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을 해서 정말 다행이다
같이 산다는 것은, 그것이 부부이든, 부모이든, 형제이든, 누구든. 서로 헌신해야만 문제없이 돌아가는 일인 것 같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모든 순간에 쉬지 않고 헌신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게 문제다. 한쪽이 상대방을 향해 일방적으로 헌신하는 것만으로도 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원래 할 수 있는 자연스러움을 넘어서 애써 ‘헌신’이라는 것을 해나가야만 문제없이 굴러갈 수 있는 것이다. 한쪽만 헌신을 해도 지치는 사람이 생길 것이고, 같이 헌신을 한다고 해도 지치는 순간이 분명히 찾아온다. 사람은 자기가 감당해야 할 온전한 자기 몫의 인생이 있는데, 그것도 들고 있으면서 같이 사는 사람을 위해 무리해서, 헌신까지 해야 한다면, 분명 지치는 순간이 온다.
아주 평화로울 때는 서로가 서로를 위해 최선을 다해 헌신했을 때뿐. 나의 자연스러움과 너의 자연스러움이 만나서 스파크가 튀지 않을 수 있는 확률은 너무나 적은 것 같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라서 어떤 순간도 놓치지 않고 똑같은 헌신을 할 수도 없고,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지치지 않을 수도 없고, 양쪽이 똑같은 질량의 헌신을 주고받는 등가교환이 가능하지도 않다. 그러다 보니 헌신을 했는데도, 내 딴에는 이미 애써서 헌신을 했는데도, 조금만 노력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깨져버린다.
나는 헌신하지 않은 순간보다 헌신한 순간들을 기억하고, 나의 무리했음을 기억하고, 그것을 피곤하고 가엽게 여겼기 때문에 내가 헌신하지 못한 순간에 평화가 깨지는 것을 너무나 억울하게 생각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까 항상 평화로운 건 원래부터 될 게 아니었다. 동생과 사소한 일도 다투고 싸우기를 몇 번, 더 이상 사이가 나빠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과 조금 거리가 있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동생과 따로 지내기로 했다. 마침 엄마가 한옥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하며 혼자 지내는 것이 조금 적적하고 무서울 때도 있다고 같이 지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짐을 싸서 동생과 함께 살던 집에서 나오면서 동생이 마음이 상하지 않았을까, 분명 배신감도 느끼고, 괘씸하게 생각도 하겠지 싶었지만, 억지로 같이 있으면서 싸우는 시간이 더 많아지는 것보다는 지금 썩 기분이 좋지 않더라도 떨어져서 시간을 보내면 우리 둘 다 조 금은 괜찮아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 딴에는 (동생에 비하면 쥐콩만큼이지만) 동생에게 헌신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한 피곤함도, 동생도 나에게 헌신하고 애쓰는 동안 들고 있었을 무거운 짐들에 대한 억울함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은 옅어지지 않을까.
그렇게 한옥으로 거처를 옮기고 나서 엄마와 꽤 평화로운 시간들을 보 냈다. 엄마는 본가에 가족들이랑 떨어져서 한옥에서 혼자 지내면서 마음의 여유를 많이 찾은 것 같았다. 매일매일 얼굴을 마주 보며 신경 쓰고, 그렇게 더 잘 아는 만큼 잔소리가 되고, 엄마도 모르는 새 사사건건 간섭하게 되어 서로가 스트레스받고 지쳐가던 시간들을 잠깐 내려두고, 엄마는 엄마의 인생을 조금은 찾은 모습이었다. 엄마는 한옥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마음공부를 하고 싶어서 다니기 시작한 절에서 교리 공부를 계속해서, 불교 대학까지 다니게 되었고, 평소에 배우고 싶다고 이야기했던 다도를 배우러 다니면서 시간을 보냈다. 엄마는 이제 내가 뭘 하지 않아도 혼자서도 알아서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나도 엄마와 있는 시간이 마음이 편했다. 더 이상 엄마와 있는 것이 왠지 모르게 우울하거나, 걱정되거나, 답답하거나,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예전엔 내가 뭘 어떻게 해결해 줄 수도, 도와줄 수도 없는 문제들로 가족들과 갈등이 생기거나 엄마가 스트레스받는 모습을 거의 매일 봐야 했기 때문에,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프고 답답해왔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문제가 계속 생긴다는 것은 사람을 무척이나 무력하게 만든다. 엄마는 가족들과 적당한 거리가 생겨, 예전처럼 그렇게 스트레스받을 일도, 잔소리를 할 일도 없었다. 나는 그간 고생한 엄마가 가엽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만큼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만큼 잔소리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 마음을 알고, 또 잘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알지만, 잔소리를 듣는 사람에게는 그 마음이 순수하게 전달되기 힘들어서 가족들과 좋아지기는 커녕 서로 스트레스받을 일만 늘어갔으니까.
어쨌든 엄마는 그 문제들로부터 조금 거리를 두고 떨어져 나와 엄마의 인생을 찾아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열심히 무언가를 배우고, 찾아다니고, 관심 있어하고, 눈빛을 반짝이며 나한테 설명해주고 싶어 하는 그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엄마는 이제 내가 뭘 어떻게 하지 않아도 혼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엄마와 함께 있으면서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시간을 쏟고, 돈을 쏟고, 마음을 쏟는 것 보다도, 엄마한테 그 정성을 쏟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인간관계라도 내 마음대로 된 적이 있었나. 내가 마음을 다한 만큼 아프게 내 뒤통수를 쳤고, 나는 진심이었지만 그 사람은 나한테 그저 필요한 것이 있었던 것뿐이었고.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일수록 믿고 털어놓았던 나의 약한 부분을 정확하게 공격했다. 근데 엄마는 하나밖에 없는 우리 엄마니까, 그런 지긋지긋한 관계들이랑 달리 엄마한테 하는 노력은 헛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엄마에게 조금은 도움이 되고, 조금은 기쁘게 해 드렸다는 생각에 내 마음이 덜 무거워지기라도 할 테니까.
