써야 합니다. 항상 반대되는 힘과의 동시 수축이 필요해요. 그 상태에서 서로 팽팽하게 지지를 해주면서 내가 가려는 방향으로 조금 더 힘을 써보는 것이죠.
신전을 따지고 보면 중립에서 벗어난 자세인데요. 우리가 평생 한 자세, 가장 반듯하고 이상적인 자세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고 여기 가만히 있을 거야! 할 수는 없습니다. 신전을 해야 할 때는 신전을 할 수 있어야죠. 하지만 내가 복부 힘이 없어서 그냥 허리를 앞으로 밀고 있는 거랑, 신전을 하기 위해 앞면과 뒷면의 힘을 팽팽히 조인 상태에서 내가 가려는 방향으로 힘을 써서 신전을 만드는 건 전혀 다른 움직임이죠.
우리는 그렇게 움직여야 합니다. 새로운 곳으로 도전해보려는 마음과, 지금 상태를 지키려는 마음, 두 마음을 다 가지고 서로 팽팽히 밀고 당기고 하면서요. 둘 다 어느 것이 더 나쁘지도 좋지도 않습니다. 냅다 도전하려는 마음만 앞서다 보면 훅훅 들어갔다가 다칠까 봐 얼른 발을 빼는 선택을 반복하게 되겠죠. 그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서 계속 무리해서 버티다가는 다치고 말 테니까요. 반대로 지금 상태를 지키려는 마음만 너무 커서 여기 가만히 있다 보면 어떤 움직임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 테죠.
다만 움직이기 전에, 내가 약해져 있는 부분을 봐주고, 그 부분들을 조금씩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연습하고, 정말 작은 도전들을 반복하다 보면, 남의 눈에 보이지는 않더라도요. 그 도전들이 가끔은 버겁고, 또는 안 하던 일이라서 수치스럽고, 짜증이 날 수도 있지만 그 경험을 통해 우리 마음의 약한 부분들은 조금씩 힘을 쓸 줄 알게 될 겁니다.
저는 최근 몇 년간 지금 상태를 지키려는 마음이 무척 셌습니다. 새로운 자극을 받고 싶지도 않고, 내가 잘하는 것만 반복하고 싶고, 인간관계를 더 이상 맺고 싶지도, 깊은 관계를 만들어가기도 너무 싫고 두려웠어요. 내 마음을 얘기하는 것, 내 상태를 얘기하는 것, 나의 가볍고 무거운 고민들 모두 얘기하기가 힘들어서 꽁꽁 싸매고 혼자 한없이 가라앉을 때도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에 연습한 것은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었어요. 사소한 것들부터요, ‘기구 옮기는 거 같이 해주실 수 있어요?’ ‘소도구 정리하는 거 도와주실 수 있어요?’ 기꺼이 ‘그럼요!’라고 하면서 도와주실 분들이 주변에 있었는데도, 나 혼자 잘 해내야 하고 내가 알아서 다 해야 한다고 바득바득 우기면서, 한편으로는 그걸 저의 자부심으로 생각했습니다. 근데 자부심은 수치심을 가리기 위한 방편이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혼자 다 해내지 못하는 나, 뭔가를 잘 해내지 못하는 나를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부끄럽게 생각하고, 숨기기 위해서 그 오랜 시간 동안 혼자서 끙끙거리면서 모든 걸 나 혼자 해내려고 바둥거린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잘 생각해보면 도움도 많이 받았는데요, 혼자 해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받은 도움은요, 고맙게 생각하지도 못하고 갚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게 돼요.
그리고 별거 아닌 작은 고민들부터, 조금 무거운 고민들도 누군가에게 얘기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저는 제 시시콜콜한 감정과 생각들을 남한테 하지 않는 것이 저의 무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저는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나는 절대 남에게 그런 짓을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과도하게 ‘내 고민을 남에게 얘기하지 않고, 나 혼자 해결하는 게 나의 무기다.’라고 생각하고 버텼죠. 물론 무기가 될 수도 있죠! 근데 모든 일이 그렇듯이 과하면 안 하니만 못한 것. 물론 제 고민은 당연히 제가 해결합니다. 남에게 그걸 해결해달라고 하지는 않지만, 그냥 가볍게 얘기해보기. ‘이런 일이 있었어, 그리고 나는 이런 기분이 들었어.’까지 얘기해보는 것을 조금씩 연습했어요. 그렇게 자연스레 흘러가는 것도 많아요. 친구의 진심 어린 말 한마디, ‘많이 슬펐겠다.’ 그 말 한마디로 녹아내려가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요. 마음속에 눈물이 고여있으면 아프잖아요, 얘기하고 흘려보낼 수도 있어야 하는데 말이에요.
고민을 얘기하는 게 너무 힘들다면, 말해도 되는 고민들을 생각해보고 그 똑같은 고민을 여러 사람에게 얘기를 해봅니다. 나만의 사회 실험이라고 생각하고요. (친구들에게는 조금 미안한 얘기지만요.) 그럼 나는 같은 고민을 얘기했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다른 반응을 하는지 체감할 수 있어요. 그 여러 사람들이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인식하는지에 대한 차이도 보이고요, 그 상황에 대해 어떤 대처를 하는지도 다르고요, 또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다 다릅니다. 당연하면서도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저는 저만의 사회 실험을 통해 여러 사람의 많은 사고방식들을 겪어보고, 그때그때 내가 가장 되고 싶은 사고방식을 선택하고 배워나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작더라도 여러 사람의 이해와 지지를 받으면 한 사람에게 너무 과몰입하지 않게 돼요. 저는 얘기를 잘 안 하니까, 겨우겨우 한 사람에게 얘기해놓고 그 사람이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공감해주면 그 한마디가 너무 소중해져서 기대고 싶고 붙잡고 싶은 마음이 커져서 어쩔 줄 몰라했었어요. 그게 밖으로 나오면 집착이 되고 의존이 되니까 마음속으로 꾹꾹 억누르기만 했죠. 그러지 않으려고, 정신을 다른데 쏟으려고 일을 더 하거나, 글을 쓰거나, 다른 것에 과몰입하기도 해 봤지만 마음을 억누른다고 그게 해결이 될까요?
그래서 이 마음도 그렇게 봐줬습니다. ‘뭐가 필요해?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하고 싶어? 무슨 말를, 무슨 이해를 그렇게 받고 싶어?’ (따지는 게 아니라 따뜻하게 타이르고 들어주려는 말투로요:) 그래서 내 마음에 약해진 부분들을 봐주고 ‘당장 고쳐!’가 아니라 ‘그렇구나, 그 부분이 약하구나, 지금까지 그렇게 해와서 이런 부분은 약해지고 또 다른 부분은 강해졌구나.’ 하고 옆에서 기다려줍니다. 그리고 네가 여유가 될 때 가고 싶은 방향으로 조금씩이라도 가볼까?
저는 그렇게 조금씩 가보고 있습니다. 여전히 부족한 게 많고, 숨기고 싶은 것도 많지만요. 아참! ‘완벽주의’가 방어기제의 한 형태라는 거 알고 계셨나요? 저는 얼마 전에 알게 되었는데요, 더 좋은 방향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려는 마음이 건강한 형태이고, ‘완벽주의’는 완벽하지 못한 나를 가리려는 방어기제라고 해요! 저는 이 말을 듣고도 조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완벽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조금 더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어요.
여러분은 새로운 곳으로 도전해보려는 마음과, 지금 상태를 지키려는 마음, 두 마음 중에 어떤 쪽이 훨씬 힘이 센가요? 그리고 지금 한 발이라도 내디뎌보고 싶은 방향은 어디인가요?
P.S. 그래서 앞 허벅지 힘은 어떻게 빼냐고요? 반대되는 힘들이 키워지고, 균형을 맞춰가면 과로하고 있는 근육들은 자연스레 점점 힘을 빼게 됩니다. 그게 훨씬 안전하고 편안하다는 걸 알게 되니까요. 우리 마음도 그런 방향으로 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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