엄마는 식구가 많을 때는 잔소리할 일도 많고 챙길 것도 많아서 지치다 보니 신경질이 났었는데, 지금은 나 하나만 챙기면 되니까 심심하지도 않고 챙기는 재미도 있고 나와 보내는 시간이 좋다고 했다. 신기했다. 엄마는 그냥 나라는 존재를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사랑해주는구나. 나도 엄마처럼 그냥 엄마라는 이유로 엄마를 저렇게 사랑해 주고, 예쁜 눈길로 바라봐주고, 끼니를 챙기지 못한 것을 속상해하고, 당신보다 더 기뻐하고, 당신보다 더 슬퍼할 수 있을까. 그제야 엄마의 마음을 삐뚤어지지 않은 투명한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나는 그런 엄마가 고맙고 신기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엄마와 시간을 많이 보냈다.
평일 저녁에만 수업을 나갔기 때문에 오전에는 늦잠을 자고, 글을 쓰거나, 수업을 구상하고, 주말에는 엄마의 청소를 돕고, 엄마와 나들이를 갔다. 엄마가 고등학교 시절 이후로는 가보지 못했다는 고궁 구경, 요즘 사람들이 많이 다닌다는 맛집이라던가, 예쁜 카페 같은 곳에 엄마를 데려가서 함께 차를 마시고 얘기를 하는 시간들이 따뜻하고 좋았다. 나는 오전에도 일을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지만, 돈을 더 벌려고 무리하면 나도 지치고, 그만큼 스트레스도 받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정도 돈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돈을 많이 가지려는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다. 오전에는 충분히 게으름을 피우고, 낮에는 카페에 가서 좋아하는 커피와 베이글을 먹으며 글을 쓰고, 저녁에는 기쁜 마음으로 수업을 하러 갔다. 나의 매일매일은 그렇게 평화롭고 따뜻하게 채워지고 있었다.
하루는 낮에 엄마와 남대문 시장에 가서 함께 꽃장식을 구경하고, 예전에 출퇴근을 했던 명동역에서 전철을 탔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떡볶이 집이 있는 곳. 내가 갈 때마다 내 이름을 기억하고 반겨주던 떡볶이 삼촌이 있는 곳. 내가 제일 그리워하면서도 가고 싶지 않은, 싫어하는 역. 출근할 때마다 스크린 도어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며 답답해서 한숨을 푹푹 쉬었던 곳. ‘이 지구 상에 생지옥이 있다면 이곳일 것이다. 틀림없이.’라고 생각했던 곳. ‘ 계속 여기를 다니는 건 나를 학대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갔으면 가차 없이 그만뒀어야 했는데 그마저도 내가 의지박약인 게 아닐까 싶어 나를 탓했던 시간들이 떠오르면서 나는 가라앉았다. 지나버린 기억 때문에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이 침울해진 기분을 가지고 , 내가 더 생각한다고 바뀔 일도, 해결된 일도, 가벼워질 일도 아닌데. 엉망진창으로 엉키어 무거워진 생각을 가지고 출근길에 올랐다.
‘정신없이 출근해서 정리되지 않은 마음으로 수업하고 싶지는 않은데... 밝은 마음으로 행복하게 수업해야 활기찬 기운을 나눠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여느 때와 같이 반가운 회원님들이 오고 시간이 되면 수업이 시작되었다. 수업이 모두 끝나고 짐을 챙겨 나올 때면 항상 똑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을 해서 정말 다행이다.’
예전에는 ‘일’이라는 게 나를 갉아먹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나의 영혼과, 나의 자존감과, 나의 인간성을 갉아먹는 대신 한 달마다 약속된 돈을 받는 것이라고. 그 구조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삽질을 하는 것만 같은데, 그 대가로 나올 월급을 생각하면서 그냥 버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원래 ‘일’이라는 게 그런 거라고.
내가 꿈을 찾고, 꿈을 그리던, 수도 없이 많은 계획을 세우고 지웠던 그 시절에는 생각도 해보지 못했던 일이지만, 이 ‘일’을 찾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하는 동안 웃을 수 있고 기운이 나는 ‘일’, 좋은 분들과 만나 같이 운동하고, 이유 없이 칙칙한 내 기분마저 상쾌해지는 ‘일’, 퇴근하면서 ‘이 일을 찾게 되어 다행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일’.
어느 순간에는 내가 너무 과분한 삶을 살고 있나 싶어 불안하다가 이내 ‘그래도 지금 마음 편히 행복하면 된 거지 뭐~.’ 해버렸다. 나는 우울했던 시절에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엄청 여러 번 봤다. 예전에는 주인공인 박동훈(이선균)이 삶의 무거운 짐들을 지고 꾹꾹 참으면서 깊은숨을 쉬며 걸어가던 뒷모습이 가장 마음에 남았는데, 요즘에는 그 장 면이 제일 많이 떠오른다.
“지안, 평안에 이르렀나?”
“.. 네.”
“네!”